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그네스 조이> 스틸컷

영화 <아그네스 조이>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접해보지 않은 나라의 영화를 최초로 본다는 기쁨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아이슬란드 영화 <아그네스 조이>로 신선함을 더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조이네 가족'에게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필리핀계로 나오는 아그네스의 외모는 아이슬란드인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난다. 국내에는 아이슬란드 영화를 극장에서 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생소한 언어와 풍광이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도 위기는 있다

아이슬란드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전원 풍경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진행돼 당혹스럽기도 하다. 제목과는 다르게 영화의 주인공은 엄마 '란베이그'다. 그녀는 최근 중년의 위기가 관통하고 있는 중이다. 여러 관계에 지치고 자신감도 떨어지는 신체 변화에 괴롭다.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 것 같지만 모두가 시답잖게 보는 것 같아 우울하다.
   
가족의 위기는 서로 다르다. 엄마 란베이그는 성(性) 적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 괴롭고, 딸 아그네스도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은 답답함을 느낀다. 한 지붕 아래 각기 다른 불만은 옆집에 이사 온 유명 배우 한 사람으로 고조되기 시작한다.

그는 분명 매력적이다. 배우의 아우라는 그가 맡은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배우는 최근 이혼하고 이곳에 내려왔다. 짐을 찾으러 간 예전 집에서 냉랭한 분위기의 아내가 맞이하고, 잠깐 머물고 있는 친구 집에서는 문전박대 당하기도 한다.

엄마는 갱년기 딸은 사춘기
 
 영화 <아그네스 조이> 스틸컷

영화 <아그네스 조이>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아그네스는 아이슬란드에 입양되었다. 엄마는 열아홉 아그네스와 잦은 말다툼이 커진다. 공부도 하기 싫고, 이 시골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아직 부모의 품을 떠날 수 없는 미완의 상태. 마침 옆집에 이사 온 아저씨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옆집 아저씨는 그냥 아저씨가 아니다. TV 드라마에 출연해 알려진 유명 배우다. 나이 차이가 대수랴? 사랑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엄마도 요새 힘들다. 남편과는 소원해진지 오래다. 남편은 착하지만 자신을 매력적인 대상으로 봐주지 않아 불만이다. 하나뿐인 딸은 말을 안 들어도 너무 안 듣는다. 아그네스를 돌보는데 청춘을 바쳤지만 아직도 걱정이다.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늘 아그네스 걱정뿐이다.

회사에서는 임금 싼 외국인 노동자를 쓰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점점 늙어가는 어머니도 돌봐야 한다. 제일 서러운 건 나이가 들어 예전만 하지 못한 자신이다. 남편은 넷플릭스에 빠져 자기를 거들떠도 안 본다. 잦은 짜증이 나긴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고 변화도 주고 싶다. 그래서 좀 과하다 싶은 립스틱도 직원 추천에 구매하고, 브라질리언 왁싱도 열심히 한다. 그 생각은 옆집 남자로 인해 점점 커진다. 결혼 생활의 회의를 이성에게 쏟아내고 싶어진다. 이 엄마와 딸, 이대로 괜찮을까?

기쁘지 아니한 가(家)
 
 영화 <아그네스 조이> 스틸컷

영화 <아그네스 조이>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이 모든 사단에는 옆집 남자가 화근이다. 딸과 엄마가 한 남자로 소원해진다. 자세한 내막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란베이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정과 회사의 리더가 되었다. 졸지에 회사 경영이란 큰 짐을 떠안았다. 가족도 자기 손바닥 안에서 주무르지 못하면 안 되는 성격이 되어 버린 거다. 가정도 기업 경영처럼 해야 직성이 풀렸던 거다. 때문에 딸과 남편은 점점 숨통이 조여오고, 급기야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아그네스 조이>는 실리아 힉스도티르 감독의 연출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로 상영되었다. 북유럽 중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없는 아이슬란드 영화의 가족문화, 사회 분위기, 여성의 목소리를 엿볼 수 있다. 전혀 기쁘지 않던 가족이 우여곡절 끝에 즐거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시련을 지나 단단해진 가족을 보여준다.

여성의 시각에서 영화는 진행된다. 모녀의 욕망, 그중에서도 중년의 욕망에 주목하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에 잃어버린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특별한 시선이 돋보인다. 엄마도 사랑받고 싶은 한 여성임을 주체적인 언어로 담아냈다. 누구도 엄마로 태어나지 않는다. 엄마도 사랑받고 싶은 한 여성임을 갈등과 화해로 풀어내고 있는 흥미로운 가족 영화다.
아그네스 조이 실리아 힉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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