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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에서 발언하는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영국 왓퍼드의 그로브 호텔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실무오찬에 참석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 나토에서 발언하는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영국 왓퍼드의 그로브 호텔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실무오찬에 참석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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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3일 런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때, 그는 기자들에게 "한국이 방위비를 더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며 "주한미군 철수도 옵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방위비 분담과 미군 주둔을 연계시키는 그의 말을 듣고 누구보다 황당해 할 사람들이 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뒤에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고 잔류 결정을 내린 미국 행정부 당국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주한미군은 왜 전쟁 후에 잔류했을까

당시의 당국자들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존 덜레스 국무장관, 찰스 윌슨 국방장관, 아서 래드포드 합참의장 등이 트럼프의 말을 듣게 되면, '우리가 한국을 지켜주려고 군대를 주둔시킨 것도 아닌데,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들이 1953년부터 1955년까지의 내부 토론을 거쳐 주한미군을 잔류시킨 진짜 이유가 너무도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휴전 당시에도 트럼프처럼 미군 철수를 운운한 당국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헐 유엔군사령관이다. 그는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경우 이승만이 이를 이용해 공격적 행동을 벌일 수 있다', '주한미군이 공산진영을 억지하는 효과가 낮다' 등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미군의 영구 주둔을 반대했다.

하지만, 존 헐 등의 철수론은 행정부를 움직이지 못했다.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2일 제기되어 그해 10월부터 본격화된 이 논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잔류론이다. 행정부와 군부의 공감을 얻을 만한 요소가 잔류론에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미군이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은 것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개념적·법률적으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군대를 두고 간 게 아니었다.

미국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 중 하나가 1953년 7월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과를 담은 이른바 'NSC 154/1 문건'이다. '한국 휴전 직후의 합중국 전략(United States Tactics Immediately Following an Armistice in Korea)'라는 제목의 이 극비 문서는 회의 5일 뒤인 7월 7일 작성됐다. 국무부가 발행한 <합중국 외교관계 한국편, 1952-1954(Foreign Relation of the United States, 1952-1954, Korea)> 15권에 수록된 이 문건의 제1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 휴전은 중공(Communist China)이 무력에 의해 목적을 추구한다는 기본 목표나 의지를 포기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본문에 인용된 NSC 문건.
 본문에 인용된 NSC 문건.
ⓒ 국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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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다 해도 중공이 무력 침공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면 미군을 계속 둬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자 이런 말을 한것으로 보인다. 휴전 후에도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필요성을 언급하는 문서의 첫머리가 중국 위협론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미국의 적을 견제하는 게 주한미군 주둔의 본질적 동기임을 잘 보여준다.

한국전쟁은 북한 입장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대결이었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북한의 대결인 측면도 컸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라는 측면이 좀더 컸다.

미국은 3년간 중국과 싸워본 뒤 '휴전 후에도 중국의 무력침공 가능성이 계속 남는다'라는 판단을 갖게 됐다. 이에 입각해 NSC 154/1은 '잠정적 행동 방침(interim courses of action)'의 일환으로 제12항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가능한 한 제한적인 미군 재배치를 목적으로, 한국에서 참전 중인 여타 국제연합 회원국들로부터 추가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활력적인 캠페인을 계속 전개한다."

미국뿐 아니라 참전국들도 한국에 군대를 두도록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안보를 지키려면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들의 군대도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중국 견제론이 제기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한국전쟁 뒤에 주한미군을 철수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휴전 직전에 중국 견제론이 제기되고 이로 인해 미군 철수에 제동이 걸린 탓에, 그해 10월부터 철군이냐 주둔이냐를 놓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 견제론은 철군이냐 주둔이냐의 논쟁을 촉발시키기는 했어도, 이 논쟁을 종결시키지는 못했다. 잔류론에 힘을 실어준 또 다른 논리가 있었다. 존 헐 같은 철수론자들의 입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논리가 등장해 중국 견제론과 결합한 끝에 잔류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잔류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 논리는 주한미군 철수가 세계패권국가 미국의 위상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북·중 연합군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군이 떠나게 되면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미국의 위신이 추락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주한미군 잔류=미국의 위상 유지'로 요약될 만한 것이었다.

