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랑싯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조별리그 최종전. 한국 김학범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0.1.15

지난 15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랑싯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조별리그 최종전. 한국 김학범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대표팀이 사상 첫 우승과 도쿄올림픽 티켓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금의환향했다. 김학범호는 태국 방콕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서 6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동시에 세계 축구 역사상 최초로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도 수립했다.

김학범호의 성공은 한국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감독은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AFC U23 챔피언십 정상을 통하여 다시 한번 '국내 지도자'들의 역량을 증명했다. 최근 한국축구는 2010년대 이후 연령대별 대회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홍명보, 정정용, 고 이광종, 신태용에 이어 김학범 감독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내파 감독들이 이룬 성과다.

김 감독이 2018년 김봉길 감독의 뒤를 이어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을 때만해도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커리어 대부분을 프로팀 지도자로 활약해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과는 큰 접점이 없었던 데다 최근 몇 년간은 여러 팀을 전전하며 커리어도 신통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부 대표팀 팬들을 중심으로 국내파 지도자들의 자질이나 역량을 맹목적으로 폄하하는 여론이 득세했던 것도 부담이었다.

김 감독의 성공은 베트남에서 국민영웅으로 거듭난 박항서 감독을 연상시킨다. 박 감독도 한국 무대에서는 사실상 한물간 지도자로 꼽히며 잊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베트남 무대에 도전하여 인생역전에 가까운 대성공을 일궈냈다. 김학범 감독은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박항서 감독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김 감독은 오직 성적으로 외부의 불신과 편견을 당당히 극복했다. 젊은 지도자들을 선호하는 최근 국내 축구 문화에서 김학범이나 박항서처럼 연륜 있는 50대-60대 지도자들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또한 김학범 축구는 '한국축구의 장점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유럽축구의 영향을 받은 한국 축구는 2010년대 이후 '점유율과 빌드업'을 화두로 삼고 있다. 현재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도 꾸준히 점유율 축구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점유율과 빌드업은 오늘날에는 그 자체로 독특한 전술이라기보다는 현대축구의 기본적인 과정 정도로 여겨진다. K리그에서도 거의 모든 프로팀들이 후방에서의 짧은 패스를 통해 볼을 최대한 오랫동안 점유하면서 경기를 지배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문제는 단지 후방에서 볼을 오랫동안 소유한다고 해서 경기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축구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골이고, 볼을 아무리 오랜 시간 가지고 있어소 득점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표면적으로 높은 승률에도 불구하고 벤투호의 경기력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효율성 부족에 있다. 약팀을 상대로 볼점유는 높을지 몰라도 정작 상대 문전을 위협하는 전진패스의 성공률이 낮고 밀집수비를 공략하는데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점유율만' 모범답안처럼 맹신한다는 것도 문제다. 축구에서 점유율은 승리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뿐 항상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점유율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수비를 두텁게 세워 역습을 노릴 수도 있고, 혹은 세밀한 패스를 생략하고 롱패스를 공중에 띄워 한번에 승부를 보는 소위 '뻥축구'를 구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점유율과 빌드업에서 앞선 강팀을 상대로, 약팀이 수비와 역습, 킥앤 러시 전술로 무너뜨리는 경우도 축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벤투 감독이 아시아 2차예선에서도 약팀들에 고전한 것은 바로 점유율이나 주전급 멤버들을 내세우고도 경기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결핍되어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측면을 활용한 빠른 역습과 피지컬의 우위를 내세운 압박축구는 오히려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김학범호가 아시안게임과 챔피언십에서 거둔 성공은 벤투호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김학범호는 상대팀과의 대결에서 점유율에 우세를 점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 자체가 경기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특히 요르단과의 8강전 이후로는 오히려 볼점유만 놓고보면 상대팀에 뒤졌음에도 오히려 경기력에서는 점점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실수를 해서 볼소유를 뺏기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적인 패스를 통하여 찬스를 만들고, 공이 빼앗긴 자리에서 곧바로 전방위 압박을 통하여 다시 볼소유권을 되찾아오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볼점유율이 높지 않아도 상대에겐 밀린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시종일관 주도할 수 있었다.

무한 로테이션과 효율적인 선수교체도 김학범호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김학범 감독은 벤투 감독처럼 매경기 예상가능한 베스트11를 들고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강인이나 백승호처럼 특출한 유럽파들이 합류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김 감독은 토너먼트에서 모든 선수들을 고르게 가동하는 역발상 전략으로 경쟁구도를 극대화시켰고 상대팀에게는 예측불가능한 혼란을 줬다. 김학범호의 선발라인업은 상대팀에 따라 거의 매경기 바뀌었고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필드플레이어가 고르게 그라운드를 밟았다.

준비했던 전술이 통하지 않거나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교체선수들을 활용하여 경기흐름을 바꿨다. 중국의 이동준이나 요르단전의 이동경은 교체로 투입되어 극장골을 터뜨리며 해결사로 활약했다. 엔트리를 구성하면서 포지션마다 조금씩 다른 스타일의 선수들을 활용하며 전술 유연성을 높인 것도 팀전력을 한층 극대화할수 있었던 요인이다.

결국 벤투와 김학범의 결정적인 차이는 '감독의 입맛에 맞는 축구를 위하여 선수를 끼워맞추느냐' 혹은 '감독이 선수들의 능력을 살리는 축구를 하느냐'의 차이다. 점유율이나 역습이냐 하는 전술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23세 이하 선수들은 머지않아 A대표팀에서도 주역이 되어야할 이들이다. 그런데 김학범 축구와 벤투 축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과연 현재 김학범호의 선수들이 벤투 체제에서도 그만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축구는 최근 몇 년간 특유의 색깔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단지 선진축구의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거나 유럽의 전술을 모방한다고해서 한국축구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축구가 진정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한국축구의 진정한 장점은 어디에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학범호 벤투 점유율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