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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회사 안 가?"

어쩌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도 금세 뒤틀린 일상을 눈치 챈다. 평범함이 깨졌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갈 곳이 있으며 출근하고 퇴근하는 하루의 반복이 주는 평화로움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문득 회사를 뺀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베이스캠프 없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질문과 답이 뒤엉켜 풀 수 없게 된 생각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창 너머 거리를 본다. 분주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은 각자 길을 가고 있다. 껌뻑이는 점멸 신호는 역할을 하는 둥 마는 둥 늘 그 자리다.

회사는 상당히 괜찮은 갑옷이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좋은 무기로 최대 효율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하며 무형의 신용을 만들어 낸다. 회사가 없다면 어떨까.

발가벗고 들여다본 나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명함은 종이 쪼가리가 되고, 슈트를 벗고 넥타이를 풀면 거긴 낯선 내가 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당연한 것이 사라졌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낯섬은 감정을 넘어 이성을 침범한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뭘 잘할 수 있을까.

절벽 끝으로 생각을 몰아붙인다. 나는 누구일까. 그동안의 커리어가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뭘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돈을 빼고 생각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먼저일까. 실행이 먼저일까. 방향을 확신할 수 없으니 속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 나 홀려봐. 홀려서 널 팔아보라구. 너의 뭘 팔 수 있어?"
 
 나는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
ⓒ 고재웅 (tvN 드라마 미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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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온전히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민이 짙어진다. 사회 초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크게 필요하지 않아서였는지, 회사의 능력이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시스템을 잘 굴리는 톱니가 되면 그것으로 됐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아니, 내가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0년의 세계는 좋은 톱니가 좋은 시스템을 만든다. 기성품에 끼워질 크기가 선발되는 세상은 저물고 있다. 저마다의 톱니가 모여 시스템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고, 좋은 톱니가 시스템을 정한다. 궁극적으로 '난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내가 가진 좋은 톱니는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같다. 톱니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의 주인이 꼭 회사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떤 존재로 먹고 살 것인가란 질문에 답을 내지 못했다. 대신 무엇을 팔 수 있는지 하나하나 적어보는 중이다. 벼랑 끝에서 하는 질문은 초초하고 절실하다. 10년쯤 답을 미루고 안전함을 선택하고 싶은 욕구가 수시로 든다. 그러나 그때 다시 벼랑 끝에 선다면 얼마 남은 선택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선택은 누적되어 나를 규정한다. 현재의 불안을 끌어안고 답을 찾는 것과 미룬 선택의 순간을 다시 맞는 것. 무엇이 더 고통스러울까. 나는 어떤 인간인가. 더 뒤적거려봐야 뭐가 나올까 싶다가도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난 나의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post.jwgo.kr/137에 함께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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