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은 늘 손을 잡고 다니셨다. 시장에 갈 때도, 병원에 갈 때도, 자식들과 함께 외식하러 나설 때도, 어느 집 잔치에 참석할 때도 시아버지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항상 아내의 식사를 먼저 챙겼다. 행여나 맛있는 음식을 잘 못 먹을까봐, 곁에 바짝 붙어서 아내의 그릇에 산해진미를 열심히 담아 주고 아예 입 안에 넣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최소 3년 이상 삼시세끼를 거른 적이 없다. TV를 보다가 지나가는 말로 무엇이 먹고 싶다 하시면, 남편이 그날 안으로 대령하거나 며칠 안으로 무조건 먹게 해주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꾸준히 살이 오르셨다.
 
시아버지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노부부가 둘 다 깊이 잠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둘 사이에 침묵은 거의 없었다. 이야기하는 쪽은 주로 시아버지였다.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집밖에서도, 밤에도 낮에도 그는 이야기 샘이 마르지 않도록, 말하고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흔셋의 나이로 아내가 결국 먼저 세상을 떠나간 날, 시아버지는 아내의 얼굴을 부여잡고 목 놓아 울었다. 닷새간의 장례를 마칠 때까지 몇 번이고 주저앉아 울었고, 땅을 쳤다. 곡기를 끊고 오직 독한 커피만 여러 잔 들이켰다. 잠도 자지 않았다.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할 일을 찾았고,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 했다. 장례를 마친 후에도 아내가 누워있던 방안 침대를 치우지 않았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 자리에 아내의 영정사진을 올려놓고 밤낮으로 대화를 나누셨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포스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 (주)대명문화공장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감독)는 2014년에 개봉해 48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한국 독립영화의 새 역사를 쓴 것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강원도 횡성의 어느 산골마을에 사는 76년차 부부,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의 강계열 할머니를 통해 노부부의 일상, 그리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생명이 꺼진다는 것, 가족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 어떻게 겪더라도 아프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영화는 노부부가 서로에게 가장 좋은 동무가 되어 두 손 맞잡고 보낸 마지막 한 해의 따뜻한 풍경과 정서를 가득 담아냈다.
 
함께 마당의 낙엽을 쓸다가 할머니가 힘들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쉬라고 한다. 또 샛노란 국화꽃을 따서 할머니의 양쪽 귀에 꽂아주기도 한다. 할머니도 꽃다발을 볼에 부비고 할아버지에게 똑같이 꽃을 꽂아주며 "좋소야. 예쁘네요. 인물이 훤하네요." 등 감탄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할머니가 밤에 혼자 화장실 가기를 무서워하자, 할아버지는 아내의 손을 잡고 화장실 앞까지 함께 가서 노래를 불러준다. "춥지 않아요?"라고 묻는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동무하는 게 뭐가 추워?"라고 말한다. 강원도 민요가락을 잘 뽑아내는 할아버지도 웃고 듣는 할머니도 웃는다.

산골마을에 내린 눈을 치울 때도 첫눈을 먹으면 눈과 귀가 밝아진다고 눈을 한 움큼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에 부부의 정이 느껴지고, 개구쟁이처럼 눈싸움을 거는 할아버지 모습도 유쾌하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 하는 모습도 어린 아이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나이 들어 병약해진 할아버지는 숨이 차고 기운이 모자라 쉽게 지친다는 신체적 나이뿐.
 
눈을 치운 뒤에는 함께 부뚜막 앞에 앉아 손을 녹이고, 옥수수와 말린 생선을 구워 먹으며 옛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가 개울에서 봄나물을 씻는 동안 할아버지가 조약돌을 던지며 물튀기는 장난을 치는 일상은 계속되었다.
 
할아버지가 장난을 치다가도 기침을 할 때면, 관객은 할아버지의 병듦과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나간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데, 일을 하다가도 자주 쉬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전에는 기운이 좋았는데 이젠 기운이 없다"며 마음이 뜨악하다고 말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스틸 컷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 (주)대명문화공장

 
노인대학에서 소풍을 다녀온 날부터였을까. 할아버지는 병세가 더 악화되어 기침을 심하게 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몸을 긁어주고 다시 잠들 수 있도록 돕는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에 누워 할아버지를 위로한다.
 
할아버지는 결국 집에서 키운 두 마리 개 중 꼬마가 죽는 모습과 공순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 낳는 모습을 지켜보고, 첫눈 내리던 날 할머니 곁을 떠났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묘 앞에서 살아생전에 그가 즐겨입던 한복을 태우고, 젊었을 적에 잃은 여섯 명의 어린 자식들에게 보내는 내복 여섯 벌도 함께 태운다. 
 
"내가 없더라도 잘 해요. 할아버지 (나) 보고 싶어도 참아야 돼. 나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도 참는 거야. 할아버지 생각을 누가 하나. 나밖에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묘 앞에서 작별인사를 건넨 뒤, 할머니는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서서 주저앉아 서글피 운다. 관객도 함께 흐느낀다. 영화 전반부가 담아낸 두 사람의 모습이 애틋하고 다정해서 이별의 슬픔은 한층 깊어진다. 사계절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두 손 꼭 잡고 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부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또 그 중에 몇 아이는 잃고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오며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좋은 동무가 되어주었던 부부.
 
76년 동안 어찌 사랑만 하며 살았겠는가. 때로는 지독한 다툼의 시간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젊음만을 찬양하고, 나이듦을 폄하하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노부부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를 보여주며, 노년의 삶과 부부의 정, 부모와 자식, 죽음과 이별에 대해 깊은 생각을 던져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할머니가 곁에 있어 덜 외로웠을 것이다. 
 
나의 시어머니도 생애 끝자락까지 남편이 곁을 지켜주었다. 자녀들이 도와드리긴 했지만, 시아버지는 아내가 아플 때 단 한 번도 간병인을 쓰지 않았고,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의탁하지 않았으며,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장시간 외출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두고 홀로 중동 건설현장에 나가 오래 근무하셨던 시아버지는 그렇게 마지막 노년의 몇 해를 아내의 곁에서 가장 친한 동무가 되어 주었다.
님아그강을건너지마오 노년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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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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