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원주 DB와 울산 현대모비스 경기에서 모비스 이대성이 수비를 피해 드리블 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원주 DB와 울산 현대모비스 경기에서 모비스 이대성이 수비를 피해 드리블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 전주 KCC가 초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며 단숨에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지난 11일 KCC는 리온 윌리엄스와 박지훈, 김국찬, 김세창 등 4명의 선수를 울산 현대모비스에 보내고 라건아와 이대성을 받는 트레이드를 전격 단행했다. 양 팀 모두 핵심 선수들을 맞바꾼 빅딜이었지만 선수의 '이름값'에서 KCC가 얻은 이득이 누가봐도 일방적이다.

KCC는 이로 인하여 라건아-이대성-송교창-이정현으로 이어지는 현역 국가대표 라인업을 완성했다. 여기에 득점력에서 아쉬움을 남긴 외국인 선수 조이 도시를 교체하고 KBL 경험이 검증된 찰스 로드를 대체 선수로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는 전창진 감독과 부산 KT 시절 이후 4년만의 재회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KBL판 '슈퍼팀'의 탄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슈퍼팀이라는 단어의 원조는 NBA(미 프로농구)다. 전성기의 스타급 선수들이 우승을 위하여 한 팀에서 뭉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NBA 최고스타이자 '슈퍼팀 덕후'로도 꼽히는 르브론 제임스다. 마이애미 히트(2010-201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2014-2018) 2기를 거쳐 현재 LA 레이커스에 이르기까지, 제임스는 세 차례나 자신을 중심으로 슈퍼팀을 구축하며 챔프전 우승을 3회나 달성했다. 드웨인 웨이드, 앤서니 데이비스, 카이리 어빙, 케빈 러브, 크리스 보쉬 등 당대 최고의 올스타급 선수들이 제임스의 조력자가 되었다.

보스턴 셀틱스도 2000년대 후반 케빈 가넷-레이 앨런-폴 피어스의 막강 트리오를 구축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스테판 커리-드레이먼드 그린-클레이 탐슨의 기존 우승멤버가 건재한 가운데 득점왕 출신의 케빈 듀란트까지 영입하며 2010년대의 지배자로 군림한 바 있다.
 
 지난 7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경기. 4쿼터 현대모비스 라건아가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지난 7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경기. 4쿼터 현대모비스 라건아가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이러한 슈퍼팀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전성기의 스타 선수들이 단지 우승을 위하여 '쉬운 지름길'만 가려고 한다는 비판이다. 더구나 스타급 선수들이 강팀이나 명문팀으로만 몰리면서 투자 규모에 한계가 있는 '스몰 마켓'들이 점점 위축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슈퍼팀의 범람이 자칫 리그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할수도 있다는 우려다.

NBA의 전설적인 슈터이자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레전드였던 레지 밀러는 슈퍼팀으로 이적하는 스타들을 향하여 "왕은 자신의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 싸구려 반지(우승반지를 뜻함)를 위하여 자신의 왕국을 버리는 짓"이라며 비난한 바 있다. 밀러는 NBA에서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18년간 인디애나의 원클럽맨 프랜차이즈스타로 남았다. NBA 최고의 농구황제로 꼽힌 마이클 조던도 "나라면 매직 존슨이나 래리 버드에 한 팀이 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들을 이기고 싶었다"며 슈퍼팀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KBL에는 그동안 슈퍼팀이라고 불릴 만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1990년대 후반 이상민-조니 맥도웰-추승균-조성원 등이 활약했던 대전 현대(현 전주 KCC), 2000년대 초반 서장훈-재키 존스-조상현-황성인-로데릭 하니발 등이 이끈 청주 SK(현 서울), 2010년대 라건아(당시는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양동근, 문태영, 함지훈 등을 앞세워 KBL 유일의 챔프전 3연패를 달성한 울산 현대모비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KBL에서는 '선수'가 주체가 되어 스타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아 슈퍼팀을 결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워낙 자주 변하는 외국인 선수제와 보상규정이 까다로운 FA제도의 한계로 인하여 각 팀들간 자유로운 전력보강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KBL 슈퍼팀들이나 이번의 전주 KCC 모두 선수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철저히 구단을 중심으로 트레이드가 진행된 사례다. 2010년대 모비스의 사례처럼 아무리 강팀을 구축했다고 해도 여러 제도상의 한계로 전력을 3년 이상 유지하기 쉽지 않다.

우승에 올인한 KCC와 리빌딩을 선택한 모비스

KCC의 슈퍼팀 구축은 올해 리그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수다. KCC는 트레이드 전까지 8승 5패로 현재  리그 3위에 올라있다. 선두 서울 SK(10승 3패)와는 2게임 차이다. 객관적인 전력상 그나마 SK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 어떤 팀도 KCC를 상대하기 버거울 것으로 보인다. 올시즌 내심 우승까지 노리던 몇몇 팀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변화다.

많은 팬들이 이번 트레이드를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슈퍼팀 결성 자체보다 트레이드 과정이 누가봐도 '기형적'이기 때문이다. 모비스가 라건아와 이대성이라는 구단의 전성기를 함께한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리그 최정상급 원투펀치를 한꺼번에 내주고 받아들인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급'이 맞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즉시전력감은 리온 윌리엄스와 김국찬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번 트레이드는 모비스가 사실상 올해 우승 도전을 포기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물론 모비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구단의 전성기를 함께한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모비스는 몇 년간 계속된 호성적으로 상위권의 신인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 시즌에는 이대성이 FA가 되고 그 다음 시즌에는 라건아가 다시 특별귀화 드래프트에 나서야한다. 이대성은 올시즌 김상규 영입 때부터 모비스와 불화설을 겪어 결별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이미 지난 시즌 우승을 차지한 모비스로서는 두 선수가 한창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을 때 트레이드하고 리빌딩을 진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법하다. 하지만 아무리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도 라건아-이대성급 선수를 내주고 최소 양동근-함지훈의 대체자가 될 만한 자원을 영입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KCC 입장에서도 슈퍼팀은 일종의 모험이다. 김국찬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전력유출없이 라건아와 이대성라는 거물급 선수들을 영입한 거래 자체는 대성공이라고 할수 있지만, 그만큼 올시즌에 '무조건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2003-2004시즌 LA 레이커스나 2010-11시즌 마이애미의 사례를 볼 때 슈퍼팀을 구성한다고 무조건 우승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슈퍼팀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그건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더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NBA에서도 슈퍼팀은 좋든 싫든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슈퍼팀을 응원하는 이들에게는 우승을 향한 도전과 스타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는 재미로, 슈퍼팀에 반대하는 이들은 슈퍼팀이라는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의 이변을 기대하는 재미로 프로농구를 즐길 수 있다. 우승에 올인한 KCC와 리빌딩을 선택한 모비스의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프로농구의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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