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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증후군, 가부장적 차별, 세대간의 불화... 왜 명절이 되면 똑같은 문제와 갈등이 돌림 노래처럼 되풀이되는 걸까요. 불편한 사람 없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은 아득한 걸까요. '이런 명절 어때요?'는 저마다 바꾸고 싶거나 새롭게 도입하고 싶은, 새로운 명절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설렘을 안고 새 해를 맞이한 지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1월 1일을 맞는 설렘과는 다르다. 긍정적인 의미의 두근거림이기보다는 또 상처받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조마조마함이다.

연속 4일. 빨간색 날짜가 다가올수록 강도는 심해진다. 결혼 후 14년째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묘한 불편감은 올해 유독 더 심하다. 아마도 지난해 추석, 시가에서 1박 2일을 한 후 남편과 한판 붙었던 기억 때문이리라.
 
 명절에 식구들이 모인 후,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 역시 집안의 여성들 뿐이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인 후,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 역시 집안의 여성들 뿐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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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나의 시어머니는 '탈제사 선언'을 하셨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여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가에 갔다. 하지만, 1박 2일을 보낸 후의 피로감은 차례를 지낼 때와 별반 다름없었다.
     
차례를 위한 음식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식구들이 먹을 음식들을 매 끼 만들었고(평소에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잡채, 오징어 튀김, 갈비 등 잔치 음식들) 나는 대찬 설거지를 해야 했다. 1박 2일 4끼의 설거지를 모두 담당했던 나는 시가에서의 마지막 끼니를 먹은 후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하고 말았다.

"내가 여기서 설거지 다 했으니까, 집에 가선 당신이 다 해!"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더니 내게 이렇게 응수했다.

"내가 운전 다했잖아! 넌 너 힘든 거만 생각하니? 명절은 나도 힘들어!"

우리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렇게 설전을 벌이다 휴전상태로 지금까지 있는 터였다.

손상 받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감

나는 1년 반의 캐나다 생활 동안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감을 확립했다. 2017년 여름부터 2019년 초까지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평등한 삶이 무엇인지 익혔고, 이를 통해 결혼 후 느껴왔던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불편함의 실체를 마주했다.

보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남편과 합의를 하고 우리 집의 많은 것을 바꿔왔다. 우리가 꾸린 가정 안에서 남편은 나의 가치인 '평등'을 존중해주기 위해 애썼고, 우리는 가부장적 전통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시가에서는 달랐다. 남편은 시가에 가면 자연스레 '아들'이 됐다. 집에서는 식사 준비를 할 때 주방에서 함께 했지만, 시가에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와 시어머니가 음식을 다 차려 놓고 불러야만 식탁에 와서 앉았고, 식사 후 자신의 수저와 밥그릇을 싱크대에 옮기는 일조차 종종 잊었다. 아침엔 식사가 다 차려질 때까지 늦잠을 잤고, 남편을 깨우러 들어가려 하면 시어머니는 "피곤할 텐데 더 자게 놔두어라"라고 말리셨다.

반면 나는 자동으로 '며느리'의 정체감이 발동됐다. 이른 새벽 시어머니가 쌀을 씻는 소리가 나면 눈이 번쩍 떠졌고 찬 물로 세수를 해 잠을 쫓고는 주방으로 나갔다. 나는 식사 준비를 거들고, 식사 후엔 시어머니가 싱크대에 손을 담글세라 쏜살같이 일어나 고무장갑을 끼었다. 시어머니가 과일이라도 깎거나, 주스라도 만들면 벌떡 일어나 "제가 할게요"를 연발해댔다.

이상하게 명절 때는 더했다. 명절 때 시가에서 가만 앉아 있는 건 며느리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특히 지난 추석 땐 제사까지 없앤 좋은 시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더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러고 나면 나는 늘 화가 났다. 우리 집에서 일궈온 평등한 부부관계가 시가에 가면 단숨에 무너지는 현실에 화가 났고, 동시에 시가에서 나를 존중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그 화는 종종 남편을 향했다. 지난 추석의 설전처럼 말이다.

시어머니에 대한 인간적 연민  
 
 시어머니의 명절 보이콧은 나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다시 70세 친정엄마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진다. 도미노는 시작되었다.?
 나의 시어머니는 늘 모든 살림과 돌봄을 도맡아하셨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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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정체감을 갖게 된 후, 시가에서 '자기존중'을 실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은 시어머니가 '들어가 쉬어라' 하면 냉큼 들어가 쉬었고,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지 않고 혼자 목욕탕에 가서 쉬다 온 적도 있었다.

