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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 멕시코 콜리마주립대 교수의 '중앙아메리카 이주자 리포트'를 전북대안언론 참소리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동시 연재합니다. 
☞ 참소리 페이지에서 보기 (http://cham-sori.net/opinion/44703)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 이주자들의 실상(2)
 
'죽음의 열차' 혹은 '야수'라 불리는 멕시코 화물 열차.
 "죽음의 열차" 혹은 "야수"라 불리는 멕시코 화물 열차.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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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열차'가 있다. 그곳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이 너무도 참혹하여 붙은 이름이다.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그리고 납치와 약탈뿐 아니라 강간이나 살인마저도 만연한 곳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어떤 예방이나 보호 장치가 있을리 만무하고 오히려 그곳에서라면 으레 있을 법한, 혹은 이미 계산된 일쯤으로 무마된다 하여 '야수' 혹은 '괴물'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쯤 되면 혹시 지난 세기 나치즘의 광기가 유럽을 휩쓸던 시절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실어 나르던 열차일까 싶기도 하고, 혹은 매우 극단적인 영화 속에 설정된 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다만 오늘날 지구상 어딘가에 과연 '야수' 혹은 '괴물'이라 불리는 죽음의 열차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이르기는 가히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한 해에 중앙아메리카 북부 삼각지대라 불리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이 세 나라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을 향해 가는 이주자 수는 대략 40만 명 혹은 50만 명에 이른다. 물론, 공식적인 숫자는 아니다. 그 어느 기관에서도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숫자를 확인할 수 없다.

아메리칸 드림과 죽음의 열차
 
미국 국경으로 가는 멕시코 화물열차 탑승한 중미 이민자들 모습.
 미국 국경으로 가는 멕시코 화물열차 탑승한 중미 이민자들 모습.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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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제1차 관문이 되는 멕시코 남쪽 국경을 통과하는 이주자들의 숫자를 어림잡아 가늠한 수치다. 세 나라 어디에서 출발 하느냐에 따라 넘어야 하는 국경의 숫자는 달라지지만, 멕시코에 닿기까지 큰 어려움은 없다. 설령 이들이 여권은커녕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문서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끼리는 사증 면제 협정이 되어 있어 국경의 의미가 무색하고 멕시코 남쪽 국경에서도 이들의 상황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경'과 달리 과테말라와 멕시코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치아떼 강(Río Suchiate)'을 건너기만 하면 그뿐이다. 우리 돈으로 약 1000원 안쪽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면, 언제든 강 양안을 아무런 통제 없이 오고 갈 수 있다. 두 서너 개 이어붙인 고무 튜브 위에 합판을 얹어 어설프게 만든 뗏목이 강의 양쪽 연안을 수시로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사실 이 지역에서 '월경'은 이미 국경이 존재하기 전부터 일상이었다. 강 양안을 두고 형성된 생활권이 어느 날 국경으로 갈렸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오늘날에도 국경이란 의미가 무색하게 강 양안으로 사람과 물자가 쉼 없이 오가지만, 오히려 이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국경 사무소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을 향해 가는 이주자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국경은 오히려 멕시코 남쪽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들어온 이후에 시작된다. 멕시코만 통과하면 미국 국경에 닿지만, 멕시코를 통과하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다. 멕시코의 국토는 대한민국의 스무 배 정도에 이른다. 멕시코의 남쪽 국경으로부터 미국과 맞닿은 북쪽 국경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1100km(대서양 연안 루트), 길게는 3800 km(태평양 연안 루트)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어느 루트를 택하든 멕시코를 통과하는 여정에서 이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가혹하다.

'죽음의 열차' 혹은 '야수'라 불리는 것은 멕시코를 남에서 북으로 연결하는 화물열차를 일러 붙인 이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주자들이 지붕에 올라탄 화물 열차를 말한다. 멕시코의 경우 19세기 후반 외국 자본으로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하였고 20세기 전반기 국유화되었다가 20세기 말 다시 민영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여객은 사라지고 화물 운송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외국 자본, 특히 미국 자본이 멕시코 전역 약 2만2000km에 달하는 철도 상당 부분을 인수하였고 멕시코의 남북 방향을 주축으로 하여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그러나 체계적인 관리와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최고 운행 속도가 시속 20km에 이르지 못하는 구간이 상당하다.  

