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폭풍 질주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팀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르며 월드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내셔널스는 10월 16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렸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을 승리, 4전 전승 스윕으로 시리즈를 끝냈다.

경기 초반부터 내셔널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밀어붙였다. 1회부터 일찌감치 7점을 뽑아내면서 승부는 쉽게 갈리는 듯 했다. 경기 후반 야디어 몰리나 등 카디널스 선수들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폴 골드슈미트가 마지막까지 침묵을 지키면서 4점 추격에 그쳤다.

리그 최강 다저스 격침시킨 내셔널스, 가을 좀비도 눌렀다

사실 내셔널리그의 포스트 시즌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류현진의 소속 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시즌 106승으로 내셔널리그에서 압도적인 정규 시즌 성적을 기록했기에, 그 어떤 팀도 다저스를 상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다저스와 내셔널스의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도 5차전 연장 승부까지 진행된 혈투였다.

다저스와 내셔널스의 디비전 시리즈만 해도 5차전 혈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긴 힘들었다. 내셔널스 불펜은 정규 시즌에서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좋지 않았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믿고 내보낼 투수가 극히 적었고, 이 때문에 다저스의 타선에게 밀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내셔널스는 와일드 카드 결정전부터 틀을 깬 투수 운영으로 시리즈를 가져갔다. 불펜이 불안했기 때문에 맥스 슈어저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원투 펀치를 단판 승부에서 모두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작전은 성공하며 와일드 카드 결정전을 승리로 가져갔다.

내셔널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워커 뷸러와 류현진이 등판했던 1차전과 3차전에서 그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다승왕 스트라스버그가 이틀만 쉬고 2차전에 자진 선발 등판, 클레이튼 커쇼와의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불안한 불펜을 대신하여 슈어저가 1이닝 구원 등판한 것은 덤이었다.

4차전에서는 선발 대결에서 다저스를 완벽히 눌렀다. 리치 힐의 무릎 부상이 온전히 낫질 못하여 다저스는 어쩔 수 없이 힐은 오프너로만 활용하고 불펜 이어 던지기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셔널스는 슈어저가 등판하여 다저스 타선을 눌러 버렸다.

스트라스버그가 다시 등판한 5차전에서는 뷸러가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이기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8회에도 등판했던 커쇼에게 2타자 연속 홈런을 날리며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되었고, 내셔널스는 결국 연장전에서 시즌 내내 불안했던 조 켈리를 상대로 그랜드 슬램을 날리며 시리즈를 가져갔다.

정규 시즌 리그 최강이었던 다저스를 꺾으며 자신감을 얻은 내셔널스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많은 월드 챔피언 이력(통산 11회)으로 어떻게든 포스트 시즌만 가면 무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가을 좀비" 별명까지 붙은 카디널스였다.

그러나 기적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내셔널스의 돌풍은 가을의 좀비들도 막지 못했다. 카디널스는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도합 2득점에 그치며 타선이 그야말로 얼어붙었다. 4차전에서 4점을 내며 추격하긴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7전 4선승제에서 리버스 스윕에 성공했던 팀은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뿐이었다(당시 86년 만에 월드 챔피언 등극). 공교롭게도 카디널스는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레드삭스를 상대로 4경기 스윕을 당하며 무기력하게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리는 희생양이 되었는데, 카디널스의 무기력한 스윕패는 그 때의 시리즈 이후 무려 15년 만이었다.

불안한 불펜 최대한 아껴준 내셔널스 선발진

정규 시즌 리그 최악의 불펜을 상대 팀에 오랫동안 노출시켜서 좋을 것이 없었던 내셔널스는 선발투수들이 구원 등판까지 강행하며 불펜의 역할을 최소화했다. 베테랑 어니발 산체스를 제외하고 슈어저와 스트라스버그 그리고 패트릭 코빈까지 3명의 선발투수가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1번 이상은 구원 등판했다.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다승왕 스트라스버그였다. 와일드 카드 결정전 3이닝 구원 등판으로 시작하여 선발로 등판했던 3경기에서는 6이닝, 6이닝, 7이닝을 던졌다. 연장전이라 승패를 가리지 못했던 NLDS 5차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2번의 선발승과 1번의 구원승을 챙겼으며, 스트라스버그가 등판했던 4경기에서 내셔널스는 모두 승리했다.

