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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선생 동상이다.
▲ 수운 최제우 동상 수운 최제우 선생 동상이다.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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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5일(양 5월 25일)은 최제우의 생애에서 일대 변곡점에 이른 날이다.

그의 나이 36세이던 경신년이다. 그해는 3월에 윤달이 들어서 4월 초는 여느 해보다 봄이 빨라 화창난만한 계절이었다.

수련 중이던 최제우는 조카의 생일 초청을 받고 지동(芝洞) 마을로 내려가 잔칫상을 받았다. 식사 후에 몸과 마음이 떨리고 혼미해져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경신년 4월 5일은 큰조카 맹윤의 생일이었다. 의관을 보내어 오라고 청하므로 선생은 그 정의를 거절할 수 없어 억지로 잔치에 참석하였다. 얼마 안 있자 몸이 섬뜩해지고 떨리는 기운이 있어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바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휘둘어지며 마치 미친 듯 취한 듯이 엎어지며 자빠지며 마루에 오르자 기운이 솟구쳤다. 무슨 병인지 집증(執症)이 어려웠는데 공중에서 뚜렷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대선생문집』)

 
동학의 교조 최제우의 포교 가사집 <용담유사>.
 동학의 교조 최제우의 포교 가사집 <용담유사>.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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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가 용담에 들어온 지 7개월만이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이 전한다. 꼭 풍수지리설이 아니라도 큰 인물이 태어나는 땅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최제우의 조상 때부터 용담은 성지로 여겨왔던 곳이다. 종교용어로 '득도' 또는 '종교체험'의 과정을 최제우 본인의 기술을 통해 들어보자.

목욕재계하고 단정히 앉아 묵념할 즈음, 지동에 있는 조카 맹윤이 인마(人馬)를 보내어 초청하므로 이를 거절하기가 어려워 응락하고 지동에 이르렀다. 이곳에 간지 얼마 안 되어 몸이 떨리면서 심신에 이상을 느끼게 되므로 곧 용담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즉시로 다시 목욕재계하고 묵념하더니 이 때에 오히려 전보다 몸과 마음이 더욱 떨리어 무슨 병인지 집중할 수가 없고 말로도 표현키 어려울 즈음 공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천지를 진동하듯 하였다.

이에 놀래서 일어나 물은즉 공중에서 대답하기를 "두려워 말고 저어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고 이르는데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나게 하여 사람들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니 의심 말고 다시 의심말라."…."내 영부(靈符)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악(仙藥)이요, 그 형상은 태극(太極)과 같고 또 궁(弓)의 형상을 한 것이다. 나의 이 영부를 받아 사람들의 질병을 건지고 나의 주문(呪文)를 받아서 사람을 가르치고 따라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네 또한 장생하며 그 덕을 천하에 펴리라."고 하였다.

동시에 휘황찬란한 빛은 어떤 힘을 지는 듯 약동하면서 움직이는 형태가 우주의 영묘(靈妙)불가사의한 원력(原力)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한한 허공에 뛰고 번쩍이는 빛이 가득 차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 우주의 한 끝과 한 끝이 서로 맞닿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영부(靈符) 임을 깨닫고 눈을 뜨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얼마 후 다시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네 백지를 펴서 나의 부도(符圖)를 받으라."는 두 번째 지시였다. 백지를 펴본 즉 종이 위에 전과 같은 그림이 비치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과 부인을 불러 백지 위를 보라고 하니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서 수운이 미쳐버렸다고 걱정을 하였다. 이 때 공중에서 다시 소리가 있기를 "그 영부를 종이에 그려 불살라 냉수에 타 먹으라."고 했다. 그대로 했더니 병이 나았다. (주석 2)

  
관풍루에서 바라본 최제우 동상. 달성공원 내부를 향해 서 있다. 좌우의 향나무가 장엄하다.
▲ 최제우 동상 관풍루에서 바라본 최제우 동상. 달성공원 내부를 향해 서 있다. 좌우의 향나무가 장엄하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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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득도과정이나 종교체험은 쉽게 수용되기 어려운, 초현실적인 화두에 속한다. 신들림이나 강신(降神), 신체험 등의 과정은 예수와 마호메드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예수와 마호메트는 신체험과 계시체험을 통해서 기독교와 이슬람을 각각 창도하였다. '신(神)체험'이란 "신과 대화를 한다"는 뜻이 담긴다.