멕시코 내에서 '북쪽'을 향해 가는 화물 열차는 멕시코를 관통하여 미국을 향해 가는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주자들의 가장 전형적인 이동 수단이다. 물론, 전통적인 방법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 어느 순간, 중앙아메리카로부터 올라온 이주자들이 멕시코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는 화물 열차 지붕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의 압력에 의해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에 대한 멕시코 내 이민국의 감시가 심해지던 2000년대 후반 즈음이다. 어차피 '통과' 이주자들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멕시코 정부는 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느슨한 편이었다. 또한 멕시코 자신이 미국에 가장 많은 숫자의 이주자를 보내는 나라이고 보니, 늘 자국 내 이주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멕시코 당국이 이민국 직원들뿐 아니라 군 병력과 연방경찰까지 동원하여 남쪽 국경으로부터 올라오는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주자들을 통제하면서 이주자들의 운신이 어려워졌다. 기존에는 장거리 버스 등과 같은 대중교통이 북쪽 국경에 이르기까지 주된 수단이었으나, 도로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 때문에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들이 이민국과 공권력의 감시를 피해 올라선 곳이 바로, 달리는 화물 열차의 지붕 위였다. 그곳이라면 그 어떤 멕시코 당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의 영역이기도 했고, 그들끼리의 법이 통하는 하나의 '작은 공화국'이기도 했다.

달리는 열차의 지붕 위에서라면, 그 어떤 일이 발생하든 어지간해선 멕시코 당국도 관여하지 않았다. 이미 이주자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연방 경찰이나 이민국 직원들이라도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만큼은 관여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이주자들이 화물열차의 지붕 위에 올라 멕시코를 관통해 가는 상황이 어디서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그들의 통제권 밖이었다. 전쟁이나 비상시에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멕시코에서는 일상에 가까웠다. 화물 열차의 지붕이라면, 으레 수십 명 혹은 수백 명까지 이주자가 올라탄 풍경이 지극히 정상이었다. 화물 열차라면, 으레 그러려니 했다.

하룻밤에 결정되는 '미국행'

이주자들이 달리는 화물 열차의 지붕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 시점은, 멕시코 정부가 고질적인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선포한 시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중앙아메리카 북부 삼각지대라 불리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의 치안이 급격히 악화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 지역은 지난 20세기 지독한 내전을 겪으면서 원래 치안이 불안정한 곳이기도 했지만, 2000년대 후반 멕시코 정부가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주요 조직들이 이를 피해 남하하면서 치안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물론 이 지역 국가들이 남미로부터 미국을 향해 올라가는 마약(코카인)의 주요 통로가 되었음 또한 사실이다. 세계 보건 기구가 발표하길, 인구 10만 명 당 살인 빈도로 표현되는 '살인율'이 10명을 넘으면 그 어떤 전염병보다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명시했는데, 2000년 대 후반 이 세 나라의 살인율은 지역에 따라 100명을 넘어서고, 일부 지역은 400명 선을 육박하면서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 중 수위에 나란히 등극하였다(참고로, 한국은 살인율이 0.9명이다). 

자국의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가장 취약한 연령층은 10대 후반부터 20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이었다. 더러 10대 초반도 포함되었다. 남쪽으로 내려온 마약 카르텔들이 경쟁적으로 조직원을 확보하는 과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거기에 더해 기존 이 세 나라에 기반을 두고 있던(물론, 두 조직 모두 태생은 1980년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인근이었으나, 1990년대 말 대거 추방과 함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를 중심으로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폭력조직인 MS-13이나 B-18이 합류하면서 폭력의 양상은 더욱 잔인하고 첨예해졌다.

젊은이들이라면 자의와 상관없이 중앙아메리카로 내려온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또한 상대 조직과의 충돌에서 쉽게 목숨을 잃었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법무부 장관이 폭력 조직과 '주요 조직원 석방'이라는 조건을 내건 '휴전'을 선포할 정도였고, 온두라스 정부는 아예 그 정도의 해결책도 없는 듯했다. 2009년 쿠데타 이후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다.

결국 폭력을 피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탈출이었다. 그리고 기왕 탈출이라면 '북쪽'이라 불리는 미국을 향해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미국에 닿는다면, 자국에서의 신변 위협을 이유로 난민 신청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존 이주의 고전적인 요인이었던 경제적 상황과는 다른 현실이었다.

