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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있는 문갑 좀 옮기자."

하루는 엄마집에 갔더니 안방에 있는 문갑 좀 옮기자고 하신다. 

"문갑은 왜? 어디로?"
"침대 매트를 큰 걸로 바꾸려고 하는데 문갑을 치워야 자리가 나올 것 같다." 
"그럼 문갑은 어디다 놓으려고?" 
"버리야지, 뭐."
"그걸 왜 버려? 엄마 안 쓰면 내가 가져갈게."
"그래라, 그럼."
  
엄마는 순순히 승낙했다. 엄마 역시 문갑을 버리지 않게 되어서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 문갑은 산 지 족히 30년은 넘었을 것이다. 한창 자개장이 유행할 때 엄마가 큰 맘 먹고 장롱과 화장대, 그리고 반닫이와 함께 구색을 맞춰 들여놓은 것이니 말이다. 
 
엄마의 자개장   자개장들은 엄마가 처음으로 들여놓은 제대로 된 '엄마의 가구'였다. 장롱과 화장대, 문갑, 반닫이까지 구색을 맞춘 자개장들은 엄마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의 증거물이기도 했다.
▲ 엄마의 자개장   자개장들은 엄마가 처음으로 들여놓은 제대로 된 "엄마의 가구"였다. 장롱과 화장대, 문갑, 반닫이까지 구색을 맞춘 자개장들은 엄마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의 증거물이기도 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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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사를 할 때 엄마는 장롱을 비롯해 화장대며 문갑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끌고 오셨다. "장롱은 새로 들여놓자"고 해도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장을 새로 사니?" 하면서 막무가내였다. 

"이 장롱 30년도 더 된 거 같은데요? 이거 한쪽 밑이 빠졌는데요. 오래 못가겠어요. 새로 하나 장만하셔야겠어요." 

이삿짐센터의 직원들도 한 마디씩 할 정도로 엄마의 가구는 심하게 낡고 상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장롱은 종이를 괴지 않고는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고, 문짝은 어긋났는지 열고 닫을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났다. 문갑도 여기 저기 긁힌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장롱과 문갑 모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추레했다. 

엄마는 왜 이 낡은 가구들을 굳이 가지고 오셨을까. 정말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였을까. 분명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내 기억에 이 자개장들은 엄마가 번듯한 '파란색 2층 기와집'을 짓고 처음으로 장만한 제대로 된 '엄마의 가구'였다. 그러니 얼마나 애착이 가겠는가. 그것들은 엄마 인생의 첫 성과물이기도 하고, 잘 나가던 시절의 증거물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보물창고

엄마는 '소중한 물건'들을 모두 자개장 안에 보관하셨다. 며느리가 선물해준 두꺼운 솜이불이며, 처음 맞춰 입은 땡땡이 한복이며, 우리 어릴 적에 입었던 배냇저고리까지 모두 장 속에 넣어 보관하셨다. 제일 아래 서랍에는 아버지와 엄마가 돌아가시면 입을 '수의'도 미리 만들어서 넣어 두셨다. 그렇게 하면 오래 산다면서.
 
엄마의 장롱    엄마의 보물창고였던 장롱. 엄마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할 때도 30년도 더 된 장롱들을 모조리 끌고 오셨다.
▲ 엄마의 장롱   엄마의 보물창고였던 장롱. 엄마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할 때도 30년도 더 된 장롱들을 모조리 끌고 오셨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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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집문서나 땅문서같은 중요한 서류들과 적금 통장, 모양새와 쓰임새가 다른 인감도장, 막도장들까지도 모두 장롱 속 깊숙히 숨겨 놓았다. 아버지가 달라시면 엄마는 안방문을 닫고 들어가 이불 사이사이에 숨겨 놓은 서류와 통장들을 꺼내 나오곤했다. 반닫이장 위에는 수십 권이 넘는 앨범들과 자식들이 타 온 상장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화장대와 문갑서랍에는 엄마가 계를 탄 돈으로 처음 사서 낀 백금반지와 아버지가 큰맘 먹고 선물하신 다이아반지와 오팔반지, 우리들이 선물해 드린 브로치 같은 액세서리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망할 놈의 도둑놈들이 엄마의 패물을 다 훔쳐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에게 안방의 가구들은 그냥 세간살이가 아니라 통째로 '엄마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버리고 올 수 있었겠는가. 이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 엄마는 수시로 장롱과 문갑을 열어보면서 무척이나 심란해 하셨다.