사이 영 상 3회 수상에 빛나는 슈어저는 스트라스버그 다음으로 많은 20이닝을 던졌다. 와일드 카드 결정전 선발 5이닝, NLDS 2차전 구원 1이닝, 4차전 7이닝 그리고 NLCS 2차전에서 7이닝 1피안타 11탈삼진의 역투를 펼쳤다. 슈어저는 NLDS와 NLCS에서 각각 1번 씩의 선발승을 챙겼고, 슈어저가 등판했던 4경기 역시 내셔널스는 모두 승리했다.

왼손 선발투수 코빈도 선발로 등판했을 때에 한해서는 제 역할을 다했다. NLDS 1차전에서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며 6이닝 1자책 패전을 당하긴 했지만 훌륭한 투구였다. NLCS 4차전에서는 5이닝 4실점하기는 했지만, 카디널스가 뒤늦게 추격 발동이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조기 강판을 당하지 않고 선발투수로서의 역할은 충실했다.

다만 코빈은 시리즈 중간에 3번 구원 등판했는데, 이 구원 등판에서 체면을 구겼다. 류현진이 선발로 등판했던 NLDS 3차전에서 경기 중반에 등판했으나 0.2이닝 6실점의 대참사를 당한 것이다. NLDS 5차전과 NLCS 2차전에서는 도합 1.2이닝 무실점으로 괜찮았다.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이 7.88이지만 NLDS 3차전 1경기를 뺀다면 코빈의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은 3.55였다.

노 히터 게임 이력의 베테랑 선발투수 어니발 산체스도 제 역할을 했다. NLDS 3차전에서 류현진과 맞대결했을 때 5이닝 1실점으로 승패 없이 내려갔다가 코빈이 역전패를 당한 것이 아쉬웠다. NLCS 1차전에서는 7.2이닝 1피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도합 2경기 평균 자책점 0.71로 훌륭했다.

정규 시즌에선 믿을 수 없었던 불펜도 포스트 시즌에서는 그렇게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다. 선발투수들이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 준 덕분에 필승조였던 대니얼 허드슨(6경기 5.2이닝 1승 무패 4세이브 무실점)과 션 두리틀(6경기 7.1이닝 3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2.45)이 대부분 등판했고, 나머지 구원투수 4명이 도합 9이닝만 던지면서 약점 노출을 최소화했다.

PS 초반 부진 극복한 켄드릭, NLCS MVP 선정

타선에서는 앤서니 렌돈이 포스트 시즌 도합 32타수 12안타(1홈런) 8볼넷 7타점 8득점으로 펄펄 날고 있다(0.375). 내셔널스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옮길 때부터 함께했던 베테랑 라이언 짐머맨도 31타수 9안타(1홈런) 5타점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역할을 해내고 있다(0.290).

트레이 터너는 42타수 12안타(1홈런) 3볼넷 3타점 6득점, 후안 소토는 38타수 9안타(2홈런) 4볼넷 7타점 6득점으로 팀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리고 있다. 다만 소토는 포스트 시즌 도합 13삼진이 옥에 티로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반전을 이뤄낸 선수는 하위 켄드릭이다. 다저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수비 실책을 노출하는 등 하마터면 X맨이 될 뻔했던 켄드릭이었다. NLDS 4차전까지만 해도 켄드릭의 포스트 시즌 타격은 18타수 5안타였지만 1타점 1득점에 그치고 있었을 정도로 결정적인 순간에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켄드릭은 다저스와의 NLDS 5차전에서 연장전에 켈리를 상대로 그랜드 슬램을 작렬, 그 동안 자신의 실수로 위기에 빠졌던 팀을 구해내는 속죄포를 날렸다. 켄드릭의 이 한 방으로 내셔널스는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처음으로 NLCS에 올랐다.