오랜 시간 준비된 이주도 아니었다. 하다 못해 최소한의 여비도 마련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느 날 집 앞 혹은 학교 앞에서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이 될 것을 제안 받는다면, 두 가지 선택 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이 되든지, 아니면 그날 밤 안으로 미국행을 선택하든지. 많은 이주자들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이주 대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간 미국을 향한 이주라면 집안의 가장이거나 2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남성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 대부분이 먼저 미국에 들어간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주 브로커를 고용하고, 그들의 안내 하에  미국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는 곳까지 비교적 '안전하게' 도착하는 방식으로 이주를 시도했다.

이주의 출발과 도착뿐 아니라 과정에도 분명한 패턴이 있었다. 하물며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돈의 많고 적음에 따른 이주의 대략적인 성공률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이러한 이주의 패턴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국 내 치안이 급격히 악화된 결과였다. 폭력은 곧 살인으로 이어졌고 살인의 만연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주는 계획적이기 보다는 즉각적인 경향을 띠었고 이주자들은 훨씬 더 젊어졌다. 그리고 남성 위주였던 이주자들 사이에 여성의 비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동의 참여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을 것 같은 미성년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서너 살 먹은 아이가 미국에 있는 가족의 연락처를 옷에 새겨 넣은 채 이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전에 없던 일로, 미국 국경에서 잡히는 미성년 이주자의 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 앞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명하고 중앙아메리카 각 국의 교육부를 통해 자국 미성년 아동들에게 미국을 향한 이주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자국에) 머물러라 ¡Qedate!' 캠페인을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만연한 폭력과 살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의미 없는 일이었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북쪽' 즉 미국을 향한 이주가 즉각적인 탈출의 형태를 띠어가면서 이주 브로커 비용은 고사하고 교통비에 대한 준비도 쉽지 않았다. 결국 자국에서의 폭력을 피해 '북쪽'으로 내몰린 이주자들에게 '죽음의 열차'는 어찌 보면 유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누가 되었든, 일단 멕시코 남쪽 국경을 통해 들어오면 검문소를 피해 대부분 걸어서 300km를 이동하고, 그 곳에서 수일을 기다려 '죽음의 열차'에 오르는 것이 이제는 이주의 기본 공식이 되어버렸다.

멕시코 남쪽 국경을 통과한 후 화물열차의 남쪽 시발점이 되는 도시 '아리아가(Arriaga)'까지 무사히 도착을 한다 해도, 바로 화물 열차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물열차가 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출발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대부분 그 곳에서 여러 날을 기다리며 북으로 올라가는 화물열차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다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던 객차들이 연결되기 시작하면, 곧 출발을 알리는 신호다. 이와 함께 객차 주변에서 노숙을 하며 기다리던 이주자들이 열차 지붕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객차들이 연결되고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 같았던 열차가 하루, 이틀 혹은 여러날까지도 다시 출발을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니, 열차의 지붕에 오른 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여러 날을 화물 열차의 지붕 위에 올라 기다리면서도 한 번 열차에 오른 사람들은 다시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 열차가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달리는 열차의 지붕 위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설령, 운이 좋아 열차가 바로 출발을 한다고 해서 이들의 여정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열차에 오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올라탄 열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며 어디까지 이르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그들이 가고자 하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간다면 다행일 뿐.  물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간다 해도 현재의 화물열차들이 멕시코를 남에서 북으로 한 번에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지점이든 열차가 멈추는 곳에 내려 다시 북쪽을 향해 가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멕시코 북쪽 국경 대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멕시코 남쪽 국경을 통해 들어온 이주자들이 멕시코 북쪽 국경에 닿기 위해 평균 20여 일의 시간이 소요되고  평균 12회의 환승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운이 좋아 소요되는 시간과 환승의 횟수가 줄어들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 훨씬 많은 시간과 훨씬 많은 횟수의 환승을 해야 한다. 물론, 몇 달이 걸리더라도 멕시코의 북쪽 국경에 닿을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매년 2만여 명의 이주자들이 이 여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자의든, 타의든.

