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승하더라도 새 역사다. FA컵 역사상 최초로 내셔널리그(3부리그) 팀이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FA컵 우승 DNA를 자부하는 수원 블루윙즈가 마지막에 활짝 웃었다. 올 시즌 K리그 1 상위 스플릿(그룹 A)에 올라가지 못하고 하위권(그룹 B) 팀들과 마지막 두 게임을 남겨놓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축구 수도'라는 수식어를 다시 빛내기 위해 이 대회 우승 트로피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이임생 감독까지 자신의 자리를 내걸고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공언을 지킨 셈이다.

이임생 감독이 이끌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K리그 1)가 10일 오후 2시 10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9 FA(축구협회)컵 결승 2차전에서 대전 코레일(내셔널리그)을 4-0으로 물리치고 대회 통산 다섯 번째 우승 영광을 누리고 2020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본선 티켓을 부상으로 받았다.

복덩이 미드필더 '고승범'

지난 6일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긴 두 팀은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울산 현대, 강원 FC, 상주 상무' 등 자신들보다 상위 리그에 있는 강팀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 무대까지 올라온 대전 코레일 선수들이 탄 열차가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해 더 힘차게 달려나갈 듯 보였다.

하지만 축구 수도를 자랑하는 수많은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함성을 듣고 뛴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의 몸이 가벼웠다. 게임 시작 후 15분만에 짧고 정확한 패스를 연결한 수원 블루윙즈가 멋진 첫 골을 뽑아내며 우승 가능성을 끌어올린 것이다. 

왼쪽 측면에서 '타카트-박형진-고승범'으로 이어진 흐름이 매끄러웠고 고승범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낮게 깔려 대전 코레일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래도 1골만으로는 수원이 안심할 수 없었다. 만약에 실점하여 1-1로 게임이 끝난다면 두 게임 합산 점수로는 같지만 어웨이 골 우대 규정에 따라 대전 코레일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후반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원이 우려했던 일이 정말로 벌어지는 듯했다. 54분에 대전 코레일이 프리킥 세트 피스로 골을 넣었다. 수비수 여인혁의 헤더가 수원 블루윙즈 골문 안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 골 직전에 제1부심의 깃발이 높이 올라갔다. 여인혁은 온 사이드 포지션이었지만 바로 앞 프리킥을 먼저 받은 선수가 간발의 차이로 오프 사이드 포지션이었다. 박병진 주심은 VAR(비디오 판독 심판) 룸의 조언을 무선으로 확인한 뒤 부심의 오프 사이드 원심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휘슬을 길게 울렸다.

이 아찔한 순간을 넘긴 수원 블루윙즈는 68분에 귀중한 추가골을 터뜨렸다. 이번에도 고승범이었다. 2016년 수원 유니폼을 입고 K리그 1 무대를 밟은 그가 2018년 대구 FC로 가서 8게임 출장 기록을 남긴 뒤 다시 돌아온 곳은 친정 팀 수원 블루윙즈였고 그 보람을 이 결승전에서 가장 짜릿하게 느낀 셈이다. 고승범의 왼발 중거리슛이 크로스바 하단에 맞고 골 라인 바로 안쪽에 떨어졌다. 득점을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해 김민우가 달려들어가 왼발 밀어넣기까지 성공시켰으니 수원 블루윙즈의 다섯 번째 우승 트로피가 눈앞에 들어온 것이다.

염기훈의 득점왕 쐐기골까지

고승범이 활짝 열어준 우승길을 이어받은 복덩이는 전세진이었다. 지난 6월 우리 축구팬들을 오랜만에 활짝 웃게 만들었던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이기도 했기에 전세진의 자신감은 형들 앞에서 더 반짝반짝 빛났다. 

78분에 김민우의 왼발 중거리슛이 쐐기골로 연결되기까지 전세진이 대전 코레일 수비수들을 충분히 흔들어준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해낸 것이다. 전세진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맏형 염기훈에게 득점왕 트로피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85분에 결정적인 마무리 골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왔지만 더 좋은 위치로 빠져들어간 염기훈에게 양보하는 패스를 밀어준 것이다. 염기훈은 이 도움을 받아 180도 회전 기술을 자랑하며 오른발 방향 바꾸기 쐐기골을 굴려넣었다. 

이 마지막 골 덕분에 염기훈은 공동 득점 1위에서 한 발짝 위로 올라서서 단독 득점왕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됐다. 그리고 수원 블루윙즈는 2002, 2009, 2010, 2016년에 이어 다섯 번째 우승 트로피를 치켜들어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를 제치고 FA컵 최다 우승 팀 수식어를 당당히 붙이게 됐다.

2019 FA컵 결승 2차전 결과(10일 오후 2시 10분, 수원월드컵경기장)

O 수원 블루윙즈 4-0 대전 코레일 [득점 : 고승범(15분,도움-박형진), 고승범(68분), 김민우(78분,도움-전세진), 염기훈(85분,도움-전세진)]
- 1, 2차전 합산 4-0으로 수원 블루윙즈 우승!

O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
FW : 염기훈, 타가트(73분↔김종우), 김민우
MF : 박형진, 고승범, 안토니스(56분↔전세진), 구대영
DF : 양상민(29분↔이종성), 민상기, 구자룡
GK : 노동건

O 대전 코레일 선수들
FW : 조석재(64분↔곽철호)
AMF : 최동일, 김정주(64분↔이근원), 이관표
DMF : 이경민(89분↔김진수), 김경연
DF : 김태은, 장원석, 여인혁, 강태욱
GK : 임형근

O FA컵 역대 우승, 준우승 기록
2018년 우승 대구 FC / 준우승 울산 현대
2017년 우승 울산 현대 / 준우승 부산 아이파크
2016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 준우승 FC 서울
2015년 우승 FC 서울 / 준우승 인천 유나이티드
2014년 우승 성남 FC / 준우승 FC 서울
2013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 준우승 전북 현대
2012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 준우승 경남 FC
2011년 우승 성남 일화 / 준우승 수원 블루윙즈
2010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 준우승 부산 아이파크
2009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 준우승 성남 일화
2008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 준우승 경남 FC
2007년 우승 전남 드래곤즈 /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2006년 우승 전남 드래곤즈 / 준우승 수원 블루윙즈
2005년 우승 전북 현대 / 준우승 울산 현대 미포조선
2004년 우승 부산 아이콘스 / 준우승 부천 SK
2003년 우승 전북 현대 / 준우승 전남 드래곤즈
2002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2001년 우승 대전 시티즌 /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2000년 우승 전북 현대 / 준우승 성남 일화
1999년 우승 천안 일화 / 준우승 전북 현대
1998년 우승 안양 LG / 준우승 울산 현대
1997년 우승 전남 드래곤즈 / 준우승 천안 일화
1996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 준우승 수원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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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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