자신감을 되찾은 켄드릭은 NLCS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 몫을 해냈다. 1차전에서 1타점을 추가했고, 3차전에서의 4타수 3안타는 모두 2루타였다. 3차전에서의 2루타 3개를 통하여 3타점을 쓸어담은 켄드릭은 이번 NLCS에서 15타수 5안타(4장타) 4타점의 활약으로 타율 0.333에 OPS 1.012를 기록, 가을 초반 부진을 딛고 NLCS MVP에 선정됐다.

기다리는 내셔널스, 월드 시리즈 1차전 장소는 미정

이번 포스트 시즌 일정은 와일드 카드 결정전부터 내셔널리그가 하루 먼저 시작했다. 따라서 NLCS 4차전이 진행되었던 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ALCS)는 3차전까지 진행된 상태다. 그런데 내셔널스의 스윕으로 NLCS는 너무 일찍 끝나 버렸다.

7전 4선승제 시리즈를 여유 있게 스윕으로 끝내면서 내셔널스는 월드 시리즈 1차전이 예정된 10월 23일까지 무려 1주의 긴 휴식시간이 생겼다. 선발투수 4명이 각각 1번 씩만 선발로 등판하게 되면서 그 동안 많은 이닝을 책임졌던 선발투수들이 1주 동안 길게 쉴 수 있다는 점에서 내셔널스는 체력적 우위를 갖게 됐다.

투수들은 지친 어깨를 쉬어줄 수 있지만, 타자들에게는 감각 유지가 힘들어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2007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이었던 콜로라도 로키스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4연승으로 스윕한 뒤 너무 오래 쉬었다가 월드 시리즈에서 레드삭스에게 4연패 스윕을 당한 사례도 있다.

대신 내셔널스는 슈어저와 스트라스버그 원투 펀치를 월드 시리즈 1차전부터 내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이 유리해진 상태다. 슈어저와 스트라스버그가 각각 1,5차전과 2,6차전을 책임지고 만일의 경우 7차전에 슈어저가 구원 등판하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내셔널스에게는 월드 시리즈 홈 어드밴티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내셔널스는 디비전 챔피언이 아닌 와일드 카드 자격으로 포스트 시즌에 올랐기 때문에 이번 NLCS에서도 카디널스(91승 71패)보다 정규 시즌 승률이 높았음에도 불구(93승 69패)하고 홈 어드밴티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물며 월드 시리즈 상대가 될 팀은 디비전 챔피언 여부와 관계 없이 승률에서 앞서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107승 55패) 또는 뉴욕 양키스(103승 59패)다. 때문에 내셔널스는 1주의 휴식을 취하다가 ALCS가 끝나고 휴스턴이나 뉴욕으로 이동하면 된다.

일정에 있어서 내셔널스에게 유리해질 수도 있는 요소가 하나 더 생겼다. ALCS 4차전이 예정된 17일 뉴욕에 비 예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17일 뉴욕에 비가 내려 경기가 열리지 못하면 ALCS는 4차전과 5차전이 하루씩 늦춰진다. 그리고 5차전과 6차전 사이의 이동일이 없어진 채 원래 일정대로 6차전과 7차전을 치르게 된다.

뉴욕에 비가 내릴 경우 애스트로스나 양키스에도 선발 등판 순서가 변경될 수 있는 변수가 생긴다. 양키스는 1차전 승리투수였던 다나카 마사히로가 4일을 쉬고 연기되는 4차전에 등판할 수 있으며, 만일의 경우 7차전에 구원 등판할 수도 있다.

애스트로스 역시 2차전 승리투수 벌랜더가 4일 휴식 후 5차전에 등판할 수 있다. 벌랜더나 게릿 콜에 비해 임팩트가 약했던 1차전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에게 좀 더 휴식을 주며 6차전으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콜은 예정대로 7차전에 등판하면 된다.

다만 ALCS 4차전이 비로 연기되어 일정이 하루씩 밀리면 애스트로스와 양키스는 중간 휴식 없이 5차전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휴스턴까지 새벽에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객관적인 전력 차와 별개로 월드 시리즈에서는 상대하게 될 두 팀의 체력 문제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재 시리즈 전적 애스트로스가 2승 1패로 앞서있는 가운데 향후 포스트 시즌의 향방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MLB 메이저리그야구 포스트시즌 워싱턴내셔널스 내셔널리그챔피언십시리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