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 11:38최종 업데이트 20.01.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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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의 피난처였던 하이옌(해염)에 있는 재청별장에 있는 백범 흉상. ⓒ 조정훈

 
평소 나는 백범(白凡)이라는 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김구 선생님의 호라는 얇은 상식 정도였다. 하지만, 이 두 글자는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다니는 이번 역사 탐방에서 가장 인상깊었다.

역사탐방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흰 백 자에 범 호 자를 사용했겠거니, '흰색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뜻이겠거니 넘겨짚었다. 하지만, 이번 역사탐방을 하면서 백범이란 호는 평민을 뜻하는 백정(白丁)과, 지혜가 낮고 우둔한 사람을 뜻하는 범부(凡夫)을 합친 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즉 백범이라는 호를 '백정과 범부까지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애국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것을 알고, 솔직히 놀랐다. 하루하루 위험하고 열악하며 두려운 상황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니 호만큼은 위엄 있고 기품 있게 지을 수도 있으셨을 텐데, 호를 만드는 순간에도 우리나라의 독립만을 생각하신 것이다. 김구 선생님의 그러한 뜻에서 독립에 대한 간절함과 깊은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역사탐방 일정으로 김구 선생님 피난처들을 방문했다. 그 중에서도 2일차에 가흥에서 방문한, 김구 선생님의 가족 분들이 거주하셨던 곳이 기억이 남는다. 중학생인 나도 오르내리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계단이 거주지 안에 있었다.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셨을 김구 선생님의 어머님이 떠올랐고, 이런 사소한 곳에서도 독립운동의 고단함이 느껴져 더 존경스러웠다.

김구 선생님은 <백범일지>라는, 두 아들을 위한 유서이자 자신의 모든 삶을 담은 자서전을 저술했다. 이 책에는 김구 선생님의 유년생활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상까지 기록돼 있다.

나는 <백범일지>의 '일지'를 '뛰어난 지조'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일지'는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인 기록(逸志)이라는 뜻이었다. 결국 나는 <백범일지>의 뜻을 한 글자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김구 선생님과 여러 독립운동가분들의 노력 덕분에 편하게 살고 있는 내가 고작 책 한 권의 제목 뜻도 몰랐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역사탐방을 하며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학습해 다행이라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홍구공원, 김구선생님 피난처, 상해 임시정부, 요원 거주지 등 여러 곳을 둘러본 덕분에, 평소 학교 내신만 따라 큰 의미 없이 공부하던 내가 몇 안 되는 진정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80여 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이 장개석 총통과의 일 대 일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머물렀던 호텔. ⓒ 류승연

 
역사탐방 마지막 밤, 나는 김구 선생님이 장제스를 만나기 위해 묵으셨던 '중앙반점'이라는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김구 선생님이 묵으셨던 방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김구 선생님과 같은 호텔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분명 김구 선생님이 걸으셨을 호텔 프런트, 복도를 천천히 걸어보며 기분 좋은 소름을 느꼈다.

그날 밤 그곳이 내가 여러 군데 돌아본 장소들 중에서 제일 인상 깊은 공간이다. 그 호텔에서 머물렀던 건 10시간 남짓이었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 됐다.

내가 이 기행문을 쓰는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국가의 외교를 피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순국선열의 날로 지정했다고 한다.

순국선열의 날에 이 기행문을 쓰면서, 잊지 못할 중국에서의 3박 4일과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존경을 되새기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문진우님은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에 참여한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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