한두 번은 아침에 시어머니가 일어난 줄 알면서도 일어나지 않고 누워 있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 혼자서 모든 식구들의 식사와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시고, 청소와 빨래까지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 죄책감을 유발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나의 시어머니는 늘 모든 살림과 돌봄을 도맡아하셨다. 시아버지는 평소에도 그러시지만, 명절 때 집에 식구들이 많아지거나 손님이 온다고 해도 꿈쩍하시지 않는다.

자신의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와 바둑을 두는 낙으로 사시는 시아버지는 식사 때만 나오셔서 딱 밥만 드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가끔 나오실 땐, 간식거리를 찾으실 때였고 그 때마다 시어머니는 무언가를 또 준비해서 시아버지께 드렸다.

평생을 가족을 돌보면서 지내온 시어머니를 보면, 나는 늘 연민을 느낀다. 게다가 나의 시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거나 무엇을 시키신 적이 없었다. 늘 쉬어라, 편하게 지내라 하시면서 본인이 홀로 짐을 지고 계셨다. 시가에 가면 나의 마음은 이런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가부장의 권위만 내세우시는 시아버지에 대한 분노 사이를 오갔다.

시어머니를 돕자니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애써서 실천해온 '평등'의 가치를 내려놓는 듯 했고, 가만 있자니 시어머니가 안쓰러워서 힘이 들었다. 나의 가치를 존중하고, 페미니스트로서의 나의 정체감을 지키는 일과 한 사람으로서 시어머니를 돕는 일 사이에서 나는 늘 갈등했다.

남편이 먼저 나서야 한다

도대체 시가에서 나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대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설이 다가오면서, 나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시가에서 느끼는 불평등한 느낌은 남편과 나의 처지가 다르다는 데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온전한 사람으로 귀한 아들로 대접받는 남편과 부수적 존재로 취급되는 나.

시가에서 드는 묘한 느낌은 바로 여기서 유래하는 모멸감이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불평등한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이보다는 우리 관계가 갑자기 불평등해지는 데서 오는 모멸감이 훨씬 컸다.

또 한 가지 깨달음은 그 누구도 내게 며느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고 시키지 않았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결혼 전 인사를 갈 때부터 과일 깎는 연습을 했고, 가족이 되기 전부터 시가의 설거지통에 손을 담갔다.

대대로 물려받은 '며느라기(웹툰 <며느라기>의 작가 수신지가 시가에서 예쁨 받고 싶어 가부장적 전통에 순응하는 며느리의 자세를 칭한 말)'는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앉아 시가에서 나의 행동을 조정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답이 보였다. 우선, 남편이 움직여주는 것이었다. 사실 시어머니의 노동에 대해 나보다 더 안타까워야 할 사람은 그 집안의 아들인 남편이었다. 남편이 먼저 나서 명절노동에 함께 한다면 덜 억울한 느낌이 들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며느라기'를 인식하는 거였다. '며느라기'의 명령에 따르는 것인지,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행동인지를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며느라기'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아야 했다.

나는 며칠 전 남편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 놓았다.

"명절이 오면 내가 날카로워지는 거 알지?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명절만 되면 불평등한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 같아. 엄밀히 따지면 시가에 관여해야 할 사람은 나보다는 당신이야. 나는 한 다리 건너이고 당신은 아들이잖아. 사위는 처가서 손님 대접을 받는데 며느리는 일꾼 대접을 받는 거 불평등하지 않아? 나는 이게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며느리 역할을 했는데 이젠 진짜 더는 못할 것 같아."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우리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랐잖아. 이제 알았으니까 바꿔가야지."

나는 이 말에 힘을 얻어 남편에게 요구했다.

"이번 명절엔 당신이 어머니가 뭐 하실 때 먼저 나서서 도와. 당신이 나서서 어머니를 도와 무언가를 하면 나도 같이 할게. 그러면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좀 덜 들 것 같아."

남편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외식하자 할까? 내가 음식 간소하게 하자고, 한두 끼는 사드린다고 말할게. 설거지도 반반 하자."

남편이 기껏 생각한 해결책이 외식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시가에서 느낀 근본적인 억울함을 남편에게 털어 놨고, 이에 남편이 동의해 준 것만으로도 조금은 후련해진 듯했다.

이제 곧 시작된 설 연휴. 우리의 대화가 헛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내 안의 '며느라기'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긴장과 기대감이 합쳐진 묘한 감정으로 설 연휴를 맞이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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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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