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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잠시 쉬었다가도 괜찮을까?"

자유학기를 맞은 중학생이 아니고, 입시 끝난 고등학생도 아니고, 군대 전역한 20대도 아닌 내가 정말 인생을 쉬어가도 괜찮은 걸까?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박 3일간 48명의 참가자가 덴마크 교사 6인과 함께 덴마크 수업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덴마크 교사와 오연호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강화 꿈틀리인생학교 정승관 교장 선생님.
▲ 섬마을인생학교 18기에 참여한 덴마크 교사들과 오연호 대표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박 3일간 48명의 참가자가 덴마크 교사 6인과 함께 덴마크 수업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덴마크 교사와 오연호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강화 꿈틀리인생학교 정승관 교장 선생님.
ⓒ 사단법인 꿈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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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간 '교육의 섬'이라 불리는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와 '도초 글로벌 교육포럼'이 함께 진행됐다. 전국에서 모인 공립학교와 대안학교의 교사들, 직장인, 대학생 그리고 꿈틀리인생학교 1기 졸업생들 등 모두 48명이 덴마크 자유 교육의 진짜 모습을 경험했다.

신안군(군수 박우량)이 지원하고, 사단법인 꿈틀리(이사장 오연호)가 운영하는 섬마을인생학교는 지난 4월 2일 개교했다. 이번에 진행된 18기 인생학교는 레넛 뵈스팅(Lennart Borsting) 로스킬데 공립학교 수학 교사를 비롯해 덴마크에서 온 자유학교 교사 6명이 2박 3일간 섬마을 인생학교 프로그램을 직접 이끌었다.

이들은 72시간 동안 인생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덴마크에서 교육이란 어떤 의미인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실제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보여줬다.

케네스 설트(Kenneth Seholt) 선생님이 '노래가 있는 첫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가장 먼저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그는 덴마크 울러럽 애프터스콜레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다. 케네스에게 어떤 곡을 준비했냐고 묻자 "팝송은 따라부르기 어렵고, 가사도 많아서 영어를 전혀 못해도 할 수 있고, 가사도 거의 없는 합창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귀띔한다.

"자, 그럼 먼저 몸부터 풉시다."

피아노가 있는 강당에 모인 참가자들에게 케네스는 먼저 서로 몸의 긴장을 풀게 했다. 서로 마주 보고 어깨를 다독여주고, 몸을 움직여 자리를 바꾸면서 첫 만남의 긴장감을 풀었다.

몸풀기를 마치자 그는 참가자들을 네 그룹으로 나눴다. 그는 자신의 손짓에 맞춰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서로의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화음을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악보도 없이, 그것도 단 10분 만에! 
    
▲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 도초 글로벌 교육포럼 개회식 합창곡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와 글로벌 교육포럼이 진행됐다. 2박 3일 간 진행된 이번 인생학교에서는 덴마크 교사 6명과 참가자 48명이 함께 덴마크 자유교육의 실제를 경험했다.
ⓒ 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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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런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쉬운 음악이라서? 아니다. 케네스 선생님의 음악 시간은 몸의 힘을 빼고, 긴장을 완전히 풀어줘 내가 그 공간에 서 있는 걸 편안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고, 옆 사람과도 편하게 화음을 맞춰낼 수 있었다.