일단 화물열차의 지붕에 오르면, 열차가 멈춰 서기 전까지는 이들도 지붕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우리나라 스무 배가 넘는 면적의 국토를 가지고 있는 멕시코에는 위도에 따라 혹은 고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기후가 존재한다. 계절에 상관 없이 열차가 추운 곳을 지나게 되면 추위에 노출되고 더운 곳을 지나게 되면 더위에 노출된다. 비바람이라도 몰아친다면, 달리는 열차 위에서 온몸으로 맞으며 견뎌야 한다. 또 고도가 낮은 사막지대를 지나게 될 때면 철판으로 된 열차의 지붕에 앉아 기온이 섭씨 40도 혹은 50도까지 올라가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열차 지붕 위에선, 졸음 또한 이들에게 큰 위험 요인이다. 설령 졸음을 물리친다 해도 자칫 방심하다간 열차의 지붕 위로 아슬하게 스치는 나뭇가지나 터널 입구 등과 같은 구조물과 충돌하여 추락하고 만다. 가지고 올라탄 식량과 물이 떨어진다 해도 열차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리적인 현상마저도 올라탄 열차의 지붕 위에서 해결해야 한다.

필수가 된 '목숨값'과 피임약
 
미국 국경으로 가는 멕시코 화물 열차를 기다리는 모녀.
 미국 국경으로 가는 멕시코 화물 열차를 기다리는 모녀.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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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추위, 배고픔, 갈증, 졸음 등과 같은 물리적 현상에서 기인하는 상황들만으로도 '죽음의 열차'라 불리기가 부족하지 않은데, 화물 열차 지붕 위에 실려가는 이들을 둘러싸고 어떤 형태로든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있어 이주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한다. 멕시코 내 각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폭력 조직과 마약 카르텔뿐 아니라 일부 공권력도 이들의 범주에 포함된다.

일단 이주자들이 멕시코에 들어와 화물 열차의 지붕에 오르면서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은 그들 각자의 '목숨값'이다. 대략 미화 100불 정도에 해당하는 돈인데,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공권력은 달리는 화물 열차를 세울 수 없지만, 폭력 조직과 마약 카르텔은 수시로 열차를 세운다. 그리고 대여섯 명의 조직원들이 열차의 지붕에 올라 '목숨값'을 징수한다.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가늠하고 선로 위에 돌 서너 개만 놓아도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열차 회사와 멕시코 정부가 열차 기관사들을 무장시키겠다고 몇 번이나 발표했지만, 여전히 멕시코를 남북으로 운행하는 화물열차들은 선로에 놓인 돌 몇 개에 속수무책이다. 더불어 지붕에 올라탄 이들까지 말이다.

그나마 '목숨값'을 지불하고 통과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멕시코에서라면 설령 사라진다 한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은 마약 카르텔의 손 쉬운 납치 대상이기도 하다. 납치는 카르텔끼리 마약 운반을 담당할 조직원을 확보하는 경쟁 가운데서 발생한다. 실제로 매년 화물 열차의 지붕 위에 올라 이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약 2만여 명이 사라지지만, 그들에 대한 그 어떤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실정이다.

특히 남쪽 국경으로부터 가장 단거리로 북쪽 국경을 잇는 '대서양 루트'의 경우, 이주자들에 대한 납치가 빈번할 뿐 아니라 납치의 방식도 잔인해지면서 최근에는 이 루트의 약 서너 배 정도의 거리에 달하는 '태평양 루트' 쪽으로 이주자들이 몰리는 상황이다. 태평양 루트를 선택할 경우 멕시코 서북부 지역의 긴 사막 구간을 통과하면서 최고 기온 섭씨 50도를 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지만, 비교적 이주자들에 대한 납치가 드물다는 이유 하나로 이 구간을 선호한다. 이 경우 이주자들은 거의 4000km를 '죽음의 열차'에 올라탄 채 이동해야 한다.

더 비참한 현실은 여성 이주자들에 대한 강간이다.  이 경우 지역 폭력 조직이나 마약 카르텔 그리고 일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것에 더해, 같이 '죽음의 열차'에 오른 남성 이주자들도 가해자라는 점에서 더욱 참혹하다. 이주자들이라면 '죽음의 열차'에 오르면서 '목숨값'을 챙기는 것이 불문율이듯, 여성 이주자들이라면 피임약을 구입한다. 멕시코를 통과하기 위해서 여성들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해서 '멕시코 약(pastilla mexicana)'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경 근처뿐 아니라 화물 열차에 오르는 곳이라면 반드시 '멕시코 약'을 손에 들고 팔러 다니는 수 많은 노점상들이 존재한다. '죽음의 열차'에 올라 멕시코 북쪽 국경에 닿은 여성 이주자들에 대해 실시된 연구에 의하면 이들 중 85%가 강간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하였다. 질문 자체가 갖는 민감성을 고려한다면, 85%는 최소한의 수치일 것이다. 아마도 현실은 그 이상일 것이라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기에 더욱 참혹하다.

