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러드 심플> 포스터.

영화 <블러드 심플> 포스터. ⓒ (주)콘텐츠 윙

 
오랜 세월이 흘러 전설을 목도하는 건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코엔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이 35년 만에 17일 국내 개봉됐다.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면서 큰 호응을 얻은 뒤 개봉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블러드 심플>은 국내에선 극장 개봉 대신 비디오로 발매돼 '분노의 저격자'라는 번역 제목으로 불렸다. 이 영화는 코엔 형제를 말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선댄스 영화제' 제1회 심사위원대상작이다. <블러드 심플>은 선댄스 영화제가 추구하는 작가주의 독립영화의 부흥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불륜 사건

미국 텍사스에서 바를 운영하는 마티에게 자신을 사립 탐정이라고 밝힌 남자가 찾아와서는 사진을 건네며 말한다. 마티의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 레이와 마티의 아내 애비가 침대에 함께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고, 그가 말하길 밤새도록 쉬지 않고 뒹굴더란 것이었다. 마티는 나쁜 소식을 전한 사립탐정 비저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술집에 찾아온 레이는 마티에게 오히려 뻔뻔하게 "뭐죠?" "날 치겠소?" 식으로 굴며 비웃으며 2주치 급료를 요구한다. 마티는 너 따위와 얘기를 섞고 싶지 않다며 아내 애비가 그러고 있는 게 자신을 우습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 길로 레이는 해고 당한다. 레이의 숙소에 함께 기거하게 되는 레이와 애비, 마티는 애비를 납치하려다가 실패한다. 

레이와 애비를 용서할 수 없는 마티는 비저에게 1만 달러를 약속하며 레이와 마티 청부살인과 확실한 뒷처리를 맡긴다. 자신은 비저의 제안에 따라 낚시를 떠나고, 비저는 실행에 옮긴다. 다시 만난 그들, 비저는 총으로 쏴서 죽인 그들의 사진을 마티에게 건네고 마티는 비저에게 1만 달러를 건넨다. 그때 비저는 마티를 죽이는 예상치 못한 짓을 저지른다. 레이가 다시 마티를 찾아와서는 죽은 마티와 애비의 총을 보고는 애비가 마티를 죽였다고 판단해 현장을 치운다. 레이가 마티를 데려가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드보일드 고전 오마주

<블러드 심플>은 코엔 형제의 고전,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고전을 향한 오마주의 일환이다. 개인이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의 이야기다. 과거에는 한 개인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의 범인(凡人)은 세상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범인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여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원제 'blood simple'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하드보일드 소설 창시자라 불리는 대실 해밋의 데뷔작 <붉은 수확>에서 따온 단어로 폭력적인 상황에 장기간 몰입한 사람들의 추악하고 두려운 사고방식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애비를 제외한 세 남자의 사고와 행동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대략의 겉모습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는 곧 '그럴 수도 있겠다'로 바뀐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자못 평범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별 것 없을 만한 고전 스타일을 가져와 '코엔 스타일'로 변형 아닌 비틀기와 재해석을 시도한 게 35년 전이니 말이다. 바로 그 비틀기와 재해석에 이 영화를 보는 이유와 방법이 있다. 메이저와 마이너 경계에서 35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코헨 형제의 시작을 살펴보는 건, 현대 영화의 아이콘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 없을 것이다. 

코엔 형제표 범죄 스릴러

영화를 시작하는 내레이션이 눈길을 끈다.

"세상은 불만자로 가득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교황이 잘못하면 미 대통령도 그 어느 것도 잘못될 수 있어. 난 불만을 가진 채로 살 거야.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모두 헛일이야. 러시아 체제는 모두들 서로에 협력하도록 되어 있어. 그건 이론일 뿐이고, 내가 아는 건 텍사스야. 여기선 너는 너야."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이 영화를 관통한다 하겠다. 

불확실성은 현대 사회를 지칭하고 상징하는 대표적 개념이다. 시시각각 어디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현대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불확실성은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개념이었을 터, 35년 전 코엔 형제는 영화를 통해 불확실성의 굴레에 처한 인간을 고찰했다. 코엔 형제는 일면 정형화되어 왔을 불확실성을 확장시키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펼쳐 보인다.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이어질 코엔 형제표 범죄 스릴러의 시작이다. 

<블러드 심플>로 시작된 전설은 코엔 형제뿐만 아니다. 형 조엘 코엔의 실제 부인인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 영화의 주연으로 연극계에서 영화계로 성공적으로 이착륙할 수 있었다. 이후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에서 단역, 조연, 주연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아카데미 2회 수상의 빛나는 업적을 자랑한다. 한편 코엔 형제의 업적은 정리 및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의 촬영 감독과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리 소넨펠드는 이후 코엔 형제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면서 촬영 감독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등으로 촬영 감독으로선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그는 <아담스 패밀리>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해냈고 이후 <맨 인 블랙> 시리즈로 크게 흥행해 유명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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