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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이 촛불혁명의 승리로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은 해였다면 올해 2019년은 3·1혁명(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서울 동작구를 「동작 민주올레」라는 이름으로 구석구석 탐방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 있다. 탐방은 총 여섯 개 길(대방길, 노량진길, 흑석길, 신대방길, 상도길, 현충원길)로 나누어 진행하며, 코스별로 6-7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방길>과 <노량진길>, <흑석길>, <신대방길>, <상도길>에 이어 이번에는 <현충원길>이다. - 기자말

▶ 코스안내 : ①서울현충원 4·3길 – ②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길 – ③서울현충원 5월길 – ④서울현충원 친일파길 – ⑤서울현충원 전직대통령길 – ⑥서울현충원 평화·통일길 - ⓻서울현충원 여성길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 못 받는 여성독립운동가들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습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광복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하겠습니다.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 낼 것입니다."(2018. 8. 15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 중)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8·15경축사에서 여성 독립운동의 역사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9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해도 국가보훈처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 1만5689명 중 여성독립유공자는 44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어 지난 1년 동안 여성독립운동가의 비율이 2%에서 2.8%로 높아진 결과이다.

물론 여성독립운동가의 비율이 지극히 낮은 현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독립운동 역시 남성중심으로 벌어진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여성이 한 역할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위한 노력이 이곳저곳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긍정적이다. 우정사업본부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안경신, 김마리아, 권기옥, 박차정 등 여성 독립운동가 4인의 모습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했으며,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독립운동가 발굴과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는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 <여성독립운동가열전1, 2>(예술감독 이기연)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기 위한 대표적 활동의 하나이다.

이러한 시점에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재조명해보는 일 역시 의미있는 일이다.

확고한 무장투쟁론자 안경신(1888-?)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위패 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패 115위 중 3위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위패이다.
▲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위패 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패 115위 중 3위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위패이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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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의 독립유공자묘역(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안장되어 있거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역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애국지사묘역 위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을 둘러보면 무후선열 115위 중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여성 독립운동가 세 분의 위패만이 발견된다.

안경신은 평양에서 3·1운동에 참여한 후 대한애국부인회에 가담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군자금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으며,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확고한 무장투쟁론자답게 대한광복군 총영에 가담하여 활동한 인물이다.

1920년 필리핀, 중국, 일본 등을 방문·시찰하는 미국의원시찰단이 한반도도 그 여정에 포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를 기회로 세계여론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했다. 이에 호응하여 안경신이 속해 있던 광복군 총영도 서울과 평양, 신의주 등 세 도시에서 폭탄거사를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안경신은 임신 중이었음에도 평양으로 침투하여 거사를 벌이는 제2대에 속해 활동했다. 제2대는 평남도청과 평양경찰서, 평양부청에 폭탄을 투척하여 조선인들이 일제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사건 직후 다른 대원은 곧바로 만주로 피신하였음에도 안경신은 임신 중이었던 관계로 만주로 복귀하지 못한 채 함경남도 이원에 은신해 있다가 이듬해인 1921년 3월 출산한 지 12일 만에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안경신은 2심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되면서 1927년까지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안경신과 함께 송죽회에서 활동했던 동지 최매지(최금봉, 1896-1983)는 안경신의 확고한 항일투쟁 의지를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독립투쟁가가 많이 있고 여성투쟁가도 수없이 있다. 그러나 안경신 같이 시종일관 무력적 투쟁에 앞장서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살고 죽겠다는 야멸찬 친구는 처음 보았다. 너무 강폭한 투탄 폭살 투쟁으로 오히려 해를 받는다면 항일투쟁에 가담하지 아니함만 같지 못할 게 아니냐고 물으면 그녀는 잔잔한 미소만 띠고 긍정하지 않았다."


혁명여걸 김마리아(1892-1944)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위패 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패 115위 중 3위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위패이다.
▲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위패 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패 115위 중 3위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위패이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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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선열제단의 또 다른 인물 김마리아는 <동작민주올레> 신대방길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혁명여걸로 불리기도 했던 김마리아는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도 참여했고, 조선으로 들어오자마자 최초의 항일여성독립운동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기도 한 인물이다.

김마리아가 회장으로 있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서울과 대구를 비롯하여 부산·전주·진주·평양·원산 등 15개 지방에 지부를 설치하고 2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는가 하면, 6000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배신자의 밀고로 1919년 11월 김마리아를 포함한 52명이 일경에 체포되고 만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병보석으로 나온 김마리아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 중 감쪽같이 상하이로 탈출하는 '김마리아 탈주사건'이라는 전설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상하이에서 김마리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최초의 여성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리더십이 뛰어나 '만약 해방 이후까지 살았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을만한 인물'로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는 김마리아는 여성운동의 개척자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유학 중에도 근화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마리아는 1932년 망명생활을 정리하고 조선으로 들어와 교육운동에 헌신하는데, 1919년 두 차례 구속되어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1944년 평양에서 서거했다. 김마리아의 유해는 화장하여 대동강에 뿌려졌다.

3·1운동과 1주년 기념투쟁의 상징, 유관순 열사(1902-1920)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위패 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패 115위 중 3위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위패이다.
▲ 무후선열제단의 여성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위패 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김마리아, 유관순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위패 115위 중 3위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위패이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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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의 표상이자 여성독립운동가의 상징적 인물이다. 특히 올해는 유관순 열사의 삶과 죽음을 되새기게 하는 굵직한 일이 두 차례나 있었다. 하나는 서대문형무소에서의 '3·1만세운동 1주년기념투쟁'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개봉된 일이고, 다른 하나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 받았던 유관순 열사에게 올해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일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원래 이태원 공동묘지에 묘비도 없이 안장되었다. 그런데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던 중 흔적도 없이 망실되고 말았다. 유관순 열사의 무덤을 포함해 이름 없는 2만8000여 분묘를 한꺼번에 화장하여 합장시켰던 것이다. 결국 유관순 열사의 유해는 찾을 길이 없고, 다만 합장한 자리에 '유관순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가 세워져 있다. 옛 이태원 공동묘지가 있던 이태원부군당 공원에도 2015년에 유관순 추모비를 세웠다.

고향인 천안 병천에는 1989년 10월 12일 유관순 열사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취지로 초혼묘(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모신 묘)를 조성했다. 육각뿔 형태로 만들어진 초혼묘의 각 면에는 기도문·어록문 등의 비문이 적혀 있고, 묘 뒤편에는 유관순 열사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학규는 동작역사문화연구소의 공동대표 겸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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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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