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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시 30분,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강남역 번화가에서 술 한잔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자의 집은 같은 강 남쪽인 양천구에 있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 강 건너 종로로 향하는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전에는 영등포로 향하는 심야버스가 있었지만, 주 52시간 근무로 노선이 사라지면서 집으로 가는 방법이 종로를 경유해 강을 두 번 건너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2. 2019년 12월 23일, 서울시 노선조정심의위원회에서 9709번 광역버스 노선의 폐선 안건이 가결되었다. 서울과 파주를 잇던 이 광역버스가 폐선되는 순간, 서울역에서 파주 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의 막차 시간은 기존시간 대비 1시간 이상 앞당겨지게 된다. 
 
퇴근시간의 신도림역. 이들은 전부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인가?
 퇴근시간의 신도림역. 이들은 전부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인가?
ⓒ 김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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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난 사람들, 변화하는 교통패턴
  

지난 2010년 1031만 명을 기록하며 고점을 찍었던 서울시의 인구가 8년 사이 50만 명이 넘게 줄어 지난해 11월 973만 명을 기록했다. 반대로 경기도의 인구는 같은 기간 1242만 명에서 140만 명 늘어 1322만 명을 기록했다.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 인구가 증가함과 동시에 중거리 통근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의 통근수요를 받아낼 교통망의 확충은 각 지자체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에 맞춰 7호선의 연장이나 신분당선, 경의중앙선 개통 등 여러 방면에서 교통망 확충 작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보강을 거듭하던 수도권의 대중교통망에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 바로 심야 교통수단이다.

2010년대 전만 하더라도 심야시간대에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택시나 자가용 그리고 막차 시간대가 늦은 소수의 시내버스가 전부였다.
  
대부분의 심야시간대 이동을 책임지던 택시는 대중교통 대비 비싼 요금과 일부 택시기사들의 승차 거부와 웃돈 요구 등 행위로, 마음 편히 이용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서울시 심야버스 N61번, 새벽 3시가 넘어도 운행하는 심야버스의 등장은 혁신 그 자체였다.
 서울시 심야버스 N61번, 새벽 3시가 넘어도 운행하는 심야버스의 등장은 혁신 그 자체였다.
ⓒ 김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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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한 N버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N버스는 그야말로 획기적 그 자체였다. 택시업계의 반발에 부딪히며 예정보다 늦게 개통됐지만, 서울의 끝에서 끝을 오가며 어지간한 번화가들을 이어주는 것은 물론, 승차거부나 비싼 요금문제 또한 없어 밤 시간대의 구세주로서 자리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심야버스 또한 두 가지 한계에 부딪혔다. 우선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9개 노선과 80대가량의 차량으로 서울시 전 지역을 커버하기에 서울시는 엄청나게 넓었으며 또한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와 맞닿아있는 두 번째 문제, N버스는 서울시 내에서만 운행하는 버스로 서울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서울~수도권 베드타운 이동수요의 경우 오히려 수요만 늘어났을 뿐 심야시간대 이동은 여전히 소수의 버스와 택시에 의존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급했던 여객자동차법 개정, 안전 얻고 편의 잃다
  

2017년 2월, 여객자동차법 시행규칙의 개정을 통해 버스 운전기사의 휴게시간이 법적으로 보장되면서 시내버스의 운행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기점부터 종점(종점에서 휴식시간 없이 회차하는 경우에는 기점)까지 의 운행시간이 2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운행 종료 후 15분 이상의 휴식시간, 4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운행 종료 후 30분 이상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 및 전세버스운송사업자는 운수종사자의 출근 후 첫 운행 시작 시간이 이전 퇴근 전 마지막 운행 종료 시간으로부터 8시 간 이상(광역급행형 및 직행좌석형 시내버스운송사업자의 경우는 10시간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2010년대 들어 안전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강조됐다. 법 개정 전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에서는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연달아 일어날 정도로, 운수종사자의 휴식시간 보장에 관한 문구의 추가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었다.

새벽 1~2시가 넘는 늦은 시간까지 운행하며 승객들을 실어나르는 노선의 대부분이 '운행 종료 후 8시간' 조항을 준수하지 못했고, 결국 법의 테두리 내로 들어오기 위해 해당 노선들은 노선을 단축하거나, 막차시간을 더 이른 시간대로 조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자체나 운수업체도 방안을 모색하려 했지만 결국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운수회사 수익성 악화를, 주 52시간제 도입이 심각한 운행기사 부족을 불러온 탓에 어떠한 변화를 줄 여지 자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수도권 서부의 배드타운인 김포시는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지자체 중 한 곳이었다. 사진은 김포시와 서울을 잇는 광역버스.
 수도권 서부의 배드타운인 김포시는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지자체 중 한 곳이었다. 사진은 김포시와 서울을 잇는 광역버스.
ⓒ 김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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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나빠지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의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은 운수종사자의 파업과 관리업체의 적자 심화 등 대중교통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에 큰 불확실성을 가져올 정도로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지만, 꼭 나쁜 방향의 변화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생태변화가 지자체에 '직간접적 개입의 필요성'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대표적 베드타운인 성남에서는 '성남형 준공영제' 시작과 함께 3개의 심야버스 노선이 서울 복정역과 성남 각 지역을 이어주기 시작했다. 김포시에서도 2개의 심야버스 노선이 수도권을 비롯해 강남과 김포를 이어주고 있다.

서울과 베드타운을 잇는 노선뿐만 아니라 지역 내를 오가는 심야 수요에 대한 대응 또한 시도되었다. 화성시에서는 5개의 심야버스 노선이 화성시 각 지역을,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군에서도 기존 심야버스의 막차시간 단축을 대체하기 위해 심야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이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이들 4개 지자체의 심야버스는 운행을 시작한 지 반 년 만에 지역 주민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승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에서만 심야버스를 운행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심야시간대 대중교통 문제에 손을 놓고 있거나 막차가 늦은 버스에 의존을 하는 상태다.

시민사회로부터 대중교통 문제에 대해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지역 사회의 점점 커지는 요구를 맞추기 위한 기민한 움직임만이 적절한 대응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부디 각 지자체가 기존의 마인드를 내던지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심야 교통 문제 뿐만 아니라 지역 전반의 교통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교통, #대중교통, #버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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