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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하행선을 탔을 때는 신탄진역부터, 상행선을 탔을 때는 옥천역부터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대전에 다 와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일 때문에 다른 지역에 다녀올 때는 물론이거니와 놀러갔다가 대전으로 돌아올 때도 그렇다.

버스 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철커덕철커덕 하는 소리도 좋고, 바깥 경치를 보는 재미도 버스보다 쏠쏠하며,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하고, 밤에도 환해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며, 마음이 바뀌면 중간에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전역에 내린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대전부르스
 
 대전역 자료사진.
 대전역 자료사진.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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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 닿으면 습관처럼 <대전 부르스>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상하게 돌아오는 순간에도 "잘 있거라, 나는 간다"가 절로 나온다. 이 노래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1956년 어느 날, 신세기레코드사 직원이자 작사가였던 최치수가 남쪽 어느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전라도 쪽이었던 것 같다.

당시 완행열차는 서울역에서 밤 여덟시 사십오분에 출발해서 대전역에 영시 사십 분에 도착했다. 그때는 서울에서 목포로 가는 선로가 연결되지 않았기에, 대전역에서 기관차를 분리한 다음에 반대편으로 돌려서 목포로 향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전역에 십분 정도 서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최치수도 그 이유로 잠시 플랫폼에 나와 있었던 듯하다.

길게 뻗어 이리저리 엉킨 선로,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 기차를 옮겨 타는 사람들, 잠깐을 이용해 급히 가락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와중에 최치수의 눈에 이별을 하는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이별을 앞 둔 남녀의 애절한 모습과 곧 떠날 듯 거친 숨결처럼 증기를 뿜어내는 기차, 막연하고 두렵게 끝이 보이지 않게 뻗쳐있는 철길은 작사가의 마음에 돌을 던졌고, 그 파장은 노랫말로 태어났다. 노래는 특이한 창법으로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재주가 있던 가수 안정애의 입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대전역에 대한 나의 각별한 애정은 연극 작업으로 이어졌다. <대전 부르스>의 가사와 탄생배경을 모티브로 만든 연극 <이별의 말도 없이>가 그것이다. 60년 전 대전역 플랫폼에서 헤어졌던 남녀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에서 시작된 작품이었다. 여자 주인공 역전할매는 떠나간 남자 박달삼을 그리워하며 매일매일 대전역을 오가며 소제동에서 살고 있다. 이제 몸도 마음도 헐거워졌지만 그리움과 추억은 더욱 촘촘해져버려 가끔 과거를 헤매는 바람에 주변인들의 걱정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 주인공 박달삼이 역전할매를 찾아온다.

전쟁 피난민으로 대전역에 만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오누이처럼 지내다가 사랑이 시작될 무렵, 박달삼은 부모가 전라도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남행열차에 몸을 싣는다. 짧을 줄 알았던 이별은 60년을 훌쩍 뛰어 넘고,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박달삼은 대전역을 다시 찾아왔지만 모든 것은 변한 후였다. 연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은 변한 대전이 낯설다. 박달삼과 역전할매는 자신들이 사랑을 나누던 목척교와 대전역을 바라보며 세월과 아쉬움과 추억을 말한다.
 
박달삼: 관두세. 추억만 먹고 살 수 있겄는가?
역전할매: 추억도 못 먹고 살면 무슨 재미로 살어요?
박달삼: 목척교는 아직 있드만.
역전할매: 죽어라도 덮어씌우더니 다시 만듭디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다리한테도 해당사항 있는 줄 그거 보고 알았슈.

(중략)

박달삼: 기차는 한 번 놓치면 끝이여. 뛰어가도 다시 잡을 수가 없어. 떠나면 뒤도 안 돌아봐. 그냥 앞만 보고 달리니까.
역전할매: 세월하고 같네. 맨날 뒤꽁무니 쳐다보는 건 남은 사람 몫이여.
박달삼: 기차나 그렇지.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노래한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역전할매: 떠나는 것이 언제는 따박따박 인사 허고 가남?
 - 연극 <이별의 말도 없이> 중에서 -

 

이별의 말도 없이

<대전 부르스> 노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대전역은 왠지 이별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이별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나는 누군가의 비장한 뒷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대전역은 만남의 공간이며 돌아옴의 공간이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대전역 시계탑'은 약속의 상징이었고, 여름날의 광장은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 직전까지의 술자리를 제공했다. 한때는 일부러 입장권을 구입해서 플랫폼에 들어가 가락국수만 먹고 나올 정도로 '대전역 가락국수'에 푹 빠져 있기도 했다.

대전역은 나에게 나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포근한 나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대전에 처음 이사 온 1977년 3월부터 42년 간 대전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대전에는 177개의 동이 있는데 그중 19개의 동은 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10분의 1이 넘는 동이 과거와 현재의 공간이란 것이다. 이사를 자주 다닌 이유로 신흥동, 태평동, 유천동, 중촌동, 옥계동, 갈마동, 판암동은 동네 골목골목을 알고 있다. 초등학교를 다녔던 신흥동, 중학교가 있던 소제동, 고등학교가 있던 복수동, 대학교가 있던 궁동, 극단의 연습실이 있던 대동, 선화동, 하소동, 어남동, 대흥동, 오빠 가족이 살고 있는 가장동, 동생 가족이 살고 있는 관평동, 단골 술집이 있는 가오동과 용운동.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닐 때에 이별을 말을 남긴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떠난다는 생각보다는 다시 온다는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내 곁을 떠난 숱한 사람들에게도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으리라. 대전역에 갈 때마다 나는, <대전 부르스>를 흥얼거리며 삶의 공식을 확인한다. 모든 이별이 말도 없이 이루어짐을. 이별은 현재 상황이 아니라 나중에야 알게 되는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을.

각설하고! 나는 어딜 가도 대전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대전에서 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심오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대전에 살아서이다. 나도 대전 사는 누군가에게 대전이 좋은 이유이고 싶다.

김인경
극작가. 연극 <염쟁이 유씨>, <해마>, <만두와 깔창>, <꿈에라도 넋이라도>, <다 그렇지는 않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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