케네스는 "음악을 통해서 학생들이 어떻게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교육은 학생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섬마을 인생학교 교장선생님이자 소나무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민경찬 선생님도 덴마크 음악 수업을 함께 했다. 그는 "케네스 선생님의 음악 수업에 굉장히 놀랐다"면서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하고, 각자가 자신만의 색깔로 소리를 내는 동시에 서로 다른 소리를 모아 아름다운 화음으로 엮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인생학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음악 수업에 이어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라웠던 수업은 바로 로냐 앤더슨(Ronja Anderson) 선생님의 '민주시민교육' 수업이었다. 로냐 선생님은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 모아 자신의 질문에 YES면 오른쪽, NO면 왼쪽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가령 이런 질문들이다. "생선을 좋아하세요?", "어둠을 무서워하세요?", "롤모델이 있나요?" 등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선택에 맞게 움직인 후 왜 자신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바로 옆 사람과 대화하게 했다. 조금은 어색한 질문, 엉뚱한 질문에도 옆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자유, 민주, 정치 같은 개념들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민주시민교육, 민주주의 교육에서 중요한 건 학생들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끌어내는 거죠"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박 3일간 48명의 참가자가 덴마크 교사 6인과 함께 덴마크 수업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연평해변.
▲ 섬마을인생학교 18기 단체사진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박 3일간 48명의 참가자가 덴마크 교사 6인과 함께 덴마크 수업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연평해변.
ⓒ 사단법인 꿈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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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로냐가 준비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당신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인가', '당신에게 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로냐의 민주시민교육은 교사가 정해진 답을 쏟아 내는 방식이 아니었다. 교사와 학생의 토론이 아니었다. 학생들 간 토론도 아니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신은 신발과 가장 비슷한 사람을 찾도록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의 신발을 쳐다보며 비슷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 파트너를 찾은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자리로 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자유와 의무, 가치, 기억에 대해서.

나는 덴마크 자유 교사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브릿 스톡홀름(Britt Stochholm) 선생님과 대화 파트너가 되었다. 수업의 중심이 교사도, 학생도 아닌 '나와 내 옆 사람'으로 좁아지니 어려운 질문과 주제에 대해서도 우리 둘은 서로의 생각을 아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만약 우리나라 학교 수업이었다면? 자유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자유 개념부터 근대혁명의 역사가 나열되고, 의무에 대해서는 칸트의 문장이, 가치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고전의 번역된 문장들이 교실 허공에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로냐의 민주시민교육에서 중요한 건 바로 '나'의 생각, '내 옆 사람'의 생각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였다.

"교육은 양동이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모닥불을 지피는 것"이고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처럼 지피는 사람이 바로 교사"라는 게 로냐의 설명이다.

민주시민수업에 참여한 대학생 남혜리 학생은 "다름을 인정하는 울타리 안에서 내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수업이 진행됐다. 정답이 아닌 대화를 통해 나와 상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가면서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수업을 통해 각자의 세계에서 한 발짝씩 넓혀지는 경험을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박 3일간 48명의 참가자가 덴마크 교사 6인과 함께 덴마크 수업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 시목해변.
▲ 섬마을인생학교 18기 시목해변 몸놀이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박 3일간 48명의 참가자가 덴마크 교사 6인과 함께 덴마크 수업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 시목해변.
ⓒ 사단법인 꿈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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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 인생학교 참가자들은 아침과 오후에 자주 밖으로 나갔다. 마을을 산책하고, 시목해변과 명사십리해변을 거닐고, 새벽에는 201m 높이의 큰산(실제 시목해변 옆에 있는 산 이름이다)에 올랐다.

덴마크 로스킬데 10학년학교에서 온 슈 프리슬룬드(Thue Friislund) 교장 선생님과 레넛 뵈스팅(Lennart Borsting)은 틈틈이 간단한 동작과 몸놀이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었다. 해변에서는 덴마크식 발야구를 하고, 도초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덴마크식 술래잡기 같은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간단한 아웃도어 활동과 몸놀이는 사람들을 서로 친근하게 하고, 경계를 없애주었다.

2박 3일간 진행된 섬마을 인생학교는 브릿 스톡홀름 선생님과 앤더스 울달(Anders Uldal) 선생님의 실용 영어 수업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비금도 명사십리 해변 청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덴마크 자유교육의 철학적 기반을 만들었다는 철학자 그룬트비(N.S.F. Grundtvig)는 '우리가 서로 다른데 어떻게 함께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강조했다. 섬마을 인생학교에서 음악수업과 시민교육, 도초도 지역민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생이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옆 사람과 노래하고, 함께 대화하며 걷는 시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괜찮다! 인생, 잠깐 멈추더라도!
 
 
▲ 191210 섬마을인생학교 1차 하이라이트 영상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와 글로벌 교육포럼이 진행됐다. 2박 3일 간 진행된 이번 인생학교에서는 덴마크 교사 6명과 참가자 48명이 함께 덴마크 자유교육의 실제를 경험했다.
ⓒ 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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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섬마을인생학교, #도초도 섬마을인생학교,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 #덴마크 자유교육, #글로벌 교육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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