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케이크메이커>는 죽은 연인의 자취를 쫓아 간 한 남성이 그의 아내의 카페에서 일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케이크처럼 달달한 로맨틱코미디가 아닐까싶은데 작품의 분위기는 시종 진중하고 어딘가 위태롭다.
 
독일인 파티시에 '토마스'는 '오렌'과 연인 사이다. 오렌은 이스라엘인으로, 출장차 독일에 왔다가 토마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느날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된 토마스는 오렌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간다. 그곳에서 오렌의 아내, 아나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녀의 카페에서 일한다.
 
아니타의 일을 돕는다고는 하지만, 토마스의 본심은 오렌의 숨결과 자취를 조금이라도 느껴보기 위함이다. 토마스의 케이크가 인기가 많아지며 카페는 성황을 이루고, 토마스는 자신을 생경한 듯 불편하게 여기는 유대인 사회에 차차 적응한다. 그러나 사랑은 운명의 장난인지, 아나트는 토마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둘은 엉겹결에 사랑을 나눈다.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 결국, 아나트는 토마스와 오렌의 관계를 알게 된다.
 
스토리만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싶지만,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꽤나 묵직하다. 아마도 영화 배경이 독일과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미국-캐나다'나 '영국- 프랑스'가 배경이었다면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을지 모른다. 
 
 영화 <케이크메이커> 포스터

영화 <케이크메이커> 포스터 ⓒ 알토미디어(주)

  
독일-이스라엘, 두 남자의 '불륜'
 
영화의 시작 부분, 오렌이 토마스의 가게에 나타나 이스라엘인이라고 밝혔을 때부터 이 사건의 전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머릿속을 재빨리 스쳐지나는 홀로코스트, 유대인학살, 나치, 2차 세계대전 등의 이미지. 일반적으로 가해자-피해자의 패러다임이 먼저 떠오르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그냥 사랑하는 연인이다. 물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연인은 아니다. 불륜에다, 동성애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연인일지도 모른다. '규범'이라는 '선'을 넘은 연인들.
 
오렌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후, 토마스는 예루살렘에 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독일 사람 토마스가 불편하다. 면전에 대고 싫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떨떠름한 표정들이다. 극중 아나트의 주변에서 그녀를 도와주는 한 남자(친척인지 친구인지 정체가 모호한 유대인 남자)는 아나트에게 '왜 (많고 많은 유대인을 두고) 하필 독일인을 고용했냐'며 나무라고, 아나트의 아들에게는 '토마스가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 토마스가 비유대인이고, 게다가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트는 달랐다. 아나트는 독일인 토마스를 스스럼없이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고, 코셔 음식(유대인의 율법을 따르는 정결한 음식)이나 샤바트(금요일 해지는 날부터 토요일 해질때까지의 안식일) 같은 유대인 문화에 구애받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토마스를 의지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사실...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나트는 차츰 토마스를 의지하게 되며 사랑하게 된다. 아나트에게는 토마스가 독일인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아나트는 차츰 토마스를 의지하게 되며 사랑하게 된다. 아나트에게는 토마스가 독일인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 알토미디어(주)

 
가치의 대립, 경계를 세심하게 다룬 영화
 
토마스가 죽은 남편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결국 아나트는 토마스를 찾아 다시 베를린으로 간다. 영화의 마지막은 토마스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아나트의 모습으로 끝난다. 토마스는 아나트가 온 줄도 모른 채 외출을 한다. 아나트는 왜 독일로 갔을까? 둘은 다시 만났을까? 하지만 그녀가 베를린으로 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녀 역시 '경계'를 넘었다는 것.
 
이 영화는 경계의 영화다. 불륜 vs. 규범(전통), 동성애 vs. 이성애, 가해자 vs. 피해자, 내국인 vs. 외국인...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느꼈던 묘한 압박감과 불편함은 이 영화가 경계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코셔 음식을 철저히 지키고, 샤바트라는 안식일에는 정해진 음식을 먹는 것을 전통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독일인이 만든 블루 포레스트 케이크나 쿠키는 철저히(?) 서양의 맛이다. 그럼에도 무척 인기가 좋다. 맛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걸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 그러나 토마스의 케이크가 코셔의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거부한다. 자신의 본능과 감각보다는 전통과 규범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코셔'는 유대인 사회에 3천년 이상 내려온 전통이고, 유대인 남자들은 외출할 때 반드시 키파를 쓴다. 유대인의 전통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영화를 단순히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룬 영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독일인 토마스가 이스라엘인 오렌과 함께 '유대인' 식으로 식사를 했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 두 사람이 사랑할때는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전통과 규범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

독일인 토마스가 이스라엘인 오렌과 함께 '유대인' 식으로 식사를 했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 두 사람이 사랑할때는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전통과 규범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 ⓒ 알토미디어(주)

 
뜬금없이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유대인 아버지 '테비에'가 우렁차게 부르는 노래 'Tradition(전통)'이 떠오른다. 유대인에게는 전통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견고한 성과 같은 보수성.
 
전통과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받아야하지만 만약 그것이 삶을 경직되게 만든다면, 그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것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무엇을 위해서 그 전통과 관념을 지켜야하는 걸까. 또한 개인과 개인이 만났을 때, 역사 속 개인으로서는 어떤 위치를 취해야 되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케이크메이커>라는 달달한(?) 제목과 달리 여러가지 생각할거리를 주는 달콤쌉싸름한 영화다.
케이크메이커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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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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