2005년에 <국제정치연구> 제8집 제1호에 실린 이철순 부산대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 휴전 이후 주한미군 잔류정책: 미국의 국가이익 규정을 중심으로'에서 그 논리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국무부에서 작성된 한국 관계 문서들을 분석한 이 논문은 "국무부 동북아시아과 과장인 맥클러킨은 1955년 2월 16일 로버트슨 극동담당 차관보에게 보내는 전문에서 1955년 1월 16일 제출된 (존) 헐의 주한미군 완전 철수론에 대하여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다"고 말한 뒤 맥클러킨의 보고서를 소개한다.
 
"나는 만약 이러한 결손이나 철수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심각한 정치적 곤란에 봉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보다 중요한 점은 한국에서 군사력의 이러한 약화가 우리가 한국에서 유지해온 힘의 지위를 손상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힘의 지위는 현재 극동의 정세에서 군사적 자산일 뿐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한국에서 군대를 빼내게 되면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약해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패권국가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군대를 그냥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맥클러킨의 보고를 받은 로버트슨 차관보도 존 덜레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똑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위 논문에 인용된 보고서에 따르면, 로버트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극동에서 유지해온 힘의 지위는 현재의 극동의 긴장과 불확실성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군사적 자산일 뿐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나는 군사적 요인뿐 아니라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힘의 지위가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무부 차관보 역시 '주한미군을 두는 것 자체가 정치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덜레스 국무장관도 찰스 윌슨 국방장관을 설득하기 위해 동일한 논리를 구사했다.

위 논문에 따르면, 덜레스 국무장관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경우 정치적으로 중요한 점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국가들로 하여금 상징적인 병력조차도 주둔하도록 설득시킬 수 없다는 점, 미국의 지원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를 약화시킴으로써 미국이 원하지 않는 적대행위에 말려들어갈 일방 행동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들어 윌슨 국방장관을 설득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한국에 병력을 주둔시켜야 하는데, 미군이 철수해버리면 동맹국들한테 한국에 남아 있으라고 요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승만 정권이 독자적으로 대북 행동에 나설 수도 있어 동북아 정세가 미국의 의도에서 벗어난 채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종합하면,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 동맹국들 앞에서 영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논쟁에서 보다 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중국 견제론이라는 구체적인 명분보다는 '미국 위상 유지'라는 추상적인 명분이었다. 이는 '공산주의 강대국인 소련·중국과 맞닿는 한반도에 미군을 배치하는 것 자체가 미국의 패권을 과시하는 데 유리하다'는 논리를 듣고 미국인들이 고무됐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데에 한반도만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견제론과 미국 위상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미국 행정부 내에서 철수론이 약해지고 잔류론이 살아남게 됐다. 잔류론은 1955년 6월 9일 NSC 회의에서 미국의 정책으로 공식 채택됐다.

이처럼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트럼프의 말처럼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전쟁 때 군대를 파견한 것도, 한국전쟁 뒤에 군대를 빼가지 않은 것도 적대진영을 견제하고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더해 최강국가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동기도 강하게 작용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동기가 그 뒤 약간 변형되기는 했지만, 중국 견제론과 미국 위상 유지론은 그 뒤에도 계속해서 핵심 동기를 이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운용하든, 미국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주한미군을 운용하든, 그 비용은 미국 국고에서 지출되는 게 정당하다. 특히 미국의 위신을 세우는 일에는 미국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 한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미국의 위신을 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트럼프는 한국이 불공정하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불공정한 것은 미국이다. 남의 돈으로 자기 위신을 세우려는 발상 자체가 불공정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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