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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맏사위다. 처가는 맏사위에게 중책을 맡긴다. 귀한 딸을 데려간 응분의 대가다. 처가가 요구하는 중대한 책임의 해결 열쇠는 대부분 돈이다.

장인․장모님의 칠순과 팔순잔치 비용, 처가 형제들의 여행 지원금, 조카들의 용돈을 비롯한 처가 행사에서 맏사위는 두둑한 봉투를 쾌척해야 한다. 그러면 처가 식구들에게 사랑받을 뿐 아니라 융숭한 대접까지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장모님으로부터 '우리 사위'라는 칭호를 부여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돈 못 버는 맏사위다.

나는 2007년 퇴직하고 가리봉으로 갔다. 가정 경제는 아내가 책임졌다. 내가 가리봉으로 간 까닭은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싶어서였다. 나는 가리봉에서 6년간 활동하면서 다문화 가족과 이주노동자의 피눈물을 닦아드렸다.

그러다가 연쇄방화로 구속된 다문화 청소년을 만나면서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위기청소년과 미혼모의 아픔을 알게 됐다. 이로 인해 내 어린 시절의 아픔이 떠올랐다. 동병상련에 이끌려 아이들 돕는 일을 시작했고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4년 5월이었다. 장모님이 5만 원을 주셨다. 그룹홈을 시작할 때는 장모님이 10만 원을 주셨다. 그룹홈 반찬값에 보태 쓰라면서 억지로 쥐어주셨다. 나는 어버이날인데도 장모님께 선물도 용돈도 못 드렸다. 장모님이 주신 5만 원을 넙죽 받았다.

어려운 그룹홈 형편 때문에 그 돈이 필요했다. 나는 가정법원이 위탁한 비행청소년 몇 명을 데리고 살았다. 아내가 대출해준 돈으로 월세 집을 얻어 그룹홈을 만들었다. 나는 '우리 사위'의 길과 자꾸만 멀어졌다.

수기공모에 선정돼 장모님을 해외여행 보내드렸습니다!
 
장모님과 함께 떠난 섬여행.
 장모님과 함께 떠난 섬여행.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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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맞는 장모님께 선물을 드려야 했다. 돈만 있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 간단한 돈이 없었던 나는 방도를 강구해야만 했다. 장모님의 팔순을 앞둔 그해에 K은행이 고객을 대상으로 가족사랑 수기공모 이벤트를 했다.

공모에 선정되면 100만 원짜리 여행 상품권을 준다고 했다. 못난 사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의 인생 스토리를 엮어서 응모했다.

"저는 2006년 8월 19일 재혼하였습니다. 아내에겐 딸(당시 17세), 저에겐 두 아들(당시 17세, 14세)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돕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만났는데 저보다 세 살 연상인 아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의 이웃들을 사랑하듯이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저 또한 사랑해주었습니다.

장모님의 결혼 반대는 당연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딸을 애 둘의 가난한 홀아비에게 줄 어머니는 없을 것입니다.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간 첫날엔 냉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감사했습니다. 애초 심성이 따듯한 분이신지라 저의 방문 횟수가 늘어나면서 냉대도 차츰 줄어들었고 마침내 두 아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는 "자네보다 아들들이 훨씬 잘생기고 듬직하네!"라면서 저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나의 절박함을 전달하기 위해 수기 말미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어머님 팔순여행을 해외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별다른 역할도 하지 못하는 맏사위인 제 힘으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가난한 사위를 받아들여주시고 사랑해주신 그 은혜로 인해 각각 남이었던 다섯 명이 한 식구를 이루며 평안 가운데 살게 됐으니, 남보란 듯이 해드릴 순 없지만 그래도 작은 선물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어려운 날도, 슬픈 날도 있다는 어머님의 말씀처럼 이번에는 '좋은 날 좋은 여행'을 팔순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간절한 호소가 주효했는지 선정됐다. 100만 원짜리 여행 상품권을 들고 장모님을 찾아뵙는 나의 보무는 모처럼 당당했다. 여행 상품권을 선물로 드리자 장모님이 '우리 사위'라며 얼싸 안아주셨다. 장모님의 사위 자랑은 가족 모임에서 그치지 않았다.

