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평점-댓글 테러'가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공포로 자리잡았다. 창작물을 평가하는 것은 소비자의 엄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군중심리를 자극해 특정 대상을 아예 집단적으로 공격하려는 의도로 악용되기도 한다.

온라인 문화가 발달하던 초창기 시점부터 평점-댓글 문화는 존재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일비재한 현상이다. 다만 최근 완성된 창작물이 제대로 공개되기도 전에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개봉한 <나랏말싸미>가 대표적이다. 세종대왕의 업적 가운데 하나인 한글 창제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신미 스님과 불교의 조력설을 제시했다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여 개봉 전부터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극적 상상력이라는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영화는 결국 악평 속에 흥행에도 실패했다.

평점-댓글 테러를 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흥행에 성공한 <명량>이나 <군함도> <인천상륙작전> <봉오동 전투>와 같은 작품들도 '국뽕'이나 '반공', '반일' 같은 대중 정서에 기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여성 경찰의 활극을 다룬 <걸캅스>는 남성 캐릭터들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남성 관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불한당>은 감독의 SNS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며 뭇매를 맞았다. 역사 문제에서부터 젠더 갈등, 혹은 특정 출연자나 제작진에 대한 선호도 등도 평점 테러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은 단연 < 82년생 김지영 >이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이미 영화화가 결정된 순간부터 안티 팬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됐다. 이들은 포털사이트 영화 코너에 몰려가 낮은 점수를 주는가 하면, 출연 배우들과 관련된 기사나 SNS에 수없이 악성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반발한 다른 누리꾼들이 평점-댓글 테러에 맞서 역으로 높은 평점을 주기도 했다. 졸지에 영화 한 편이 젠더 갈등의 최전선에 놓인 형국이 됐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 (주)봄바람영화사

 
정작 문제는 이 작품이 아직 개봉(10월 23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아직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반으로 갈려서, 그 메세지와 완성도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평점이나 댓글을 통한 비판이 무조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또한 평점-댓글 테러를 당했다고해서 모두가 '억울한 희생양'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평점 테러를 받은 일부 작품들은 메시지나 상상력의 문제를 넘어서 기본적으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다수 관객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랏말싸미>는 실제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세종대왕을 신하들에게 시달리는 유약한 군주로 묘사하고, 일개 승려가 왕을 면전에서 능멸하는 묘사로 비판받았다. 이는 상상력을 넘어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역사 고증에 대한 공감대의 문제였다. 또한 <군함도>는 역사 왜곡 논란에 작품 외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까지 겹쳤다.

< 82년생 김지영 >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뜨거운 화두인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일각의 불편한 시선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이미 원작 소설이 있는 상황이다 보니, 영화의 메시지와 스토리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원작 소설은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화두를 남겼다. 

창작물이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자유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에 악평을 남기고 나쁜 영화로 선동하는 것은,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영역으로 보인다.

어느새 정치에서 사회, 문화, 일상까지 모든 면에서 흑백논리와 극단적 사고가 범람하는 풍토가 됐다. 개인의 다른 판단과 취향에 대한 존중, 공감같은 미덕은 설 자리를 잃고 상대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와 부정만이 남는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창작물 역시 사회 현실을 깊이있게 반영하거나 민감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갈수록 어렵게 된다.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은 물론 좋은 작품일 수도, 나쁜 작품일 수도 있다. 다만 그 판단은 최소한 보고나서 해도 늦지않다. 제대로 된 비판이나 반박도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나서 지적을 해야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 사회가 고작 영화 한 편에 대한 시각 차이도 건강한 담론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답답한 사회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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