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 12:26최종 업데이트 20.02.1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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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순헌관 ⓒ 연합뉴스


"누구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심리적 효과는 엄청나다. 17~35세의 모든 사람이 '출산에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묶일' 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담과 특권을 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며, 모든 이가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의 남성들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남성들도 없다." -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중

어슐러 르 귄의 SF 소설 <어둠의 왼손>은 '게센'이라는 가상의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에서는 가임기에 있는 사람들의 성별이 매달 랜덤으로 바뀐다. 즉 이달에는 여성이었던 사람이 다른 달에는 남성이 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이전까지 남성이었던 인물이 바로 다음 달 여성으로 변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사자들조차 자신이 어떤 성별이 될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도 아니며 남자도 아니다.


지구는 아니지만 성별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는 곳에서 살던 주인공 겐리 아이는 이런 게센인들을 바라보면서 매우 큰 혼란을 느낀다. 때로는 남성처럼, 때로는 여성처럼 보이는 그들 앞에서, 무엇을 근거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성기가 늘 돌출되어 있고 언제든 성교를 할 수 있는 아이는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성도착자나 다름 없는 상황이므로 더욱 그렇다.

이처럼 <어둠의 왼손>은 성차가 존재하는 세계의 사람이 성차가 없는 곳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성별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자연스레 깨우쳐준다. '여성스러움' 혹은 '남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 사실상 그런 특성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성욕은 또 무엇인지, 개인의 성향과 성차를 어디까지 구분을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함께. 무척 흥미로운 작품으로 나 역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여성'이라는 장막을 걷어내도 '차별'은 남는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도 이와 비슷한 사회가 있다. 다름 아닌 여자대학들이다. 나는 국내 여자대학 중 한 곳을 졸업했는데, 오늘날 여대의 존치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지만("예전처럼 여자는 무조건 공부를 못하게 하는 세상도 아니건만 여자대학이 뭐하러 필요해?", "여성만 갈 수 있는 대학이라니 역차별이다!!" 등)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있어 필요성이 큰 존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자대학 역시 앞서 언급한 르 귄의 소설 속 게센 행성과 같이 성별이 지워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장도 여성, 학생회도 전원 여성, 과대표도 여성, 선배도 여성, 후배도 여성, 동기도 여성인 공간. 상냥한 친구, 권위적인 선배, 무례한 후배, 날라리, 모범생,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모두 여성인 곳. 권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모두 여성인 세상.

이처럼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된 여대에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 중 성별이라는 기준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살면서 무수히 경험하고 들었던 '여자가 어떻게', '여자라서' 혹은 '여자니까' 의 이유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레 스스로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된다. 마치 <어둠의 왼손>에 등장하는 게센인들과도 같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여대는 여성들 스스로가 가진 다양한 층위를 깨닫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흔히 성차가 사라지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이라는 장막을 한 꺼풀 걷어낸 뒤에도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다양한 차별이 남는다. 그러므로 이런 세계를 경험한 여성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매우 복합적인 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는 있으나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성은 피해자일 뿐일까?
   

'성전환 남성 환영', '여대 허물어질 것' 2020년 2월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학생'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솔직히 말해 애초에 이런 논란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성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심각한 고민을 해왔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정체성의 고민을 덜 수 있는,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자대학을 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법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여성인 사람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사뭇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해당 여대의 재학생들 중 일부가 그러한데, 개중에는 대자보를 붙이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예상 이상으로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성별은 임의로 바꿀 수 없으며, 여대는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남성으로서의 권력을 누리며 안락하게 살다가 돌연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을 위해, 즉 '내키는대로' 성별을 선택한 사람을 위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남자로 살아온 사람이 여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트랜스젠더들은 여성을 혐오하고 위협하며 범죄를 저지른다고. 심지어 개중에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들 사이에 '침투'하기 위해 수술을 한 남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단지 여성들 사이에 '침투'하기 위해 인생을 걸 정도의 대수술을 감행하는 사람이 있을지,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 한 사람이 과연 남성으로 태어났다고 호모소셜에서 파생되는 권력을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었을지, 트랜스젠더 여성과 지내는 것이 대체 어떤 실질적 '불편'을 초래하는지,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Cisgender - 타고난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이 동일한 사람)  여성 중 누가 저지른 범죄가 더 많을 런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그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여대의 의의와 역할에 대해서, 성별과 젠더에 대해서, 강자와 약자에 대해서, 인간이 가진 폭력성과 힘에 대해서도.

그들은 트랜스젠더보다 여성의 인권이 훨씬 열악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입학허가가 난 대학에 들어가는 것조차 이토록 뜨거운 이슈가 되는 상황을 보라. 논란의 중심에 섰던 트랜스젠더 여성은 결국 뜨거운 반발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한편,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에 대한 거부 의사가 이렇게나 명확한 이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버티는 것, 자신을 향한 혐오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에 대해 누구보다도 강력한 의견을 표출했던 단체들은 여성은 오로지 여성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고 목숨을 잃고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 여성은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바로 지금, 여성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 여성을 공격하고 비난하여 결국 쫓아내고 말았던 이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젠더와 성차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 젠더와 성차에 집착하며 약자에 대한 혐오를 휘두르고 있다. 물론 여성도 인간이며 그런 이상 누군가를 혐오하고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 그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대는 '그러라고'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당신들은 여대에 있을 자격이 없다.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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