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토트넘의 침몰이 현실화되고 있다. 토트넘은 22일 영국 런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7라운드 홈경기에서 첼시에 1-2로 패했다. 부상 당했던 지난 경기까지 5경기 연속골을 이어가던 손흥민이 결장하자마자 라이프치히와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0-1에 이어 2경기 연속 패배다. 홈에서 중요한 경기들을 잇달아 패했다는 것도 토트넘에겐 뼈아프다.

토트넘은 11승 7무 9패(승점 40)로 일단 5위는 지켰으나 4위 첼시(승점 44)와의 승점 차가 다시 4점으로 벌어졌다. 손흥민-케인 등 주축 공격수들을 모두 부상으로 잃은 토트넘은 아직 시즌이 2개월 이상 남은 상황에서 다음 시즌 챔스 티켓이 주어지는 빅4경쟁은 물론 UCL와 FA컵에서 모두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도 최고의 무기를 모두 잃은 상황에서는 대책이 없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의 능력이나 선수들의 부상이라는 불운을 탓하기 전에 올시즌 토트넘의 상황은 결국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에 가깝다. 토트넘은 EPL에서도 손꼽히는 짠돌이 구단으로 통한다. 구단주인 다니엘 레비 회장은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토트넘을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기여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욕심을 부리거나 근시안적인 판단으로 소탐대실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댓가가 바로 토트넘의 현주소다. 토트넘은 최근 몇 년간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올라섰다. 지난 시즌에는 구단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해리 케인-손흥민-델레 알리-크리스티안 에릭센-휴고 요리스 등 다른 명문팀에서도 부러워 할만한 정상급 라인업을 구축했다. 하지만 언제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에는 2% 부족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시절 토트넘은 꾸준한 성적에 불구하고 끝내 단 한 개의 우승컵도 차지하지 못했다.

올시즌 토트넘은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이적 속에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포체티노 감독이 5년만에 경질됐고, 재계약을 놓고 구단과 오랫동안 갈등을 벌이던 에릭센은 끝내 이탈리아로 떠났다. 승부사 무리뉴 감독을 영입하며 일시적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이번에는 믿었던 공격진이 해리 케인에 이어 최근에는 손흥민마저 장기 부상으로 이탈하며 순식간에 붕괴 직전에 놓였다. 수비축구에 능하다는 무리뉴 체제에서도 수비는 20경기에서 24실점을 허용했고 클린시트는 단 3번에 그쳤다. 

토트넘은 지난 몇 년간 전력을 보강하고 팀을 재정비 할 시기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주축 선수들에게 활약에 걸맞는 대우를 하지않으면서 적절한 시기에 이적시키거나 대체자를 구하지도 못하여 돈도 선수도 모두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표적으로 토트넘에서 EPL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성장한 에릭센은 레알 마드리드등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레비 회장이 무리한 이적료를 책정하며 협상이 번번이 무산됐다.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오면서 더 이상 급해질게 없어진 에릭센은 토트넘의 재계약 요구를 무시했고 동기부여를 잃은 에릭센의 경기력과 주가는 덩달아 하락했다.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겨울이적시장에서 에릭센을 인터밀란으로 보내며 토트넘이 챙긴 이적료는 약 260억원, 한창 주가를 날릴때보다 몸값이 1/3 가까이 폭락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 손해만 보면서 토트넘과 레비 회장은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토트넘의 비효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시즌 토트넘의 챔스 결승 진출에 기여했던 페르난도 요렌테를 떠나보내면서 백업 공격수를 영입하지 않았고, 매년 잔부상으로 많았던 케인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토트넘은 1군에 정통 스트라이커가 단 한명도 없는 촌극을 빚게 됐다. 그나마 자펫 탕강가라는 유망주를 발굴했고 겨울이적시장에서 스티븐 베르바인을 영입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과감한 투자를 꺼린 탓에 더 우선적으로 보강이 필요했던 최전방과 중앙 수비는 끝내 손도 대지 못했다.

팀사정을 잘알던 포체티노 감독을 내치고 그보다 거물급인 무리뉴 감독을 영입하는데 들인 비용을 감안하면 이래저래 돈은 돈대로 쓰고 성적은 성적대로 잃은 셈이다.

토트넘은 최근 알리마저 슬럼프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감독은 베르바인-로 셀소-모우라-라멜라 등의 공격진을 구성했지만 라이프치히와 첼시의 수비벽을 제대로 뚫어내지 못했다. 최전방과 2선을 오가며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흔들어주던 손흥민의 빈 자리가 절실하게 느껴졌던 부분이다.

무리뉴 감독은 첼시 2기와 맨유 시절 이후 지도자 경력의 하향세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성향에 맞는 선수들을 끌어모아서 성적을 내는 스타일이지, 전술적 유연성이 뛰어나거나 유망주를 키워내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토트넘의 스쿼드는 무리뉴 감독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여기에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은 가뜩이나 전술적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무리뉴 감독의 약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가용자원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라이프치히와 첼시전에서도 주전 선수들의 공백에 따른 전술변화나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포체티노 감독 시절에 좀더 전폭적인 투자 지원을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남는다.

케인과 손흥민이 빨라도 시즌 말미에나 복귀가 가능한만큼 토트넘의 이후 전망은 밝지 않다. 그때쯤이면 이미 UCL와 FA컵에서는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고 EPL에서도 마지막 1-2라운드 정도만 남았을 것이다. 지난해 챔스 결승 때 선발투입이 실패로 돌아갔던 케인의 사례처럼 복귀하더라도 정상적인 컨디션을 발휘할 지도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토트넘이 올시즌도 무관에 그치고 심지어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까지 놓쳤을 경우다. 맨시티의 유럽축구연맹의 재정페어플레이룰 징계로 ULC 출전자격이 2년 정지되면서 올시즌 리그 5위까지도 다음 시즌 UCL 진출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현재로서 토트넘은 5위나 6위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선수인생의 전성기에 돌입한 토트넘 스타들이 팀을 떠나고 싶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축구의 자존심인 손흥민도 어느덧 28세다. 토트넘에서 EPL을 대표하는 정상급 윙포워드이자 해결사로 성장했지만 프로무대에서 우승 커리어는 아직 전무하다. 특히 올시즌에는 두 번이나 퇴장을 당하는가하면, 안드레 고메즈의 발목 골절 사건, 팔꿈치 부상과 수술,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혹사 논란 등으로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서른이 멀지않은 손흥민에게 토트넘이 과연 선수인생의 전성기를 바쳐 헌신할 구단인지도 한번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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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부상 토트넘연패 다니엘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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