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풍운아' 추일승 감독이 9년만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은 19일 추일승 감독의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2019-2020시즌 잔여경기는 김병철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추일승 감독은 프로농구 사령탑 중에서도 무명의 현역 시절-구단 프런트- 프로 감독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홍대부고 2학년 시절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뒤늦게 농구를 시작했고, 홍익대를 거쳐 1985년 기아 농구단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지만, 한 시즌을 치른 후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후 곧바로 은퇴하며 현역 시절은 그야말로 별 볼 일없이 끝났다.

은퇴 후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한동안 농구와 관련없는 삶을 이어가다가 1990년 친정팀 기아자동차 농구단을 지원하는 프런트로 발령받으며 다시 농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매니저와 경기운영 팀장을 거쳤다. 1997년에는 상무에서 코치 제의를 받게 되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었다.1999년에는 상무 감독으로 선임됐다.

상무 감독으로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이어가던 2003년, 추일승 감독은 부산 코리아텐더(현 부산 KT)의 감독 제의를 받으며 마침내 프로 지도자로서 첫 기회를 얻게 됐다. 당시 추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온 상황이 참 아이러니한데 코리아텐더는 모기업의 부도로 구단 운영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전임 이상윤 감독도 서울 SK로 떠나고 팀을 맡길만한 거물급 감독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급하게 대안으로 섭외된 것이 바로 추 감독이었다.

다행히 코리아텐더가 그해 11월 KTF로 인수되며 전화위복이 됐고 추 감독은 프로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농구철학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이후 추 감독은 부산 KT 시절부터 고양 오리온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간 프로무대에서 살아남은 베테랑 장수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추일승 감독이 프로무대에서 남긴 업적은 '리빌딩 마스터'와 '무한 로테이션' '포워드 농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추 감독은 코리아텐더/KTF와 오리온에서 부임 당시 하위권 전력의 팀을 물려받아 성공적인 리빌딩을 거쳐 상위권으로 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특히 외국인 선수를 고르는 안목이 뛰어난데 추 감독이 영입해 대성공을 거둔 선수로는 애런 맥기, 게이브 미나케, 필립 리치, 나이젤 딕슨, 조 잭슨 등이 대표적이다. 

선수단 구성능력도 뛰어나 팀의 로스터를 두텁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추 감독이 이끄는 팀들은 항상 포워드 자원이 넘쳐나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추 감독은 정통센터나 가드보다 현주엽, 김동욱, 애런 헤인즈, 이승현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기술적 능력을 갖춘 포워드들의 재능을 극대화하는데 탁월했다.

주전 의존도가 높았던 동시대의 KBL 감독들과는 달리 벤치멤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출전명단 12인을 최대한 폭넓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개인능력보다 유럽 스타일의 조직적인 농구를 선호하는 추 감독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었다. 여러 선수에게 출전시간을 고르게 분배하는 추 감독의 용병술을 빗대어 '사회주의 농구' '공산 농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특히 오리온은 2011년 추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충희, 김상식, 김남기 등 전임 감독들이 줄줄이 실패의 쓴 맛을 보며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이 생겼고, 간판스타였던 김승현의 이면계약과 임의탈퇴 파문, 연고지 이전 논란(대구-고양), 하위권을 전전하는 성적으로 당시 오리온의 구단 이미지는 프로농구에서도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추 감독은 농구판 롯데 자이언츠나 한화 이글스로 불리던 오리온을 맡고 나서 불과 2시즌만인 2012-13시즌, 6년만에 6강플레이오프에 들며 팀 재건에 성공했다. 2015-16시즌에는 김진 감독-김승현 시대였던 2002년 이후 무려 14년만의 정상에 올려놨다. 2006-07시즌 KTF에서 처음 챔프전 무대를 밟았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추 감독에게도 프로 감독으로서 처음 맛보는 우승이었다.

농구계 대표적인 '비주류'로 꼽히는 추 감독의 우승신화는 농구팬들에게도 큰 감동을 줬다. 당시 추 감독은 우승소감으로 "연세대-고려대-중앙대를 나온 사람보다 그렇지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니 내가 주류라고 생각한다"는 멋진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로도 오리온은 2010년대에만 추 감독과 총 6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궈내며 프로농구의 강호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추 감독은 비주류 이미지와 차분한 성품 때문에 농구판에서 은근히 차별을 받는다는 의혹도 많았다. 심판 판정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거나, 상대 감독으로부터 악수를 거부당하는 등 유독 추 감독에게만 벌어지는 흑역사가 많았다.

하지만 추 감독은 불만을 표출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침착하면서도 막힘없는 달변, 절제된 코트 매너,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구파 지도자 이미지로, 강성의 다혈질 감독들이 유독 많았던 프로농구계에서 보기드문 '코트의 신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추 감독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경기 플랜을 짜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경기가 의도한 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는 위기관리나 전술적 임기응변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좀처럼 극복하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선발에 실패했던 KTF 시절 말년이나, 올시즌의 오리온에서도 이런 문제점은 반복됐다. 2015-16시즌 우승을 제외하면 단기전에서의 운용능력도 아쉬웠던 순간이 많았다.

또한 선수단 구성능력이 빼어난 것과는 별개로 정작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능력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현주엽이나 김동욱, 이승현같이 이미 추 감독을 만나기전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포워드들을 활용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이들이 부진하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대체할 수 있는 유연성이 없었다.

특히 가드 자원을 키우지 못하여 조 잭슨 이후에도 단신 외국인 가드들을 기용한 실험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오리온의 로스터가 불균형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추 감독의 오리온에서의 마지막이 된 2019-20시즌은 KTF 시절 마지막 시즌인 2008-09시즌과 매우 흡사했다. 객관적인 전력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와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좀처럼 정상적인 전력을 가동하지 못했다. 한번 꼬여버린 흐름을 시즌 후반까지 반전시키지 못하고 내내 하위권을 전전했다. 올시즌을 끝으로 오리온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추 감독은 사실상 올해 6강진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팀의 미래를 위하여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추 감독의 퇴진으로 프로농구 최고령 감독은 63년생 동갑내기인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과 전창진 전주 KCC 감독만이 남게됐다. 비록 마무리는 아쉬운 모양새가 되었지만 추 감독이 오리온을 농구계의 웃음거리에서 매년 플레이오프를 기대할만한 팀으로 재건해낸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야말로 밑바닥의 무명에서 시작하여 산전수전을 다 겪은 끝에 비주류의 설움을 딛고 프로농구계에서 손꼽히는 지도자의 반열에까지 올라선 추 감독의 인생스토리는 한편의 휴먼드라마로도 손색이 없다. 추 감독이 일단 현장을 떠나더라도 그의 경험과 농구철학은 다시 한국농구에 어떤 식으로든 귀하게 쓰여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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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승감독 고양오리온 비주류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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