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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와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 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기자말]
아침 9시 진료가 시작되기 직전, 동네 이비인후과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부원장인 나를 가르치시던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아침 9시 첫 진료는 무조건 빨라야 해."

환자 대기실에는 아이를 옆에 앉힌 십여 명의 부모들, 주로 엄마들이 시계를 바라보며 진료가 빨리 시작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직 이비인후과 진료가 서툴렀던 내가 진찰하고 처방하느라 시간을 끌면, 데스크의 간호사가 어김없이 부모들의 항의를 전달한다.

"유치원(또는 학교) 보내야 하니, 빨리 좀 봐달래요." 
"아이 맡기고 출근해야 해서 시간이 없대요."

그렇게 늦은 등원, 등교,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9시 반까지 이비인후과 진료는 속도전이다. 그렇게 몸이 아파도 부모에게 이끌려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감기를 퍼뜨렸을 것이다.

아픈 아이를 두고 밤에 출근하는 엄마

한 청소년이 엄마와 함께 진료를 받으러 왔다. 엄마 말로는 어제부터 미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에게 직접 증상을 묻자,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청소년 환자는 5일 전부터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감기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이런 경우 부모와 자녀가 의사 앞에서 말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 나한테는 어제부터 아프다고 했잖아?"
"으슬으슬 추운 것이 그냥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알았다고."

환자에게 독감 검사를 시행했고, 결과는 양성이었다. 독감은 사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환자들이 많다. 그 청소년 환자 역시 마스크 착용이나 외출 자제 등 전염을 막기 위한 수칙은 전혀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당뇨병, 폐병, 심장병, 콩팥병 등 만성 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어르신들에겐 독감이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2000여 명이 독감으로 목숨을 잃는다. 필자는 독감 치료제를 처방하면서 환자의 엄마에게 당부했다.

"이 약을 먹는 첫 이틀 동안은 환자가 밤에 혼자 있지 않게 해주세요. 이 약을 먹는 청소년들이 간혹 환청, 환각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가 있거든요."

순간 엄마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이 드러났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내게 물었다.

"아, 밤에 출근해야 하는데. 그런 부작용은 흔한가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아픈 아들을 두고 밤에 출근해야 하는 그 엄마에게, 의사인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감기는 만병의 근원?
 
  29일 오후 대전시 중구 대흥동 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2020.2.29
  29일 오후 대전시 중구 대흥동 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2020.2.2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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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의학을 배운 의사로서 이 말은 참 곤란하다. 의학적으로 '감기는 감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옛말이 결코 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바이러스 질환인 감기는 간혹 2차 세균 감염을 통해서 중이염이나 부비강염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 많은 질병의 초기 증상은 감기와 비슷하다. 열이 나거나 몸살을 느끼고, 기침하거나 침을 삼킬 때 목이 아프다. 그 대표적인 질병이 폐렴이다. 폐렴은 세계 최고 의학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사망 원인 3위였다. 물론 폐렴으로 인한 희생자 대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면역이 약한 환자들이다. 독감,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 역시 초기 증상은 감기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감기 증상이 있는 환자가 의사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감기약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감기 이외 다른 병'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은 가벼운 감기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초기 며칠 동안 집에서 푹 쉬면서 스스로 몸의 상태를 점검할수록, 결과적으로 의사를 덜 찾아갈수록 효율성이 높아진다. 의사가 감기 이외 다른 질병을 더 의심할수록 진단율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려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

동네 의원의 점심시간은 공공기관이나 기업보다 늦어서, 보통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다. 그 덕에 12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직장인 환자들을 꽤 만날 수가 있다. 필자는 그들에게 "감기인데 일찍 퇴근해서 푹 쉬시죠"라고 실현 가능성 없는 조언을 종종 하곤 한다.

"감기 때문에 그럴 수야 있나요. 기침을 자꾸 하니까 동료들에게 눈치 보여서."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감기 증상이 있으면, 의사의 진단서 없이도 3일까지 쉴 수 있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나라 중에서 5위일 정도로 길다(2018년 기준).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보다는 무려 662시간이 길다. 이는 한국 노동자들이 독일 노동자들보다 일 년에 두 달 반 이상을 더 일한다는 뜻이다.

현재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연일 폭증하고 있다. 정부와 미디어는 발열이나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부디 집에서 일단 며칠 쉬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동네 의원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필자는 '도저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공공기관, 기업, 학교 등 우리나라의 공적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근면 성실'만을 시민의 덕목으로 강조, 강요해 왔다. 감기 따위는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할 사소한 장애물에 불과했다.

이러한 문화와 가치관은 우리 삶의 여러 곳, 그리고 종교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배 중단을 요청했지만 대형교회의 66%는 예정대로 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숙주 발견하지 못하면 바이러스 확산은 멈춘다
 
 29일 오후 대구시 동구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인근에서 육군 제2작전사령부 소속 군 제독 차량이 방역 작전을 하고 있다. 2020.2.29
 29일 오후 대구시 동구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인근에서 육군 제2작전사령부 소속 군 제독 차량이 방역 작전을 하고 있다. 2020.2.2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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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41조의2(사업주의 협조의무)에 따르면, 코로나19 밀접 접촉자는 자가 격리를 시행하는 동안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는 지역사회 감염 단계로 발전하고 있고, 밀접 접촉과 일상 접촉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감기는 열 명 중 아홉 명은 1년에 한 번 이상 걸리는 흔한 질병이다. 하지만 초기 증상은 코로나19와 비슷하다. 그럼 감기 증상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감기 증상이 있는 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코로나19의 잠복기인 2주 동안 집에서 쉬는 것이다.

새로운 숙주를 발견하지 못하면 바이러스의 확산은 멈출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구 시민 모두는 2주 동안 집에서 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코로나19 진단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앞으로 자랑해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시민에게 시민의식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휘할 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대구 시민 모두에게 한시적 기본소득을, 그래서 2주의 휴가를 주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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