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포스터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포스터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우화'는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풍자와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지칭한다. 우화는 대개 날카롭고 무거운 사회적인 이야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효과를 지닌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고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을 통해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된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역시 대표적인 '우화'다. 귀여운 곰 캐릭터를 통해 신나는 리듬감을 보여주면서도 무거운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자티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산 속 곰 세계의 왕 비엘리가 납치당한 아들 곰 토니오를 찾기 위해 인간 마을로 내려오는 액자 속 이야기와 알메리나와 제데오네, 두 만담꾼이 추운 겨울 날 동굴에 들어갔다 만난 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선을 끄는 액자식 구성이다. 비엘리는 토니오와 함께 강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던 중 사냥에 심취한 나머지 아들이 인간들에게 납치된 걸 알지 못한다.

뒤늦게 아들을 잃어버렸음을 안 곰들의 왕은 실의에 빠져 식음을 전폐한다. 문제는 다른 곰들이다. 왕이 사냥에 나서지 않으니 겨울잠을 자야 될 때가 되었지만 배를 채우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린다. 이에 현명한 노인 곰 테오필은 인간들 중 좋은 인간도 있다며 그들에게 식량을 달라고 하자는 제안을 한다. 혹 인간들의 마을에 토니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비엘리는 1만 마리의 곰을 이끌고 시칠리아의 성을 향한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성주 살페터는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곰들의 침략을 경고한 마술사 바본의 충고에 군대를 이끌고 나가 그들을 공격한다.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작품은 인간과 곰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무거운 소재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과정은 유쾌하고 흥겹다. 적의 공격에 당황하며 우왕좌왕 거리다가도 승리를 쟁취한 후에는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곰들의 모습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이런 유쾌한 이야기 구성의 비결은 액자식 구성에 있다 할 수 있다. 만담꾼인 알메리나와 제데오네가 구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구전 특유의 전개라 할 수 있는 과장과 생략,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효과 등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여기에 말하는 곰, 마법사, 요괴, 유령 등 전기적인 요소 역시 설화나 민담이 전승되는 구전을 통한 이야기 구성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구성을 이룬다.

여기에 외화는 서스펜스를 유발해내며 묘한 긴장감을 통해 흡인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두 만담꾼이 곰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곰이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순간 곰이 그들을 공격하거나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준다. 귀여운 곰들의 모습과 화려한 색감의 이면에 숨은 이런 서스펜스의 요소는 집중력 있게 극을 이끌어 가는 측면을 보여준다.

이런 구성이란 줄기에 핵심적인 주제를 이루는 뿌리는 우화의 성격이라 볼 수 있다. 작품은 곰과 인간을 통해 편견을 이야기한다. 비엘리는 곰은 다 똑똑하고 영리하며 정직하다 생각한다. 인간과 어울려 지내며 이들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지니지 않은 아들 토니오와 달리 곰이 더 영리하고 인간이 아둔했던 시대를 살아온 그는 타락도, 악독함도, 남을 속이는 간사함도 곰이 아닌 인간만의 것이라고 본다.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스틸컷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스틸컷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이런 비엘리의 생각은 토니오와 충돌을 겪는다. 토니오는 곰도 인간도 모두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곰 중에 착한 곰이 있듯 인간 중에도 착한 인간이 있고 인간 중에 나쁜 인간이 있듯 곰 중에도 나쁜 곰이 있다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하지만 한 무리를 이끄는 리더인 비엘리는 자신의 무리만을 믿고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불신한다. 이런 비엘리의 모습은 사회가 지닌 차별과 편견을 의미한다. 

차별과 편견은 사회란 공간에서 비롯된다. 곰들이 산에서만 살았을 때 그들의 사회는 단순했다. 먹고 쉬고 생존하는 게 인생의 전부였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사회를 접했을 때 그 안에 계층이 있고 유희와 향락이 있으며 재화의 희소성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올라서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하고 이 과정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대상은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된다. 이 작품은 곰과 인간의 전쟁을 통해 이 과정을 유머러스하지만 신중하게 담아낸다.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은 전기적인 요소와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유머, 우화에 담아낸 편견이란 주제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아기기린 자라파>, <붉은 거북> 등을 제작한 프리마 리니어 프로덕션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사회의 한 단면을 그려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시칠리아, 곰들의 침략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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