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가 두 번의 왕조를 세울 당시 팀에는 늘 '살림꾼'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45·190cm)과 '강페니' 강병현(34·193㎝)이다.

추승균은 신선우 감독 시절 '이조추(이상민-조성원-추승균) 트리오'의 한 축을 맡으며 궂은 일을 도맡는 플레이로 팀의 밸런스를 잡았다. 더욱 노련해진 선수 생활 말년에는 허재 호에서 베테랑의 품격을 톡톡히 보여줬다.

강병현은 허재 감독의 황태자로 불렸다. 하승진(34·221㎝)을 뽑았을 당시 허감독은 좋은 선수를 다수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성적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선배로서 막내 하승진을 잘 돕겠다"던 서장훈의 트레이드 요청은 KCC와 허 감독 입장에서 신의 한수가 됐다. 전자랜드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강병현이 팀에 새로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강병현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특출난 구석은 없었다. 장신 가드라는 메리트는 있었으나, 슈팅, 패싱플레이 등 특정 부분에서 확 치고 나갈 만한 장점이 부족하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허감독은 강병현을 특별히 뜯어고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장점을 확실하게 밀어줬다. 당시 강병현은 젊고 크고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였다. 경기 내내 투쟁심을 가지고 코트를 누빌 수 있는 체력과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허감독은 야생마 강병현의 고삐를 풀어줬다. 그 결과 강병현은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이며 이지스함의 에너지 탱크로 맹활약을 펼쳤다.
 
 강병현과 추승균은 KCC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 살림꾼들이다.

강병현과 추승균은 KCC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 살림꾼들이다. ⓒ 전주 KCC


강한 팀의 필수 퍼즐 '살림꾼'

워낙 궂은 일을 도맡는 게 잘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추승균만큼 다재다능했던 선수도 드물다. 수비와 팀 플레이에 집중하며 다른 동료들이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묵묵하게 지원해주는 역할에 주로 전념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에이스 모드'로 변신해 직접적으로 팀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충분히 득점 머신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팀을 위해 자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추승균은 매우 뛰어난 슈터였다. 전문 3점 슈터들에 비해 슛거리가 다소 짧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미들 라인에서의 슛은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외곽 슛 역시 한번 감을 잡으면 거침없이 들어가는 폭발력이 있었다. 거기에 포스트업은 물론 드라이브 인에도 능해 속공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곤 했다.

무엇보다 추승균을 빛나게 했던 것은 무려 6회나 1위를 차지했던 자유투 부분이다. 최근 KBL은 선수들이 자유투에 취약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안정적으로 자유투 2구를 넣어줄 선수가 많지 않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로 자유투 문제가 심각하다. 각 팀의 핵심급 선수들이 박빙의 상황에서 자유투 미스를 범하는 경우를 흔하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추승균같은 경우 자유투를 쏠 때의 안정감이 대단했다. 아무리 지친 상황에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깨끗하게 모두 성공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기본기가 좋은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추승균이 공격에만 집중했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좋은 기록을 보유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워낙 몸 관리를 잘해 체력이 좋은데다 누구보다도 다양한 공격 옵션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은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공격 못지 않게 수비, 팀 전술 이해능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고르게 뛰어나, 다양한 역할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추승균 역시 별다른 불만 없이 여기에 임하며 기록보다는 팀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불태웠다. 감독으로서의 커리어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른바 선수 추승균에 대해서는 '깔 게 없다'는 평가가 이구동성으로 쏟아진다.

KCC 시절의 강병현 역시 '살림꾼'으로서 가치가 뛰어났다. 추승균이 그랬듯 자신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지 팀에 도움을 주는 타입이었다. 상대팀 주포를 꽁꽁 틀어막는 것은 물론 팀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동료의 플레이를 살려주는 데 능했다.

1번으로는 부족했지만 2번 치고는 리딩-시야 등이 좋은 편이어서 포인트가드 도우미로서 나쁘지 않은 궁합을 보였다. 거기에 성공률을 떠나 자신감을 두둑했던지라 박빙 상황에서 클러치샷도 종종 터트렸다. 3점슛 성공률만 놓고 봤을 때는 아쉬움이 있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돌파와 미들슛 등을 섞어주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나쁘지 않은 공헌도를 보였다.

거기에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에서까지 한몫해주며 팀의 취약점을 커버하기에 이른다. 슛이 좋은 임재현과 함께 할 때는 수비에 더 중점을 두었고 디펜스형 가드 신명호가 나설 시에는 자신의 공격적인 부분을 더욱 부각시켰다. 공수의 밸런스가 워낙 좋은지라 어떤 형태의 1번과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이대성은 KCC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대성은 KCC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 되어줄 수 있을까? ⓒ 전주 KCC

 
아직은 못미더운 이대성, 부활 해법은 살림꾼!
 
현재 KCC는 스타군단으로 불린다. 기존 이정현(32·191cm), 송교창(23·201cm)에 현대모비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국가대표 이대성(29·193cm), 라건아(30·199cm)가 들어왔으며 국내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찰스 로드(34·200cm)까지 합류했다.

