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의 한 장면.

영화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말들이 뛰어다니는 넓은 초원과 한껏 인상을 쓰며 멋을 낸 카우보이. 우리가 서부극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 이미지다.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 잡아 세계 영화사에 영향을 끼친 서부극은 그 자체로 품고 있는 재미가 있다. 

3일 언론에 먼저 공개된 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은 예고편만 놓고 보면 서부극 장르의 미덕을 따라간 이단아처럼 보인다. 영화제 소개 자료글에도 '카자흐스탄 버전 서부극'이라 돼 있다. 장르의 미덕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기대하고 영화를 본다면 십중팔구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은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과 일본의 신진 감독인 리사 타케바의 합작품이다. 중앙아시아의 거칠면서도 묵직한 감성과 일본의 구성력이 더해진 이 작품은 결론만 놓고 보면 웨스턴 장르의 답습이 아닌 몽환적인 초원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배경은 2000년 초반 카자흐스탄 어느 초원 마을. 이사 자금을 만들기 위해 동네 이웃과 함께 말을 팔러 나간 남편이 강도를 당해 사망한다. 남편을 잃은 아이굴(사말 예슬라모바)을 향해 동네 이웃들이 손가락질하는 사이 옛 연인 카이랏(모리야마 미라이)이 아이굴을 찾아온다. 7년 전 홀연히 떠난 카이랏, 그리고 그런 아이굴과 카이랏을 따르면서도 꾸준히 관찰하는 아들 간에 묘한 감정적 유대가 영화의 골격이다. 

사람이 죽고, 범인을 찾는 전형적 서사 플롯이 아니다. 여타 서부극처럼 강렬한 사운드와 클로즈업으로 인물과 사건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닌 아들의 꿈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사람이 죽는 와중에도 클로즈업이 아닌 오히려 멀리서 바라보는 롱샷으로 대체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어떤 특정 감정의 강요가 아닌 오롯이 영화 자체의 분위기와 그 주변 배경을 흡수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 낯선 남자의 등장, 침착한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그나마 이 영화를 따라가기 좋은 지름길이다. 시종일관 담담한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영화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의 한 장면.

영화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지나칠 정도로 담백한 이 영화의 분위기,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목가적 풍경이 우리에게 더욱 이질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하지만 불유쾌한 것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미적 경험을 동반한다. 익숙하고 전형적인 상업영화 문법에서 해방되어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해 말을 거는 이 영화가 기껍게 받아들여진다. 

새로운 감각과 세상의 발굴. 이것이 영화제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라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꽤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과 일본의 신진 영화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덤이다. 또한 이상일 감독의 <분노>로 우리에게 익숙한 모리야마 미라이의 연기도 미덕으로 작용한다.

한 줄 평: 새로운 감각의 제시. 중앙아시아의 잠재력을 확인하다 
평점: ★★★☆(3.5/5)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말도둑들. 시간의 길> 주역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모리야마 미라이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말도둑들. 시간의 길> 주역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모리야마 미라이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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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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