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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의 모습.
 광화문광장의 모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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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을 반대하는 집회가 아니라, 이승만과 박근혜를 연호하는 자리였다.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탄핵 10.3 국민대회'는 이성적인 정치 집회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홍준표·오세훈·이재오 같은 정치인들을 들러리로 세운 기독교 극우세력 부흥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집회에서는 감히 '국민'을 운운할 수 없을 정도의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쏟아낸 거친 말들은 막말이나 망언 같은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성직자의 입에서 듣기 힘든 진귀한 폭언들뿐이었다.

그는 "최루탄 가스 두 통 마셨다고 돈 2억 씩을 다 타가는 저 ◌자식들" 하며 민주화 유공자들을 욕하더니 "잘 나가던 대한민국에 강도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저◌인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김정은의 여동생 계◌애 김여정 그◌을"이라는 말을 했다. 기도하고 성경 읽는 사람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광훈 목사가 내린 '즉결심판들'
 
전광훈 목사.
 전광훈 목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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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명칭은 수시로 바뀌었다. 포스터에는 '문재인 하야 국민재판'이라고 적혀 있더니, 연단에는 '문재인 탄핵 10.3 국민대회'로 쓰여 있었다. '하야'가 '탄핵'으로 바뀌고 '국민재판'이 '국민대회'로 바뀌었다. 전광훈 목사는 연설 중 집회 명칭을 '대국민 혁명'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마이크를 잡은 이재오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전광훈 목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500만 애국시민들을 증인으로 해서 지금부터 국민재판의 회장(의장)을 선출하겠습니다. 오늘 해방 이후의 최대 인파를 모을 수 있는 이 집회를 하게 된 원동력인,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의 대표이시고 한기총 회장이신 전광훈 목사."

이렇게 '국민재판 의장'으로 추대된 전광훈 목사는 제3자의 눈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500만' 군중 앞에서 일련의 즉결심판들을 선고했다.

"첫 번째 사건을 진행하겠습니다"라며 포문을 연 그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立國)론으로 세워진 나라이므로, 그동안에 이것을 반대하고 무너트린 모든 세력들을 다 척결하는 법을 이 시간에 통과시키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런 다음 "동의하십니까?"라고 말하더니 "아니라는 사람은 손 들어 주십시오! 없죠?"라고 고함쳤다.

1919년 3·1운동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함으로써 1948년 이승만에 의한 분단을 비판하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사람들,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경제민주화를 지지함으로써 기업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를 개선하려는 이 사회의 주류세력, 한미동맹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무조건 찬동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의 다원화를 추구하는 중도적 시민들을 일순간에 척결하기로 하는 '법'을 전광훈 목사가 통과시킨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이 '법'에 저촉될 것이다.
 
홍준표 전 대표
 홍준표 전 대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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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 거행됐다. 이 대목에서 전광훈 목사는 자기보다 먼저 연설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그 직전에 홍 전 대표는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했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흉내내 "피청구인 대통령 문재인을 파면한다"는 선언을 내렸다. 전광훈 목사는 홍 전 대표가 내린 선고를 환기시키면서, 이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문재인 탄핵을 통과시켰다.

더 황당한 장면은 바로 다음, 박근혜에 대한 선고 부분이었다. 전광훈 목사는 이런 '판결'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탄핵 당할 만한 아무런 죄가 없었다. 저 ◌자식들이 불법으로 탄핵했고 언론이 선동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로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에서 완전히 석방할 것과 다시 원대복귀시켜 단 하루라도 자리에 복귀시켜 스스로 명예은퇴하게 할 것을 결의합니다. 동의하시면 두 손 들고 만세, 아니라면 아니라고 하십시오, 다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오늘 이 시간부로 박근혜를 석방한다."

수감 중인 박근혜를 석방시켜 대통령직에 복귀시킨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후 자진 은퇴시킨다고도 말했다. 본인 의사를 확인했는지 궁금케 하는 대목이다. 그런 뒤 전광훈 목사는 서울구치소장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 서울구치소장한테만큼은 예외적으로 존댓말을 썼다.

"서울구치소 소장님 잘 들으세요. 전 국민(이) 헌법 위의 권한을 가지고 재판을 진행했으므로, 당장 석방하기를 바랍니다."

조국 반대 집회는 무엇을 보여줬나

뒤이어 전광훈 목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가상의 세력에 대한 선고가 내려질 차례가 됐다. 전광훈 목사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다.

"그리고 네 번째, 오늘 대한민국을 이렇게 혼란시킨 주도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남로당으로부터 시작된 주사파 세력인 것입니다. 주사파 세력 50만이 지금 계속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데, 이제 홍위병으로 둔갑하여 촛불시위를 통해 내전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주사파를 찬양·고무·동조하는 자는 처벌하기로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앞으로 주사파를 찬양·고무·동조하는 행위는 처벌하기로 (하는 데에) 동의하십니까? 아니라면 아니라 하십시오."

국가보안법을 놔두고 또 다른 악법 하나를 더 '제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의) 없습니까? 통과됐습니다"라며 연단을 땅땅땅 세 번 내리쳤다. 그도 그렇고 홍준표 전 대표도 그렇고,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그 모습이 그처럼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한국 사회의 주사파는 개별적인 소수로 존재할 수 있을지언정 '세력'이라고 할 만한 규모는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광훈 목사는 주사파를 '주도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규모를 50만으로 상정했다. '50만은커녕'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할 만한 말이었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그의 발언은 구약성경 내의 격언서인 <잠언>의 한 구절을 연상시킬 만하다.

<잠언>은 현실과 괴리된 채 자기만의 피해망상에 빠져 비현실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게으른 자'라고 표현한다. <잠언> 22장 13절은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리라"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아무런 정신적 수고 없이 과대망상·피해망상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게으른 자'다. 있지도 않은 주사파 세력을 가상으로 상정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보수·극우 세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기총 산하 기독교인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전광훈 목사가 주재한 어처구니없는 '부흥회'는 한 편의 희극처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정치권과 기독교 내 극우세력의 집단 망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한 편의 희극으로나마 대리만족으로 이뤄보는 그들을 보면서, 실사구시와 점점 더 멀어지는 보수·극우의 실상에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광훈 목사 등이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보인 모습은 '조국 반대 집회'가 애초에 표방했던 사회적 공정 같은 것은 간 데 없고, 보수·극우의 가치만이 난무하는 집회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미투운동'은 누가 이끌지 않았는데도 사회 각계로 저절로 확산돼 한국 사회를 개선시키고 있다. 그것은 명확한 사회운동이었다.

그에 비해 조국 반대 집회는 그런 운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의 공정과 정의를 실현시키는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고 '박근혜'가 연호되는 극우 친박집회로 변질되고 있을 뿐이다. 조국은 없고 박근혜만 있는 집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태그:#조국 반대 집회, #전광훈, #한기총, #친박 집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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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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