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서 음식을 소재로 한 예능은 이제 그리 새롭지 않다. 해외로 나가 한식을 소개하는 콘셉트도 <윤식당>을 비롯해, <현지에서 먹힐까> <국경없는 포차>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시도한 바 있다.

이들의 후발주자 격인 JTBC 예능 프로그램 <이태리 오징어순대집>은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크루로 외국 현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한다'는 색다른 구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알베르토 몬디-샘 오취리 콤비에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친숙한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로 구성된 주인공 3인방은 예능에서 한번도 검증되지 않은 생소한 조합이다. 이들은 모두 요리 비전문가이지만 기대 이상의 찰떡 케미를 선보이며 한국인 출연자나 MC 없이도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알베르토는 기존 한국 예능에서 보여주던 부드러운 젠틀남의 이미지를 넘어 일을 할때는 굉장히 추진력 있고 리더십 있는 면모를 보여줬고, 오취리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에 충실했다. 맥기니스는 셋 중 맏형이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남자다운 이미지와 달리 정작 주방에서는 귀여운 실수를 연발하는 허당 이미지로 의외의 웃음포인트를 담당했다.

'지원군'으로 나선 알베르토의 가족과 미라노의 고향친구들도 홀과 바, 주방 등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다. 이들 중 다수는 이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인물들이었다. 출연자들간의 관계와 이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개성을 캐릭터로 만들어낸 제작진의 자막 센스도 돋보였다.

영업 초반부 이들은 조금은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영업에까지 열의를 다하는 모습과 한층 능숙해진 모습들은 이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했는지를 보여줬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긍정적인 자세와 유머를 잃지 않는 면도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얻었다.

방송에서 선보인 한식의 메뉴는 오징어순대, 김치찌개, 모둠전, 떡갈비, 철판 닭갈비, 문어국수, 소갈비찜 등이었다. 한국인에게는 모두 익숙하지만 몇몇 음식은 서양인에겐 낯선 맛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현지인들이 큰 거부감없이 다양한 한식을 받아들이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그동안 국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식을 체험하던 모습과는 또다른 편안함을 줬다.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알베르토를 중심으로 한식 본연의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지인들의 취향과 특성을 고려한 메뉴 선정과 균형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이오순>만의 가장 큰 매력은 한식과 이탈리아 가족주의 문화간 의외의 궁합에 있다. 이탈리아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낯선 한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관찰하는게 이 프로그램의 기본 구성이라면, 한국의 시청자들은 한식을 모티브로 이탈리아인들의 식문화와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공동체 내부의 인맥과 유대감을 강조하는 이탈리아인들의 기질은 한국 문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이오순>이 단지 이탈리아인들에게서 '한식 최고'라는 뻔한 반응을 기대했다면, 프로그램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방송은 그들이 낯선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사 시간을 즐기는 문화에 더 주목한다. 이탈리안들에게 식사 시간은 단지 개개인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거나 허기를 채우는 시간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추억과 공감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방송 내내 강조된다.

세대와 인종을 넘어 음식을 통하여 공감대를 이루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은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주문이 밀리거나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조급해하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며 식사 시간 자체를 하나의 여가로 즐길 줄 아는 이탈리아의 여유로운 식사 문화는, 최근 식사 시간에 소통이 부족해진 최근의 한국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오순> 크루의 팀워크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주의 정서에 있었다. 현직 바리스타, 승무원, 숙박업소 사장님 등 저마다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들이 방송이라는 비즈니스를 위하여 일회성으로 뭉쳤다는 느낌보다는, 알베르토라는 연결고리를 통하여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친밀함과 진정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케미가 돋보였다.

이들 대부분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함께 자라왔던 미라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힘든 식당 일에도 모두 선뜻 돕겠다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인인 오취리나 맥기니스도 위화감없이 힘든 일을 함께하며 국적과 인종을 넘어 빠르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은 잔잔한 웃음을 자아냈다.

구태여 일일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인위적인 연출의 개입 없이도 출연자들이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티나지 않게 서로를 배려하며 챙겨주는 모습은, 한국 특유의 '정' 문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낯선 외국에서, 한국인 없이 외국인들만 나오는 방송임에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와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었다.

한편 시즌 1의 영업이 성공적으로 마감한 최종회 방송 말미에는 알베르토가 의문의 남성으로부터 "고향에 한식당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는 모습이 공개됐다. 벌써 다음 시즌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또다른 장소에서 또다른 멤버들로 한식당에 도전할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태리오징어순대집 알베르토몬디 샘오취리 음식예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