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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막 애를 낳고 사회생활에서 격리당한 누군가는 김지영의 처지가, 가난한 대학생의 눈에는 김지영의 고가 맥북이, 취준생의 눈에는 그녀가 다니는 회사의 네임벨류가, 90년대생의 눈에는 이제 아무리 고스펙이어도 그 회사에서 '입구 컷'을 당한다는 서로 다른 불행들이 떠오를 것이다.

각자의 처지가 그렇다는데, 거기까지는 그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데 무얼 어쩌겠는가. 우리 모두가,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계급, 젠더, 학벌, 지방, 지역감정 등등의 무수한 이유로 불행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 중 상당수도 그 일부에 속해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92년생이라 82년생의 슬픔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강산도 모르는데 어찌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헤아릴까. 다만 살면서 목도하는 여러 장면과 누군가의 증언과 책과 영화 등의 간접경험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당신은 그 이유로 힘드셨군요. 이제서야 본인의 힘듦을 이야기할 차례가 오셨군요. 당신 차례니까 당신이 충분히 이야기하시죠, 하며 딱 반걸음쯤 뒤로 물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있을 수 있구나) 하고 알아주면 되는 일이다. 듣는 입장에서는 듣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제일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굳이 훈수나 논평에 나설 필요보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막 철회된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 장종화씨의 논평이 갖는 가장 문제점은 그가 정치인이라는 점에 있다. 정치는, 그것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는 불행에 등급을 가려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이 '불행 올림픽'을 끝내 보고자 고민하는 것이지, '너의 불행을 나의 더 큰 불행으로 그 입을 막아버리겠다'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라면 그것을 바꾸려 해야지, 오히려 정치가 물고 물리는 불행의 악순환을 강화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이 논평에서는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가 결여돼 있던 것이다. '청년'을 내세운다고 정치인이 정치인이 아닌 게 아니다. 공당 소속의 정치인이라면, 할 말보다 듣는 말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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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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