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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 성전환 변희수 하사 "훌륭한 여군되어, 나라 지킬 기회 달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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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저를 포함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난 1월 22일 변희수 하사가 군 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날 육군본부는 휴가 중 해외에서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변희수 하사가 '심신장애3급'에 해당된다며 군인사법 등에 따른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사유'라면서 전역 처분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법원에서 성별 정정이 확정될 때까지 심사를 3개월 정도 연장해 줄 것을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 구제 권고를 무시한 직후 이루어진 것이었다. 변희수 하사는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성실히 임무와 사명을 수행하는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다고 했으나, 군 당국은 성소수자 인권에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현역복무 부적합 기준 : 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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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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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이 전역 처분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육군본부에 따르면 변 하사는 군인사법 제37조 제1항 1호에 따른 '심신장애로 인해 현역복무가 부적합한 자'라고 한다. 자신의 성을 확정하는 것을 군 당국은 '심신장애'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변 하사는 군 병원에서 음경 훼손 5등급, 고환 적출 5등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 경우 군 규정에서는 심신장애 3등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변 하사는 전역심사 대상자가 된다는 것이 육군의 설명이다.

하지만 남근이 도대체 왜 군대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인지는 군 당국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러한 논리는 현재 한국군의 상황이 모순 투성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근이 없는 여군은 애초에 왜 뽑고, 더 확충하려고 하는 것인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변희수 하사를 남근 여부로 전역시켜야 한다면, 동일한 기준으로 여군 자체를 해체시키는 것이 옳지만, 군 당국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군 당국이 이야기하는 남근의 유무란, 기존의 양분된 성정체성 속에서만 예외를 인정하는 거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자신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성정체성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이번에 분명히 선언한 셈이다.

성소수자와 군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2017년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2017년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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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다른 성정체성, 성적지향의 군인에게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육군은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동성애자 장병 색출 작전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A 대위가 체포되었다. 죄명은 '군형법 제92조의 6 위반'이었다. 해당 조항은 군인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했을 때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동성애자 장병이 단순히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2018년에는 해군 간부가 레즈비언인 하급자에게 교정성폭력 가해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군사법원은 피해자의 증언을 배척한 채 무죄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해군에서 동성애자 색출이 일어났다는 군인권센터의 폭로가 나왔으며, 곧이어 육군에서 성소수자 색출 사건에 휘말린 군인들은 강제 전역에 내몰려야만 했다. 이렇듯 보수정권보다 인권보호에 상대적으로 더 신경 쓴다는 진보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달라지는 군대 : 성소수자에게는?

분명 한국군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휴대폰 반입을 허가했으며, 평일 외출도 허용되었다. 영창은 123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미흡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이렇듯 한국군은 근래 눈에 띄게 이전과는 달리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게 여전히 군대란 두려운 존재다. 스스로 군대에 성실히 복무하려고 해도 그렇다. 부대관리훈령에서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라는 비록 동성애자에 한정적이지만 대한민국의 그 어떠한 법령보다도 성소수자와 관련해 가장 선진적인 규정을 담고 있는 조직이 군대임에도 그렇다. 이런 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소수자는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그것이 제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나아가고 있다지만, 성소수자는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구제받기 힘들기만 할 뿐이다.

한국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구성원이 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성소수자도 그 일원 중 하나다. 한국군이 징병제를 선택하든 모병제를 선택하든 적정 규모를 유지하려면 이들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군 당국의 생각은 바뀔 기미가 없고, 이전처럼 다양성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군대를 운영하려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추후 한국군이 적정 규모로 유지되길 바라는 것은 사치가 될 것이다. 이런 맥락의 고려도 없이 육군이 이번에 변희수 하사를 전역 조치한 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위협한 꼴이 되었다.

다양성이 한국군의 힘이 되어야
 
2019년 10월 2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제2회 광주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갯빛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성소수자" 상징 깃발 흔들며 2019년 10월 2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제2회 광주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갯빛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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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성소수자에게 군대의 문을 개방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게이 육군장관이 나왔으며, 캐나다는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라는 모토 아래 트랜스젠더 군인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 일부의 우려와 달리 이런 국가들의 군사력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성소수자로 인한 혼란도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희수 하사의 성정체성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국군이 갑자기 질적 하락을 겪거나 거대한 혼란 속으로 빠지지 않는다. 한국군은 스스로가 갖고 있는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이런 편견 극복은 한국군 혼자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도 군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도적으로 편견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군인사법 개정 등 성소수자가 실질적으로 군대에서 무사히 복무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국군이 조금 더 실질적으로 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한 군데에 모일 때 비로소 한국군은 캐나다군처럼 다양성을 힘으로 갖는 군대로 성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군은 모든 국민을 포용하고 지키는 진정한 '국민의 군대'로 발돋움 할 수 있다. 또한 한국군 스스로가 외치는 '선진병영'도 진정한 의미에서 실현된다. 그 과정의 시작에 변희수 하사에 대한 전역처분 결정을 바로잡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변희수 하사의 거수경례가 기자회견장이 아닌 군부대 내에서 다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성소수자들은 한국군 내에서 자신들이 있을 자리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상현은 <내 이름은 군대> 저자입니다.


태그:#성소수자, #군대, #변희수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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