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5 09:48최종 업데이트 19.10.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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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을 아십니까? 장을 담글 땐 메주가 필요하고, 술을 담글 땐 누룩이 필요합니다. 메주는 겨울에 콩을 쪄서 만들고, 누룩은 여름에 밀이나 쌀 따위의 곡물을 빻아서 만듭니다. 메주가 직육면체의 덩어리라면, 누룩은 두께가 얇은 원반이나 사각 형태로 만듭니다.

둘 다 단단히 뭉치고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서 곰팡이를 띄워 만듭니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여성의 노동력으로 만들었다면, 산업화되면서 남성이나 장비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메주 없이 장을 상상할 수 없듯이, 누룩 없이 한국 술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누룩은 한국 술의 가장 긴요한 소재입니다.
 

현재 양조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누룩들. ⓒ 막걸리학교

 
누룩을 단단히 잘 디뎌야 술맛이 좋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1392년 조선 개국과 함께 강릉 태수를 지냈던 조운흘(1332~1404)의 집안 술이 맛있었던가 봅니다. 그 술을 맛보러 손님이 많이 찾아와 집안사람들이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조운흘은 하인에서 누룩을 살살 딛으라고 했고, 그 뒤로 술맛이 옅어지고 시어져서 손님들이 줄어들었답니다. 누룩은 발로 단단히 디뎌야 한다니, 누룩의 어원이 누르기를 잘 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전통 누룩이라 한다면 대개가 단단하게 뭉쳐서 만든 밀누룩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도 이 누룩을 썼고, 이를 통해서 많은 술들이 빚어졌습니다. 조선시대 종로에는 은국전(銀麯廛)이라는 누룩 가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누룩이 근현대에 들어 양조 산업과 순탄하게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192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흑국균이 들어와서 소주용 누룩을 대체했습니다.

누룩 제조장이 많았을 때는 1919년에 25,907개, 1925년에 36,273개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근거리 양조장이나 자가 양조용으로 공급됐겠지만 누룩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제조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조선총독부의 정책 변화로 누룩제조장이 급격히 줄어들어 1929년에 1,373개, 1930년에 483개가 되었습니다. 해방된 뒤로 1960년대에는 원조 밀가루로 술을 빚게 강제하면서 백국균을 파종한 밀가루 누룩이 전통 밀누룩을 밀어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연구 노력이 부족하다보니, 외래의 기법에 밀려나게 된 것이지요.

21세기까지 간신히 살아 넘어온 누룩 제조장은 경상남도 진주곡자와 광주광역시의 송학곡자 두 군데 정도입니다. 그러니 "전통 누룩은 박물관에나 보내야 해!"라고 비아냥거려도, 방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누룩이 발전하지 않은 것은 조선시대 누룩이 못나서가 아니고, 이를 연구 분석하고 활용할 방법을 과학적으로 조직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 누룩을 연구할 시점에, 간편한 일본 스타일의 누룩들이 정략적으로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는 수입 밀이 들어오면서 우리 밀을 찾기 어렵게 된 현실과 흡사합니다. 우리 문화든 우리 음식이든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 것으로 계승될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11일에는 춘천시에서 술 포럼이 있어,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주제가 누룩이었습니다. 누룩을 포럼의 주제로 삼다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참여하는 시민들에게는 누룩의 품질을 직접 확인시켜주기 어렵고 그것을 활용하여 현장에서 유의미한 체험을 하기도 어렵기에, 낯설고 생소한 소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강원대학교 60주년 기념관의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춘천에서 양조장을 준비하는 이, 막걸리 주점을 운영하는 이, 이웃한 가평과 연천에서 술 빚는 이들이 소문을 듣고 참석하였습니다. 춘천시장과 강원대학교 총장과 시의회 의원들도 참여하여 축사를 했습니다. 막걸리 바람이 불고, 수제 막걸리 양조장들이 생기고, 음식점에서 양조장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한국 술과 누룩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과 공동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전통 누룩들. 원반처럼 생긴 밀누룩, 하얀 오리알처럼 생긴 이화곡, 초록 연잎에 싸인 누룩 들이 있다. ⓒ 막걸리학교

 
춘천 행사장에는 누룩을 직접 디디는 양조장의 술과 누룩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예전 술 행사에서는 재료나 특성에 따른 누룩 전시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양조장별 누룩이 등장한 것입니다.

강원도 원주 모월의 연잎에 싸인 누룩, 홍천 예술의 오리알처럼 하얀 이화곡, 청주 화양 양조장의 탄탄한 근육질을 연상시키는 누룩, 아산 이상헌 탁주의 전분이 많이 함유된 누룩, 부산 금정산성의 보름달을 닮은 누룩, 울산 복순도가의 사각 누룩, 상주곡자의 틀을 승계한 은척양조장 누룩, 문경주조의 큼지막한 밀 누룩, 서천의 우리밀 누룩, 녹두가 들어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남원의 향온곡, 제주도의 손바닥만한 누룩 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직접 디딘 누룩으로 자신만의 술을 만든다고 표방하는 양조장들이 생겨났으니, "전통 누룩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한국 술의 주재료는 쌀, 누룩, 물입니다. 쌀과 물은 이미 공동체가 관리하는 것이 되어 있습니다. 누룩은 어떤 재료로 어디에서 언제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드냐에 따라 다른 향과 맛의 냅니다. 지역마다 양조장마다 다른 누룩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미생물 분석과 분리와 배양은 작은 양조장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장을 연구하기 위해서 순창에는 장류연구소가 있습니다. 한국 술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누룩도 공동체의 연구 노력과 기술 집약이 필요합니다.

이제 다시 누룩을 연구해도 늦지 않습니다. 술은 천 년 전에 빚었던 원리나, 천 년 후에 빚게 될 원리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한국 술의 정체성을 누룩에서 찾는다면, 한국 술이 세계 경쟁력을 갖게 되고, 후손들에게도 좋은 발효 문화를 전해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누룩을 연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에 지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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