장모님은 여행 상품권을 가지고 경로당에 달려가 자랑했다. 장모님은 '누구네 사위가 경로당에 고기를 사주고 갔다, 과일을 들여 놨다'고 말하면서 돈 못 버는 사위에 대한 서운함을 큰딸인 아내에게 표시했는데 이로써 장모님의 설움과 못난 사위의 부끄러움은 일거에 해소됐다. 나는 장모님의 자랑스러운 '우리 사위'가 됐다.

나는 시대의 등불을 켜는 공익활동가!
 
장모님이 2020년 정초에 떠난 호텔여행 중에 드신 대게.
 장모님이 2020년 정초에 떠난 호텔여행 중에 드신 대게.
ⓒ 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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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장모님을 또 한번 호텔여행 시켜드렸다. 1박2일 설악산 호텔여행에는 여든 여덟 되신 장모님과 칠십 넘은 장모님의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처제가 동반했다.

장모님은 맏사위가 예약한 온돌 호텔방에서 주무셨고, 온천탕에 가셨고, 대게와 물회 등의 음식을 드셨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남편을 먼저 보낸 장모님과 이모님이 자매의 옛이야기를 나눈 것, 아내와 처제가 우애를 더 돈독히 쌓은 것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나는 모처럼 처가식구들에게 체면이 섰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산다.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다들 그렇게 살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 불의가 정의를 압도하고,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사회적 약자는 짓밟히는 비인간적인 세상이 된다. 그런데 세상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공익활동가들이다.

정의가 불의를 압도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그들은 가난한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삶의 기쁨은 돈으로만 충족되진 않는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기쁨과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기쁨을 돈으로는 감히 누릴 수 없다.

사람의 길이 자꾸만 지워진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그럼에도 사람의 길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공익활동가들의 희생 때문이다. 공익활동가들은 이런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힘들 때가 있다.

과로에 지쳐 쓰러질 때, 전월세 삶을 못 면해 떠돌이로 살 때, 가족이 아픈데도 병원비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등이다. 어떤 공익활동가는 과로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가난에 지친 어떤 공익활동가는 눈물 흘리며 공익활동을 접었다. 공익활동가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이들이 다 떠나면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된다. 

장모님께 호텔여행을 보내드린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호텔에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돈을 벌지 못한다. 장모님을 여행시켜 드린 이들은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사장 염형철)이다. 나는 협동조합 동행의 조합원이다.

나는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다. 그러다 종종 과로에 의해 몸져 눕곤 했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런데 도움 청할 곳이 생겼다. 협동조합 동행이다. 지난해 봄에는 아내와 함께 강원도 정선의 강원랜드로 1박2일 호텔여행을 다녀왔다. 이 여행은 동행이 공익활동가에게 쉼을 주기 위해 진행한 응원 사업이었다.

동행은 공익활동가들의 상호부조, 협동, 연대를 기치를 내걸고 만든 협동조합이다. 공익활동가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힘들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손 벌리지 못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버티는 게 공익활동가의 숙명이다.

그러다 어떤 공익활동가는 장렬하게 산화했고 어떤 공익활동가는 병들었다. 동행이 만들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동행은 협동조합에 가입한 공익활동가들에게 자녀 학자금, 긴급자금 대출지원, 건강검진 지원 등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돈 못 버는 못난 맏사위이지만 나는 사람의 길을 밝히는 자랑스러운 공익활동가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 위기청소년을 위해 2018년 부천역 뒷골목에 만든 '소년희망센터' 개소식.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 위기청소년을 위해 2018년 부천역 뒷골목에 만든 "소년희망센터" 개소식.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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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승인 받은 비영리 민간단체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 공익활동가다.


태그:#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소년희망센터,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공익활동가,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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