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김개남 장군
 김개남 장군
ⓒ 박도

관련사진보기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가 전봉준의 활동 근거지인 전주나 김개남의 정예군이 있는 남원이 아닌 삼례를 택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동학농민군이 삼례를 제2차 봉기의 기포지로 삼은 것은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전주부 바로 외곽에 위치한 데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했던 교통의 요충지가 바로 삼례였다.

삼례는 또한 당시 1백여 호밖에 없었지만 주막이 많고 평야지대를 끼고 있어 많은 수가 숙식을 해결하는 데 용이했다.

이 밖에 삼례는 1892년 대선사 신원운동을 위한 취회가 열렸던 동학의 교세기반이 탄탄했던 곳으로 동학농민군 중요거점의 하나였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주석 5)

 
교룡산성 성벽 이곳이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팻말을 누군가 세워두었습니다.
▲ 교룡산성 성벽 이곳이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팻말을 누군가 세워두었습니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삼례에서 재봉기를 선언하고 격문을 띄우자 며칠 만에 27개 집강소에서 11만 4천5백 명의 농민군이 호응하여 삼례로 집결하였다.

"이즈음 농민군은 호남지방 뿐만 아니라 충청도ㆍ경상도ㆍ경기도ㆍ강원도ㆍ황해도 등 북쪽 지방에까지 이르는 조선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났다. 일본군이 왕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도발한 사태는 조선의 전민중에게 심각한 위기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며 이에 따라 조선 전역에서 항쟁의 횃불이 타올랐던 것이다." (주석 6)

동학농민혁명군이 제2차 기포에까지 이르렀으나 여러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각 포와 접주들이 거느린 군사를 모은, 지휘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일종의 연합군적인 성격인데다 보급이나 무기ㆍ수송 등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동학농민혁명에 반대하는 내부세력의 도발이었다. 유생들은 초기에는 동학농민군의 위력에 눌려 침묵하거나 좌고우면하다가 정부가 청군을 불러들이면서부터 자체 민보군(民保軍)을 조직하는 등 동학농민군에 대항하고 나섰다.
 
동학혁명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군.
▲ 동학혁명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군.
ⓒ 홈페이지 동학농민혁명

관련사진보기

 
동학농민군의 삼례 재기포 과정은 1차기포 때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각 고을 단위로 동학농민군의 과감한 개혁활동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세력들이 농민군에 대항하기 위한 민보군을 조직한 경우가 있었다.

이에 따라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설득에 나서 농민군과 민보군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광주ㆍ나주ㆍ장흥ㆍ강진ㆍ순천 등 반농민군의 활동이 거센 지역에는 유력한 농민군 지도자가 파견되어 반농민군 세력을 진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손화중ㆍ최경선은 광주ㆍ나주에, 김개남은 전라좌도를 관할하는 남원에, 김방서는 장흥ㆍ강진에, 김인배는 순천ㆍ광양에 머물며 반농민군 세력을 진압했다. 그 결과 9월 기포에 합류한 동학농민군은 정읍ㆍ고창ㆍ전주ㆍ김제ㆍ부안ㆍ익산ㆍ삼례 등 전라우도 일부지방이 중심이 되었고, 그 밖의 전라좌도를 비롯한 상당수 전라도 농민군들은 바로 합류하지 못했다. (주석 7)


김개남이 삼례의 2차봉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먼저 관내 보수 세력의 민보군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을 것 같다. 김개남 뿐만 아니라 전라우도 동학농민군의 병력이 합세하지 못함으로써 동학농민군의 재기포는 역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대신 북접의 호응을 받게 되었다.

김개남은 후방에서 틈을 노리는 지방토호세력과 이들의 사주를 받은 민보군을 진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그렇다보니 추수철에 접어들게 되고 북진이 늦어진 것이다. 그에게는 천시(天時)와 지리(地理)가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주석
5> 김은정 외, 앞의 책, 296쪽.
6> 우윤, 앞의 책, 236쪽. 
7> 김은정 외 앞의 책, 296~29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