세계적인 종교의 창도과정은 초월자 즉 신의 영역으로 종교화 또는 신비화하면서 우리의 경우는 미신이나 신화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래서 단군은 신화 또는 전설에 속하고 이후 민족종교의 창도자들에게도 유사한 경우로 이어진다.

최제우의 용담의 신체험은 세번째에 속한다. 첫번째는 승려로부터 '이서'를 받은 것이고, 두번째는 49일 기도에 들어갔을 때 25리 밖에 있는 숙부의 임종사실을 인지한 일이다. 세번째의 종교체험에서는 '영부'를 받았다. 영부는 질병을 고치고 사람을 깨우치고 장생하는 마술적인 힘이 있는 것이었다.
 
수운 최제우 유허비
▲ 수운 유허비 수운 최제우 유허비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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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나 마호메트도 주문과 기도로써 신도들의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였다. 정신신경과 의사는 종교체험과 관련,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종교체험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사실이다. 그것은 환각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감정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 환각이나 감정을 통해서 한 개인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해소되고 또 상징적 암시를 통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새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종교체험의 진의가 있는 것이다. (주석 3)

모세(B.C. 1500)는 40세에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황야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천둥소리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고, 조로아스터(B.C. 650)는 30세 되던 해 사발란산 동굴에서 명상 중에 하느님을 보았다고 한다. 석가모니 불타(B.C. 650)는 35세에 보리수 나무 밑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B.C.4~A.D. 28)는 30세 무렵 황야와 사막을 헤메이면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산상설교'를 통해 진리를 설파하고, 모하메드(570~632)는 15년 동안 사막을 떠돌며 장사를 하고, 잠시 쉬기 위해 산꼭대기에 올라갔다가 수평선 너머로 불타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양피지가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모하메트, 너는 하느님의 사자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조지 폭스(1624~1691)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다가 진리를 찾고자 습기찬 들판과 짚더미 밑에서 수년을 지내며 고독한 명상 끝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퀘이커를 창설하였다.

최제우는 37세인 1860년 4월 5일 오전 11시 용담에서 '한울님의 계시로' 후천개벽의 새 원리인 동학을 각도(覺道)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다.

기성의 고전종교가 혼란에 빠진 세상을 건질 만한 힘이 없고 이미 그 기능과 가치가 상실됨에 따라 새로운 종교사상에 의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서구문명의 충격을 민족주체적인 슬기와 역사감각으로 극복하고 민족적 전통사상의 바탕 위에 모든 종교사상을 수용하는 한국의 정신적 토양속에서 새로운 종교가 탄생되었으니 이것이 곧 동학이요 오늘의 천도교이다.

천도교는 수운 대선사, 최제우에 의하여 신의 가르침을 받아 창도되었다. 즉 천도교는 한국민족이 수 천년에 걸쳐 외래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용하고 극복한 민족문화의 주체적인 표출로서 민족사상인 한사상의 현대적 결실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옛날의 풍류도가 그랬던 것처럼 천도교가 모든 종교사상을 포용하는 것은 민족전통성의 계승으로 우연의 일이 아닐 것이다. (주석 4)


주석
2> 『동경대전』, 「포덕문」ㆍ「논학문」.
3> 김광일, 「최수운의 종교체험」, 『최수운 연구』 한국사상 12, 74쪽, 한국사상연구회, 1974.
4> 홍장화, 「한 사상과 천도교」, 『한 사상과 민족종교』, 106~107쪽, 일지사, 1990.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동학혁명,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천도교, #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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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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