"이거 다 어떻게 정리하냐?"
"나 살아 있는 동안은 이사 갈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살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

하루는 그 많은 앨범들을 죄다 꺼내서 옛날 사진들을 보고 계셨고, 하루는 땡땡이 치마와 아들 장가갈 때 입었던 한복을 꺼내 보셨다. 어떤 날은 장롱을 정리하다가 '울컥' 하셨는지 아예 손을 놓아버린 날도 있었다. 아마 그때 엄마는 당신이 살아왔던 시간이 송두리째 들려나가는 것 같은 상실감을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구닥다리

엄마의 자개장들은 새로 이사한 집하고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여기저기 흠집이 난 30년도 더 된 구닥다리 가구들이 지어진 지 10년도 안 된 아파트하고 어울릴 리가 만무했다. 

자개장들처럼 엄마도 한동안 이사한 집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엄마는 외출도 안 하고 멍하니 베란다나 소파에 앉아 있기 일쑤였고, '아파트는 해도 잘 들지 않는다'며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화초들도 팽개쳐 두셨다. 
 
엄마의 문갑  이제는 폐기처분 위기에 놓인 엄마의 문갑은 내가 맡기로 하였다. 나중에 나는 이 문갑을 보면서 우리 엄마를 추억할 것이다.
▲ 엄마의 문갑  이제는 폐기처분 위기에 놓인 엄마의 문갑은 내가 맡기로 하였다. 나중에 나는 이 문갑을 보면서 우리 엄마를 추억할 것이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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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엄마가 마냥 안방의 장롱을 보고 있길래 분위기 전환삼아 "엄마, 저 공작새 진짜 예쁘네, 저기 토끼도 있네?" 하고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엄마는 "그걸 여태 못봤어? 저기 다람쥐 있는 건 봤니?" 하신다. 그 목소리에는 '그걸 인제 알았니?' 할 때의 으쓱함 같은 것이 묻어났다. 엄마와 나는 한참 동안 장롱에서 해와 달, 절구 찧는 토끼와 다람쥐, 오리 등을 찾아냈다. 꼭 유치원생들처럼. 그러는 사이 엄마 기분도 점차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개장을 한참 들여다 봐서인지 자개 문양들이 보면 볼수록 예뻤다. 

"엄마, 엄마 장롱 진짜 이쁘다. 볼수록 예뻐. 엄마 안목이 참 좋으셨네." 
"그럼, 이쁘지. 처음 들여 놨을 때에는 얼마나 이뻤는데…"

"엄마, 저 장롱 살 때 참 좋았지?"
"좋았지… 그때 집도 새로 짓고… 니들도 다 잘 자라고…"

"그랬겠네. 엄마 참 대단해. 아버지랑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나와 하꼬방집에서 살다가 번듯한 집도 짓고, 애들 다 대학교육 시키고…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애." 

"으이, 하꼬방집 살 때, 그 일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하루는 쌀이 똑 떨어져서 저녁밥 지을 쌀도 없는 거야. 주인집에 좀 빌려 달라니까, 뭘 믿고 빌려주냐면서 안 빌려주더라고. 니들은 배고프다고 난리지. 할 수 없이 가게에 가서 외상으로 사왔어. 그때 처음 외상이라는 것도 해봤지…." 

엄마의 목소리에는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엄마, 그런 일도 있었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 속에는 힘든 시간이 참 많았구나…' 이사올 때 엄마는 '애써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온 허망함과 상실감에 내내 힘들어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당시에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한테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어. 참 많은 것을 해냈어. 우리 엄마 참 장해…"라고. 그리고 "엄마 정말 감사해"라고.

이제는 내가

이제 엄마는 새 매트를 위해 문갑을 내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쿨'해졌고 아파트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엄마의 손때와 추억이 가득한 물건을 차마 아파트 재활용센터에 내다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내 곁에 없을 때에도 내 집에 두고 오래오래 엄마를 추억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문갑을 내 집으로 옮기려니 그것도 일이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문갑은 아직도 엄마네 거실에 놓여 있다. 내 솔직한 심정은 문갑이 오래도록 엄마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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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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