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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회동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회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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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치유재단 기금을 강제동원 피해자한테 주겠다고?"

시작은 이상한 뉴스였다. 11월 4일 언론에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연설을 했다는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기부금, 특히 화해치유재단 기금 60억 원을 주는 법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들은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다들 의아해했다. 설마 사실인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기 위해 암투병 중이던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왔던 김복동 할머니를 잊었단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적 부담감을 무릅쓰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을 되돌리겠다는 건가?

우리는 즉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복동 할머니가 통곡하실 일"이라고.

문희상 안이 비판을 받자 더불어민주당이나 청와대에서는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발뺌했다. 우리, 피해자 단체들 및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이런 생각까지 했다. 

"문희상 의장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이런 이상한 법을 추진중이지. 이 법은 정말 말도 안 돼."

그렇게 문희상 의장의 '오버한 행동' 쯤으로 이 발표는 잊혀지는 듯했다. 지소미아 연장 이후, 마치 한일관계 해결책인 것처럼 갑작스레 주목받기 전까지.

박근혜 시절과 꼭 닯은 '문희상 안'

문희상 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대법원 판결 배상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부금'을 낼지 말지 선택한다. 그 돈이 부족하면? 세계시민성금을 걷는단다. 피해자들은 이 돈을 받으면 다시는 소송하지 못한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땡큐'다. 앞으로 수백 수천명이 될지도 모를 소송까지 한국이 법으로 막아주겠다는데 이걸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나.

거센 반대가 부담스러웠는지 '화해치유재단' 내용은 이제 빠졌다. 그러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고, 일본에는 굴욕적이고, 결국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법.

문희상 안은, 하나부터 열까지 박근혜 한일'위안부'합의를 떠오르게 한다. 이 법으로 만들겠다는 재단의 이름은 '기억 미래 화해'다. 박근혜 '화해 치유 재단'과도 비슷한 이름이다. 가해자는 사죄하지 않는데, '화해'를 강요하는 것이다.

"나 거지 아니다" 피해자 모욕하고 일본에 구걸하는 나쁜 정치 
 
국회 앞 기자회견, 양금덕 할머니의 말이 적힌 피켓이 국회 의사당을 배경으로 보여지고 있다
▲ 국회 앞에서, 양금덕 할머니의 말 국회 앞 기자회견, 양금덕 할머니의 말이 적힌 피켓이 국회 의사당을 배경으로 보여지고 있다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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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5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앞에서 발언하시는 모습
▲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양금덕 어르신 2019년 8월 15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앞에서 발언하시는 모습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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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거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너무 무시하는 식으로 그렇게는 안 받으렵니다. 사죄가 제일 중요합니다." - 강제동원 피해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당사자, 양금덕 할머니

참 나쁜 정치다. 피해자들이 구구절절 '돈 받지 않겠다'고 말해야 진정성이 증명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이분들은 일본 기업에게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한다. 일본 전범기업을 배불리는 데 착취당한 사람들. 이들이 배상받는 것은 마땅한 권리이다. 그마저도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수십년 싸워 받아낸 승리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왜 "나 거지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피해자는 이토록 당당한데 왜 정치인들이 나서서 일본에 기부금을 구걸하는가.
 
기부금은 필요없으니 사죄하라고 배상하라는 의미로, 아베 얼굴에 돈을 뿌리는 퍼포먼스
▲ 사죄없는 기부금 필요없다 기부금은 필요없으니 사죄하라고 배상하라는 의미로, 아베 얼굴에 돈을 뿌리는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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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의원님들, 영화 <김복동>이라도 다시 보시라

그러나 문희상 안에 대해 국회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계속 모른척 한다. 국회의장실이 '찬성하는 의원'이라는 기사를 뿌리는데, 그 명단에 거론된 의원들이 '자신은 아니다'라면서도 반박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는다. 이쯤되면 묵인이다.

"설마 이런 법을 통과시키겠느냐" 전문가들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문희상 안이 너무 문제점이 많아서 그렇다. 이런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리라는, 국회에 최소한의 상식을 요구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 끔찍한 상상을 한다. 이 안이 법으로 발의되고, 어-어- 하는 순간에 여야합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고, 민주당 의원들 몇 명의 찬성표를 보태 통과되는 순간을.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민주당은 설마 이 악몽에 등장하고 싶은가. 그 후과를 다 책임질 수 있겠는가. 

민주당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박근혜 한일'위안부'합의는 범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왔다. 역사교과서 사태에 이어 거듭된 역사 부정 시도. 한일'위안부'합의는 국민들의 분노를 끓어넘치게 만들었던 정점이었다.

민주당 의원님들은 그때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영화 <김복동>이라도 다시 보시라. 국민들이 어떻게 분노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시라. 정녕 민주당은 그런 사태를 반복하려는 것인가.

'현실' 핑계대며 피해자들을 거래하지 말라
 
문희상 안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 목소리
▲ 가해자 일본에게 머리 숙이지 마라 문희상 안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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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안은 발의를 당장 멈추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침묵하고 묵인하고 있는 의원들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안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악법'이 될 것이다.

얼마전 소위 전문가들이 '문희상 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한 기사에 한 시민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완용도 당시에는 현실이라고 했겠지." 이것이 국민들의 마음이다.

지금 시민들은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반 년째 싸우고 있다. 취미나 생활, 나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 국민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문희상 안이 통과되면 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찬성한 국회의원 명단이 '불매'의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설령 국회가 끝내 이 안을 통과시킨다면, 청와대는 이를 거부해야 한다. 최소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정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피해자들과 역사 앞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일이다. 피해자를 거래하는 나쁜 정치를 반복하지 말라.

덧붙이는 글 | 이하나 기자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시민단체 '강제동원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문희상, #국회, #강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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