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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기자말]
 ITX-청춘 열차
 ITX-청춘 열차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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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ITX-청춘 열차를 타면 나긋나긋한 안내방송이 사람들을 반긴다. 가평역, 강촌역 등 역의 이름을 알려준 뒤 '차내에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라'는 안내방송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선반 위를 쳐다보고 내릴 채비를 한다.

듣는 사람에게 바로 여행의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1994년부터 현재까지 27년 동안 활약해온 베테랑 성우 조영미씨. <푸콘 가족>의 에밀리, 그리고 2030 세대들이 긴장 속에 들었던 수능 모의고사 '듣기평가'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0년대부터 시내버스 안내방송 일부를 맡아 했는데 현재도 경기도 시내버스 곳곳에 남아 있다. 2012년부터는 ITX-청춘을 비롯해 일반 열차 안내방송을 맡아 기차여행의 길잡이도 되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공덕동의 카페에서 조영미 성우를 만나 '안내방송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 이름' 불리고 싶어 시작했던 성우
 
 27년차 베테랑 조영미 성우
 27년차 베테랑 조영미 성우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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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미씨는 성우가 되기 전 영양사로 일했다. "어릴 때부터 '누구 엄마'보다는 조영미라는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한 그는 "성우 일을 하다 보니 두 아들을 둔 지금까지도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 말문을 떼었다.

성우들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자동응답시스템(ARS)이나 광고 등에 쓰이는 내레이션 녹음이다. 조영미 성우는 2000년대 초부터 시내버스 안내방송을 여럿 녹음했다. 정식 섭외를 통해 모든 안내방송을 녹음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이름이 바뀌거나 새로 생긴 정류장의 안내방송을 맡았다고 했다.

조씨는 "가령 공덕역 안내방송을 한다면 '이번 정류장은'의 경우 미리 녹음되어 있고 뒤편에 '공덕역입니다'를 새로 붙인다"면서 "그러다 보니 나도 어떤 정류장을 녹음했는지, 시내버스에서 나오는 어떤 안내방송을 녹음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ITX-청춘 열차의 안내방송만큼은 다섯 명을 뽑는 오디션을 거쳐 선발되었다. 주변의 권유로 오디션에 참여했다가 바로 낙점되었다. 그 인연으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안내방송까지 2년 정도 맡았다. 지금은 다른 성우로 바뀌었지만 방송 장비가 바뀌지 않은 몇몇 무궁화호 열차에서는 조영미 성우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전국 모든 기차역'의 안내방송을 했던 그에게 교통 안내방송을 할 때의 '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확하게 잘 들리는 것이 우선이다. 남녀노소는 물론 외국인까지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정확하게 안내방송을 해야 한다. 어려운 점은 지역 이름을 발음할 때 '통용 발음'과 '문법적 발음'이 다른 지명을 보곤 하는데, 그럴 때는 통용되는 발음으로 한 번, 문법에 맞는 발음으로 한 번 따로 녹음해서 제출하곤 한다."

조영미 성우는 2012년 개통 때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에 ITX-청춘의 안내방송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하다 보니 열차나 버스에서 나온 내 목소리를 실제로 듣지는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친한 성우 후배가 극장판 애니메이션 녹음한 것이 개봉했을 때 조카들을 다 데려간다고 하던데, 나는 내가 녹음한 것을 따로 찾아서 듣거나 하지는 않는다"라는 그는 "지인이나 친구들이 내 목소리가 TV에서, 안내방송에서 나온다며 연락을 주기도 한다"고 웃었다.

ITX-청춘 열차를 탄 친구가 간만에 "네 목소리가 열차에서 들린다"며 연락을 주기도 했고, 후배 성우가 춘천으로 놀러가는데 열차에서 선배님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말의 표현법 무궁무진"
 
 "예전에는 기계적으로 문자를 잘 읽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말에는 모두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는 조영미 성우.
 "예전에는 기계적으로 문자를 잘 읽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말에는 모두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는 조영미 성우.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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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수능 모의고사를 봤다. 영어 영역 듣기평가를 보는데 엄마 목소리로 지시사항을 알려줬다고, '덕분에 편하게 시험 봤다'고 하더라. 한번은 모자까지 눌러쓰고 커피를 시키는데 우연히 같은 카페를 찾은 아는 동생이 '언니 맞죠?'라고 물어봤다. 놀라서 어떻게 알아봤냐고 물었더니 목소리 듣고 알아봤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성우로 일한다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편리함을 주는 때는 역시 '콜센터 상담원'과 통화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름이나 주소를 말할 때 상담원이 한 번도 되물어본 적도 없는 데다가, 오히려 "고객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으시다"라고 칭찬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철도공사는 수도권 전철의 모든 안내방송을 '음성합성 시스템'(TTS))으로 전환했다. 유지비가 저렴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람 목소리가 느껴지지 않아 삭막하다'는 반응도 적잖다. 기술의 발달이 성우의 일에도 영향을 끼친 셈이다.

조영미 성우는 개의치 않았다. "인터넷 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 열풍이 불었지만, 오히려 불편한 점이 눈에 띄면서 다시 전화로 돌아오는 분들이 많다"라면서, "TTS도 그런 것 같다. 요즈음에는 간단한 ARS 등을 TTS로 녹음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사람 목소리로 녹음했으면 좋겠다'라며 먼저 제안하는 회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TTS의 도입이 시대적인 흐름이긴 하지만, 오히려 '사람의 목소리가 그립다'며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TTS가 꼭 필요하거나 긴급한 상황 등 제한적인 분야에서만 쓰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당장 광고 등의 심의를 받을 때는 TTS를 쓰고 심의가 통과되면 성우가 녹음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TTS 논란'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성우를 준비할 때 '엄마'라는 단어 하나로 100가지 감정을 표현하라는 과제를 받고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 보니 200가지 넘게도 표현할 수 있겠더라.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말의 표현법이 무궁무진해진다.

예전에는 기계적으로 문자를 잘 읽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말에는 모두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 그때부터 정말 그 순간 문장에 담긴 감정을 실어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말할 때 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왜 이런 마음이 들었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임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목소리를 알아들을, 그리고 어쩌면 매일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지나칠 이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아! 그 소리가 저 사람이구나'를 알릴 수 있게 되어 기분 좋다. 매일 배우고 느낀 것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책임감 있게 내 목소리로 표현하면서 일하고 싶다. 거리를 가다 안내방송을, TV를 켰다가 내레이션을, 전화하다 ARS를 듣고 '기분 좋은 목소리구나!'라면서 내 이름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 질문에 도움 주신 페이스북 그룹 '버스마니아' 회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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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도 쓰고, 스포츠와 여행까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러면서도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그리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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