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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이 난다. 40년 전 10월 26일 '그 사건'이 있고 다음날 신문 1면에 굵은 활자로 박혀있던 '박정희' 세 글자와 당시 내 나이로는 이해할 듯 말 듯했던 이어진 '유고'라는 단어. 하루 종일 공기가 술렁였고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이제 사태의 전모는 대부분 밝혀졌지만 박정희를 둘러싼 평가는 점점 더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지난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40주년 맞아 대대적인 추모행사가 열렸다.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상황이다 보니 40주년 추모행사는 정치색을 더 뚜렷하게 드러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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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현충원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둘째 딸 박근령씨를 비롯해 '보수'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행사의 압권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발언일 듯하다.

김 전 지사는 "위대한 혁명가시여,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습니다. 당신의 업적,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게는 (그리고 아마도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들여다 본 사람에게는) '독재자'인 그를 '혁명가'로 치켜세우는 상황이 어쩐지 블랙코미디로 느껴져 헛웃음이 난다. 나는 구약성서의 다윗을 떠올렸다.

다윗의 성범죄

지금 이스라엘이 다윗을 떠받들 듯, 몇천 년이 지나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이 그만큼 존속한다는 가정아래) 박정희를 그렇게 떠받들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다윗과 박정희에겐 모두 '그때 그 사람(들)'이 있었다는 새삼스런 사태 파악이었다고나 할까.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왕이 사울이었지만, 다윗 왕은 단적으로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조상으로 연결 지어질 만큼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기록에 따르면 다윗은 하나님에게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왕이다. 구약성서의 대표적 스캔들인 '밧세바 사건'이 없었다면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완전무결한 왕으로 남았을 것이다.

흔히 이 사건은 '간음'으로 표기되지만, 이러한 표기는 사건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라고 봐야 한다. 정확하게는 다윗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다.

단순 성폭행이 아니라 군주의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였으며, 나아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다윗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했다. 현대의 관점으로 단순화하면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사건을 덮으려고 하다 여의치 않자 남편을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극혐의 범죄사건이다.

한국 주류 기독교에서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엽기적이다. 무엇보다 범죄 자체는 잊히고 다윗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로 재설정된다. 밧세바는 위대한 군주 다윗에게 믿음의 걸림돌일 따름이었다. 밧세바 개인으로서는 왕비가 되는 영화를 누렸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왕좌에 올려 여한이 없는 삶을 산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밧세바의 심정과 의지는 한 번도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러한 영화를 누리기 위해 다윗 왕을 유혹하고 남편을 죽이는 일에도 관여한 혹은 묵인한 인물로 묘사된다.

밧세바의 심경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최초의 사건이 성폭행이었으며, 밧세바에게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윗의 성폭행 및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살인교사 사건은 밧세바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났으며, 단지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 밧세바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선택지들 앞에서 그가 어렵사리 삶의 행로를 이어갔으리라고 짐작하게 된다.

다윗에게서 강간을 당한 밧세바가 자결하는 게 명예로운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철저하게 가부장제의 관점을 반영한다. 자기결정권이 부인된 밧세바에게 오직 그 방향으로만 선택권이 인정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박정희와 '그때 그 사람(들)'

다윗에게 밧세바가 있었다면 박정희에게는 '그때 그 사람(들)'이 있었다. 다윗이 저지른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때 그 사람(들)'의 박정희가 범죄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박정희의 안가 술자리에 동원된 사람들을 일컫는다. 박정희에게 '그때 그 사람(들)'을 공급하기 위해 채홍사가 존재했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때 그 사람(들)'을 운영하는 데 권력이 어느 수준으로 동원됐는지, 박정희의 책임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박정희가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소극적) 수혜 혹은 (적극적) 착취의 주체 이상의 책임이 있으며 '그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이 대체로 무시됐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한 것처럼 '그때 그 사람(들)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데에 국가권력이 동원됐음 또한 자명하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남용을 묵인한 것만으로도 박정희는 파렴치범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박정희가 40년 전에 살해됐기에 현실적으로 이 문제의 규명은 어렵다. 주지하듯 그는 이미 망자다. 박정희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그때 그 사람'은 흘러간 유행가로 간접적으로 회자될 뿐이다.

아버지의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과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대통령 재직 중에 그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었는데, 영어의 몸인 지금에서 다시 그 문제를 거론할 까닭이 있을까.

그러나 김문수 전 지사의 '위대한 혁명가'론을 접하며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불가피한 면책 또한 재검토가 진행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항상 공과를 같이한다. 이스라엘이 위대한 왕 다윗의 위대함과 스캔들을 함께 기록했듯 "위대한 혁명가"의 위대함과 함께 스캔들 또한 석명돼야 한다.

구해낼 것은 '따님'이 아니다

김 전 지사가 원한 건 박정희의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박정희의 '정치적 소환'일 것이기에 위대함은 위대함이라기보다는 구호에 그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불러낸 푸닥거리 용도의 위대함과 달리 '그때 그 사람(들)'은 막상 실제 사건이며 그 사건으로 인한 고통 또한 실재했고 아마 실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서에서 발언권을 빼앗긴 밧세바처럼 역사에서 침묵하고 있다. 그 침묵은 원(願)한 침묵이라기보다는 수 천 년 작동된 체계(體系)에서 강요된 침묵이다.

망자에겐 어느 정도 망각될 특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만일 '혁명가'의 위대함을 떠벌이고 싶다면 그때 그 사건에 대한 규명도 이뤄지는 게 순리가 아닐까.

구해낼 것은 그의 따님이 아니라 '그때 그 사람(들)'이다. 우리에겐 그들의 고통과 침묵에 대해서 숙고할 책임이 있다. 밧세바를 비(非)주체로 다룬 구약성서와 달리 이제 우리 시대는 가부장제의 폭력 아래서 비(非)주체로 밀려난 '밧세바(들)'를 주체로 호명하고 기억할 과제를 떠안아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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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