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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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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임(24세)은 가정이 가난하여 부모의 뜻을 따라 1938년 3월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121번지 서만규의 중개로 중지 난징 소재 황군 위안소의 창기가 되었다. (그는) 1939년 8월 중순 귀선한 자로, 8월 28일 서만규의 집에서 '제1선의 창기는 군인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어서 참으로 위험하다. 금후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황군 위안소의 창기로는 되지 않는다'라고 군사 관련한 '유언'(출처를 알 수 없는 떠도는 말)을 만들고 있는 것을 관할 종로경찰서가 탐지하여 조사하였다."

일제강점기 위안소에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이 위안소의 참상을 경험한 뒤 조선으로 돌아와 피해 사실을 말했으나 되레 '조언비어(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받은 사례가 확인됐다.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공권력 이용해 숨기려던 일제

이는 1939년 9월 13일 경기도 경찰부장이 경무국장과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앞으로 보낸 경고비(京高秘, 비밀 보고서) 제2303호에 담긴 내용이다. 즉 일제 경찰이 생산해 검찰에 보낸 문서로, 위안부 연구자들이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해낸 것이다. 해당 문건은 계속해서 신순임의 기막힌 사연을 적고 있다.    
    
"그는 창기 취업 중 하루 70명의 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관계상 신체에 무리가 생겨 식욕 감퇴하고, 복통·요통이 있고, 신체 쇠약하여 병으로 누워 있는 것이 여러 차례이므로 올해 8월 중순에 간신히 전차금을 완제하고 귀선한 것이 판명됐다. 재차 위안소에 팔릴 것을 염려하여 소개업자 서만규의 집에 와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위안소에서 겪었던 가혹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다시 자신을 군 위안소로 팔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피해자에게 일제는 어떻게 했을까. 일제는 그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서 '구류 7일'에 처하는 처분을 내렸다. 앞서 문서에 따르면, "동정할 점이 있어" 종로서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정의 지시를 받아 경찰범처벌규칙 제1조 제21호 위반으로 구류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에 처했다는 것이다. 

해당 규칙은 1912년에 공포된 것으로, "사람을 속일 만한 유언부설 또는 허보를 하는 자"에 대해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했다. 같은 죄목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또 다른 기록(판결문)이 존재한다. 

1942년 3월 산본재덕(창씨를 한 조선인으로 추정)은 "현재 헌병대가 싱가포르 방면행 대좌부(위안소업) 영업자를 모집 중인데 이미 제1회분은 출발했고, 제2, 제3, 제4회 정도까지는 헌병대에서 허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같은 해 5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벌금 500엔을 선고받았다. 당시 일본인 철강업 노동자 평균 급료가 월 143엔(조선인 급여는 일본인의 60%)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피고인이 꽤 과한 벌금형에 처해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조선총독부 자료를 통해 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2019)에 따르면, 1942년에 조선군사령부로부터 의뢰 및 허가를 받고 같은 해 7월 10일 제4차 위안단으로 부산을 출항한 703명의 위안소 업자와 조선인 여성(위안부 피동원자)들이 있었으므로, 산본재덕의 말은 거짓이 아닌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는 1944년 미얀마에서 연합군 포로가 된 위안소업자 기타무라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연합군이 획득한 정보로 확인된다. 

이러한 공문서들은 일제가 식민지 여성들을 군 위안부로 동원했던 사실과 여성들의 모집·동원·관리의 주체가 일본군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런 사실을 '동시대'에도 공권력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했음을 드러낸다. 관련 연구자들은 당시 국제적으로 공창제가 폐지되고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흐름을 거스르며 일본이 위안소를 설치한 것에 대해 외국의 비판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라 보고 있다.

"'공인'과 '은폐'의 이중잣대"
 
 방학을 맞이한 중고등학생들을 비롯한 시민 등 약 1천여명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4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며 피해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2016년 8월 "제124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며 피해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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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임의 경우, 위험한 점령지에서 하루에 70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해서 병에 자주 걸리는 등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을 받아야 했다고 구술하면 일본 우익은 그것을 '거짓말'이라며 신빙성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일제 경찰이 작성한 해당 공문서를 통해 할머니들의 구술 내용이 사실임이 드러난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연구(Ⅰ)>(2015)에 따르면 신순임이 처음부터 군 위안부가 되는 것을 알았는지는 위 경찰 문서를 통해선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신순임이 간 군 위안소가 어떤 유형(군 직영 혹은 군 위탁)의 위안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차금을 반환하면 귀환할 수 있었던 매우 드문 사례였다는 것도 나타나 있다. 대부분 전차금을 주지 않는 취업사기의 경우가 많았고, 전차금을 받게 되면 고리의 이자를 씌워 피해자가 위안소업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악용됐기 때문이다. 

또한 위 문서는 강제연행이나 취업사기가 아니라 신순임이 부모의 뜻에 따라 위안부가 됐다고 밝힌다. 아베 코오기 메이지학원대학 국제학부 교수의 '노예제' 정의에 따르면, 노예제란, 지위 또는 상태이며, 사람이 어떤 방법·수단·목적으로 그러한 지위 또는 상태에 이르렀는가라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아베 코오기 교수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이동해서 온 사람이라도 노예제의 요건을 충족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면 노예가 된다. 즉 신순임이 부모의 뜻에 따라 소개업자의 중개로 일본군 위안소에 갔다고 해도 그곳에서의 처절한 경험은 노예의 조건을 총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위안소 제도가 당시 일본 내 합법이었던 '공창제'(성매매를 국가가 합법 또는 묵인하고, 여성의 등록 및 성병 검진 제도를 통해 법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흔하다. 공창제 하에서 성매매와 위안소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나 군에 '등록'(취·폐업 신고)하지 않고 성매매를 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이 경우 경찰, 더 나아가 국가가 성을 사고 판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고, 공창제는 국가가 곧 포주인 비인간적이고, 반여성적이며, 반인권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는 "성매매는 국가의 직접 수익산업"이라고 비판했다.    

박정애 박사는 위 발제문에서 "전시체제기 조선에선 일본의 공권력에 의해 동원된 조선인 여성은 병사에 대한 '성적 위안'을 강요 당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가이 카즈 교토대 교수를 인용해 "한편에서 위안부의 모집과 도항을 용인하면서, 군, 즉 국가와 위안소의 관계 은폐를 업자에게 의무화시켰다. (중략) 공인과 은폐의 이중 잣대가 경보국의 방침이며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다"면서 "1938년 이후 일본군의 관여하에 위안소를 개설할 것을 확정하되, '위안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한 것을 입에 담는 것을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방침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문헌] 
강정숙, <일본군 위안소 업자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연구>, 여성연구 96권, 2018
박정애, <조선총독부 자료를 통해 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동북아역사재단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 심포지엄 자료집, 2019.9.4.
이인선·황정임·김동식·강정숙·조윤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연구(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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