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의 제사를 챙기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

베트남 전쟁 때 가족을 잃은 응우옌 티 탄씨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한다. 탄씨의 가족은 베트남 전쟁 때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에게 죄가 있었던 게 아니다. 전쟁 기간, 베트남 다낭에서 20분 떨어진 퐁니, 퐁넛 마을에서 조용히 살던 이들을 죽인 건 파병 간 한국 군인들이었다. 베트남에는 탄 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주민들이 남아있다.
 
역사의 그늘에 있었던 기억들과 마주한다. 27일 개봉하는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를 둔 이길보라 감독이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베트남 현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이 사건에 대한 모의재판이었던 시민평화법정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베트남 전쟁 때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퇴역 군인들의 모습과 과거엔 지하 요새였으나 지금은 관광지가 된 베트남의 구찌 땅굴 등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담았다.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여러 기억 중에서도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돼버린 베트남 피해 주민들이 내는 이야기에 관객들도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후려낸 구덩이 같은 아픔을 느낀다. 가족을 잃거나, 주민들이 한국군에게 둘러싸여 총에 맞는 광경을 본 할아버지, 한국군이 심어놓은 지뢰를 모르고 건드렸다가 눈이 멀어버린 아저씨, 심지어는 한국군에게 팔려 간 소녀들의 이야기가 나온 국가가 주목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는 끄집어냈다.
 
같은 베트남 전쟁을 두고 기억에는 차이가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은 그 당시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거리 시위를 한다.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명을 받았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참전 군인들도 어떤 관점에서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청춘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피해자다. '월남전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이 그렇다. 다만, 참전 군인들은 다큐멘터리 속에서는 강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탄 씨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이 진실을 한국 정부와 참전 군인들이 인정해야만 저와 퐁니, 퐁넛 마을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가 누그러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이길보라 감독은 17일 언론시사회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월남 참전군인이셨다는 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며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도 그런 일을 했을지 궁금했다"고 했다. 이어 "베트남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평화 기행(평화를 위해 떠나는 여행)을 통해서 베트남에 갔을 때, 탄 아주머니를 만났다"며 "제가 가해자인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고도 따뜻한 밥 한술 뜨고, 자고 가라고 했다. 탄 아주머니의 그런 자세를 쫓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어떤 주체가 선이고 어떤 주체가 악이라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분들(참전 군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79분. 12세 이상 관람가.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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