주전급 4번 부재, 얇은 식스맨 층을 감안한다 해도 저 정도 이름값이면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 맞다. 이대성(시즌 후 FA), 라건아(1시즌 반)의 사용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KCC는 이대성, 라건아 합류 후 지난 주말 이전까지 1승 4패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시즌 초 좋았던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새로운 구성원들을 배려하면서 챙겨주려 하다 보니 기존 선수들까지 리듬을 빼앗기며 전체적 조직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로드는 순차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으나, 개성강하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이대성, 라건아가 문제다. 이정현, 송교창 등 기존 간판들이 본인들의 롤을 줄여가면서 적응을 돕고 있음에도 연착륙이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주말 2연전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 어려운 상대로 평가되던 DB, 전자랜드전을 모두 승리했기 때문이다. DB전은 양팀 다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어쨌든 승리를 챙겼으며, 일요일 전자랜드와의 경기는 무려 21점 차이를 극복한 대역전승이었다.

전자랜드 김낙현의 외곽이 폭발하며 3쿼터 한 때 21점 차까지 뒤졌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은 끝에 89-81로 역전승을 거뒀다. 여전히 조직력 부분에서는 삐걱거리는 모습이지만 빅딜 이후 첫 연승이라는 점에서 향후 행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더욱 기분 좋은 것은 전자랜드전 역전승에 이대성, 라건아가 좋은 역할을 해줬다는 점이다. 그동안 무리한 일대일로 빈축을 샀던 라건아지만 이날은 달랐다. 전자랜드 트로이 길렌워터, 머피 할로웨이의 골밑공략을 터프한 몸싸움으로 버티어낸 것은 비롯 공격시에도 적극적으로 뛰고 자리를 잡으며 받아먹는 득점을 많이 올렸다. 그간 KCC에서 바랬던 그런 모습이었다.

이대성 또한 전방위로 활약해줬다. 그동안 이대성은 공격시 대책 없는 외곽슛을 남발하며 흐름을 끊어먹는 실수를 자주 반복했다. 팀원들이 리바운드를 할 준비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3점슛을 쏘아댔고 노골시 이는 그대로 속공으로 이어졌다. '자신감 있는 공격은 좋지만 베테랑으로서 경기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려야했다.

이날은 달랐다. 적극적으로 골밑을 파고들어 레이업, 미들슛 등으로 득점을 올렸고 수비에 막힌다싶으면 무리하지 않고 좋은 타이밍에서 동료들에게 공을 빼줬다. 중요한 상황마다 터진 외곽슛도 순도 높았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팬들이 알던 좋았을 때의 이대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워낙 그동안 기복심한 플레이를 보여 왔던지라 아직은 안정감적인 측면에서 믿음이 덜 가는 것이 사실이다. FA를 앞두고 있는 이대성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면 전자랜드전 같은 플레이를 보여줘야 한다. 개인기록도 중요하지만 '팀을 이기게 할 수 있는 선수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될 필요가 있다. 다루기 힘든, 사용법에 맞춰야 하는 선수로 각인되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1번 욕심도 일단은 버려야 한다. 이대성 정도의 사이즈와 신체능력을 가진 선수가 1번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주면 위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이대성은 1번에서 훌륭한 선수가 아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일 뿐 아니라 시야가 좁고 완급조절에서도 안정감이 떨어진다. 본인의 장점인 활동량, 운동능력을 앞세운 플레이를 살리려면 익숙한 2번 포지션이 딱이다.

이미 KCC에서는 넓은 시야를 자랑하는 정통 포인트가드 유현준과 다재다능하고 센스 넘치는 전천후 슈팅가드 이정현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대성이 1번을 노린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리 만무하다.

KCC에서 최고의 시나리오는 과거 추승균, 강병현이 그랬듯 이대성이 살림꾼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의 앞선 수비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용될 정도로 압박의 강도가 세다. 강병현이 그랬듯 1~3번 수비가 가능하다. 그간 KCC는 신명호, 최승욱, 정창영 등 디펜스를 위한 선수 기용을 즐겨 썼다.

아쉽게도 그들은 공격력이 너무 떨어지는지라 박빙의 상황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상대팀에서도 이를 이용했다. 그러나 상대가 이대성이라면 다르다. 이대성은 그들만큼 수비하면서도 공격에서 준수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선수다. 다소 기복은 있지만 컨디션이 좋은날은 팀내 가장 든든한 득점원으로 공격을 이끌어갈 수 있다.

속공시 그와 송교창, 라건아 등이 함께 뛰게 되면 상대팀에서는 수비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시즌 후 FA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전창진 감독이 트레이드에 응한 이유다. 이대성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전자랜드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몸에 배인 스타일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서 플레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이대성은 트레이드 초반의 아쉬움을 딛고 KCC의 우승 청부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재충전을 끝낸 이지스함 신형병기 화력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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