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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미의 한 나라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 세계적인 이념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 나라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득권 자본가의 핍박에 견디지 못한 민중은 드디어, 1938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부를 세웁니다.

하지만, 열정과 이상만으로는 그들의 나라를 쉽게 만들어낼 수 없었고, 끝없는 자본가와 '남미를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했던' 미국 정부의 방해로 4년도 채 지나지 않아 기득권에게 자리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 짐작하시겠어요? 네, 바로 '칠레'입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외신의 한구석에 계속 언급되는 남미의 나라가 바로 칠레입니다. 첫 기사에서 언급된 '50원'의 무게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급기야 예정되었던 APEC 회의까지 취소하는 것을 보면서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퍼센트의 자본가가 국가의 부를 90퍼센트 이상 독점하는 현재의 칠레를 살펴보면서, 대통령궁에서 자결해야 했던 혁명가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입니다. 오늘은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서해문집)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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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칠레에 친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부를 세우기 위한 투쟁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1970년이 되어서야 그들에게 찾아온 새로운 정부가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였습니다. 칠레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지난한 투쟁 끝에 찾아온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공고한 기득권과 미국 정부의 집요한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군대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버립니다.

이렇게 30여 년의 투쟁을 통해 간신히 얻게 된 정부는, 단 3년의 짧고도 고된 집권을 무력의 위협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민을 위해 평생을 투쟁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무너져가는 대통령 궁 안에서 자살을 하고야 맙니다. 네,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는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연설을 잠시 옮겨 볼까요?

"저들이 무력을 장악했으니, 우리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변혁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범죄행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민입니다. … 깨어 있어야 합니다.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저들의 횡포에 섣불리 대응해선 안 됩니다. 학살은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도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존엄하고, 더 나은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의 권리, 그것을 지켜내야 합니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돼선 안 됩니다. 저들에게 압도당해서도, 살육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칠레의 혁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한 정치인의 의미 있는 투쟁은 인민의 지속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칠레 (혹은, 남미 전체)를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미국의 조직적인 방해와 개입은, 칠레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는 토양을 일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나라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냐고요? 군부를 장악한 피노체트라는 독재자에게 90년까지 학살과 강압을 통한 지배를 당해야 했고요, 아직도 그때의 상처는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피노체트의 지지세력이 2010년 총선에서 부활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죠.

피노체트파를 이끄는 것은 그의 딸인 루치아 피노체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칠레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중남미 최대 항공사를 소유한 가문의 일원입니다. GDP만으로는 남미 최대의 부국이지만, 그들의 빈부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라고 하네요.

인민의 혁명을 통한 정권을 창출했던 칠레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요? 아옌데의 집권이 두려웠던 미국과 친미 성향의 칠레 기득권이 어떤 전략을 옮겨 봅니다.

첫째, 아옌데 정부에 참여한 정치세력을 분열/약화시킨다.
둘째, 칠레 군부와의 접촉을 확대한다.
셋째, 비 마르크스주의 정치세력과 정당을 지원한다.
넷째, 반 아옌데 성향 언론사를 지원/육성한다.
다섯째, 이들 언론사를 통해 아옌데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전복하려 할 뿐 아니라, 쿠바와 소련이 칠레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는 선동을 조장한다.


전략은 너무도 간단해요. 아옌데를 지지했던 민중을 나누고, 그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게 함으로써, 민주적인 정권에 공급되어야 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차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진보의 과정에서 가장 큰 방해꾼은, 언론과 자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불치병인 '언론과 자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번 '조국 사태'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처럼,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로서의 '검찰'은 선출 권력인 대통령의 인사권에게까지 개입할 만큼 막무가내라는 것도 명백해졌잖아요. 1970년 칠레의 국민도, 그들의 편인 아옌데를 뽑았습니다. 짧은 집권 기간 동안, 그들의 삶은 분명히 나아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집요한 방해는 결국, 그들을 분열시켰고 아옌데는 실패했습니다.

"동지들, 저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메시아가 될 생각도 없고요. 그저 인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칠레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내 바지 자락이나 발에 입맞춤하려는 사람들은 기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적을 이룰 수 없어요. 기적은 인민들 손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아옌데의 정부는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의 모든 측면에 통합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 같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단순히 선거의 차원을 넘어 시민이 매일매일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아옌데는 이러한 '과정의 공유'를 통해, 칠레라는 국가의 작동 방식뿐 아니라 칠레인들의 행동방식까지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옌데는 이것이 혁명적 '신인류'를 창조해내는 칠레적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로부터의 혁명'은 자생적으로 같이 성장했어야 하는 '인민으로부터의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2019년의 혼란에 이르렀습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깨어있는 우리의 관심만이 '새로운 민주시민'으로서의 대한민국 혁명적 신인류의 탄생을 가져올 것이며,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칠레의 2019년을 통해 대한민국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아닐까요? 그리고, 칠레 국민들의 혁명에도 간절한 응원을 보냅니다. 다행스럽게도 내년 4월에 개헌을 약속했다고 하니, 그들의 국민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책정보 :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서해문집)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은이), 정인환 (옮긴이), 서해문집(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인민혁명, #혁명적 민주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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