매년 40만 명 혹은 50만 명이 '죽음의 열차' 혹은 '야수'의 등에 올라타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자 미국을 향해 가지만, 그 중 미국의 국경을 넘어 꿈을 이루는 자는 단 10%에도 이르지 못한다. 나머지 90%에 달하는 수십만 명이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그들의 이주 여정을 중단하는지에 대한 결과는 알 수 없다.

그간 미국의 압력을 받은 멕시코 정부는 화물 열차의 기관사들을 무장시킬 것이라는 발표를 하였고, 화물 열차를 운행하는 민간 기업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화물 열차의 시속을 40km 이상으로 올려 이주자들이 무임 승차 하는 것을 방지하겠다고 발표한 지가 수 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이주자들이 배고픔과 갈증, 그리고 더위와 추위 등을 무릅쓰고 '죽음의 열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전히 '목숨값'과 '통과세'가 징수되고, 납치가 자행된다. 더욱이 여성들이라면 강간마저도 이주의 한 과정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어 '멕시코약'이라 불리는 피임약을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지경이다. 인간의 삶이라면, 이보다 더 참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안에서 이들의 존재는 애써 외면된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호하지 말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압력 앞에서라면 말이다. 그게 멕시코 정부의 입장에서나, 혹은 '죽음의 열차'에 오른 이주자들에게나 최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암담하다.

멕시코 정부가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 비교적 합리적 수준을 유지하던 이주 브로커 비용이 급상승하였다. 멕시코의 통제와 감시가 심해질수록, 이주 비용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 브로커의 도움을 포기하고 '죽음의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멕시코 정부가 '죽음의 열차'를 통제하기 시작할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주자들이 멕시코를 통과하면서 직면해야 하는 상황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카라반, 절반의 성공

2018년 10월, '죽음의 열차'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견디지 못한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이 새로운 발상을 하게 되었다. 수백 명 혹은 수천 명 함께 모여 '공개적인 이주'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간 이주가 은밀하고, 개별적이고, 또한 떳떳하지 못한 마음으로 하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공개적이고, 집단적이고, 또한 떳떳하게 해 보자는 발상이었다.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실제로 수천 명에 이르는 이주자들이 서로 SNS를 통해 모이고 자신들의 이주 루트를 완전히 공개하면서 '카라반' 을 꾸리고 이주를 시도하였다. 수천 명이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행렬이었다. 적어도 마약 카르텔과 폭력 조직, 그리고 공권력으로부터 행해지던 갈취를 피해보겠다는 계산이었으나, 사상 초유의 일이다보니, 세계 언론들이 이들의 행렬을 쫓아가며 보도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죽음의 열차'에서 내려와 '카라반'을 꾸린 수천 명의 이주자들은 약탈과 갈취로부터 보호 받았고, 멕시코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비교적 안전하게 멕시코 북쪽 국경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넘어야 할 국경, 미국 국경을 넘지 못하면서 그마저도 동력을 잃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지난 6월, 이들을 막지 않는다면 관세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앞에,  멕시코 정부는 다시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간 규제 없이 넘어올 수 있었던 멕시코 남쪽 국경은 닫혔고, 어찌 그 국경을 넘어선다 하더라도 곳곳에 설치된 이민국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죽음의 열차'에서 내려와 '카라반'을 꾸렸던 이주자들이 다시 '죽음의 열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멕시코를 관통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가 아무리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하더라도 중앙아메리카 각 국의 치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이주는 계속될 것이다. '북쪽' 미국을 향한 이주야말로 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택일 것이고, 또한 '죽음의 열차'라 불리는 화물 열차의 지붕 위야말로 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림수진(Lim, Su Jin),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Universidad de Colima)
 
일곱 살 먹던 해 겨울,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갔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 단아하게 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울역사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각인이었습니다. 이후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이다음에 크면 반드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대신,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핑계 삼아 원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던 2001년, 코스타리카로 갔습니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의 증손자 쯤으로 신분을 둘러대고 커피밭에 '위장취업'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커피를 따면서 3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저 '불량노동자'를 걱정하며 자신들이 딴 커피와 음식과 마음을 나눠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니카라과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주', '국제분쟁', '지정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0년 이후 멕시코 연방정부 고등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 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 <세계의 분쟁(공저)>, <디코딩라틴아메리카: 20개의 코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앙아메리카,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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