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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할지 모르는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가 거리로 나섰다." 

자유발언대에 선 김도현(17) 청소년 기후활동가의 목소리에는 결기와 한탄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기후 위기에 대해 침묵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대학 가고 나서 행동하라'는 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박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공감받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행사 참여의 계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더 절절해졌다.

"차마 '결석 시위'라는 말은 사용하지 못하고 현장체험 학습서를 학교에 제출하면서도 혹시나 통과되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학교는 결석 시위 참석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게시판에 붙이는 것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청소년기후행동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정부의 과감한 기후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 청소년기후행동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정부의 과감한 기후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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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세종로 공원에 모인 500여 명의 청소년 중 다수는 같은 어려움을 거쳐 학교를 등지고 거리로 나왔다. '9월 20일과 27일 시위에 함께하자'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요청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민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청소년들에게는 과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향후 10년을 보장할 수 없는 인류 대멸종의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존재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이날 집회는 2018년 8월에 결성한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의 주도로 개최되었다. 이 단체는 지난 3월 15일, 5월 24일 두 차례에 걸쳐 정부의 기후 대책을 촉구하는 청소년 결석 시위를 개최한 바 있다. 올해 들어 세 번째 맞이한 이번 집회는 오전 10시 세종로공원에서 기후변화 전문가 조현호 박사와 함께하는 '조조 세미나'로 문을 열었다. 조현호 박사는 "지구 온도가 2도 오르면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 여부와는 무관하게 지구 자체로 온도를 상승시키는 메커니즘이 가동되고 그 이후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온다. 지구는 이미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경험했으며 이는 매우 가까운 미래에 닥칠 위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 성장에만 빠진 정치인들의 더딘 대책 마련을 질타하기도 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집회 참석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위기를 상징하는 작은 운동회에 참여했다. '석탄'이라고 적힌 검은색 공을 힘껏 차 석탄 에너지를 상징하는 구조물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빙하를 상징하는 구조물에 여러 참석자가 올라가 점점 작아지는 빙하 위에서 위태롭게 몸을 버티며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체험하기도 했다. 거대한 지구본을 끈이 달린 원판 위에 올려놓고 참석자들이 합심하여 지구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호흡을 맞추며 우리 행성을 구하기 위한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석한 청소년 700여 명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 가자. 청와대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석한 청소년 700여 명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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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집회 청소년, 성인 참석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익명의 한 청소년 참여자는 "출신 학교를 밝힐 수 없는 점을 양해해 달라"며 운을 떼었다. 그는 "무단으로 조퇴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결석을 허가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학교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1년 반의 학교생활이 오늘 하루로 무너질 수 있지만 일단 여기에 나왔다"라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지난 9월 20일 청소년기후소송단과 환경부장관의 만남에서 '지구 온도 1.5도 인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장관의 발언을 거론하며 "1.5도를 인하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는데 과연 타협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나는 자신을 희생하며 세상을 바꿀 용기는 없다. 그러나 '학교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나에게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아무리 외쳐도 들어 주지 않는 세상이 두렵고, 학생들을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내모는 세상이 두렵다"며 정부의 고민을 촉구했다.

자유발언을 마무리하며 청소년과 시민들은 '석탄 그만' '온실가스 배출제로'라는 펼침막이 들어 있는 박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한편 집회를 주최한 청소년들은 우리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성적표를 자체 제작하여 제시하였다. 문제 파악력, 의지와 적극성, 신뢰성 및 구체성에 대해 청소년은 모두 낙제점을 부여하여 0점을 제시했다. 성적과 더불어 상장도 함께 수여 되었는데 상의 이름은 '무책임 끝판왕 상'이었다. 상장에는 "국가는 무책임한 기후정책으로 학교에 있어야 할 청소년을 거리로 내모는 등 무책임의 끝판왕으로 불리어도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 상을 수여 함"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청와대로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구호는 힙합 리듬으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청와대로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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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청소년들과 시민들은 세종로공원, 광화문, 청와대로 이어지는 차도를 행진했다. 경쾌한 타악기 소리와 청소년 감성에 맞는 힙합 리듬에 따라 "응답하라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제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과감하고 확고한 변화를 촉구했다. 청와대에 다다른 행진 행렬은 대표 청소년 세 명이 정부의 기후대응 성적표와 '무책임 끝판왕 상'이라고 적힌 상장을 대통령에게 제시하기 위해 청와대 경내로 진입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청소년기후행동' 측은 당일 참석한 청소년을 500여 명 수준으로 파악했다. 3월과 5월 개최된 집회에 100여 명이 참석했던 것을 고려할 때 청소년들의 자발적 기후 행동에 관한 관심과 지지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도현 청소년 기후활동가는 자유발언에서 "우리는 가장 앞에 서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고, 더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청소년이,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의심쩍게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작은 우리의 행동이 이어지면 거대한 변화로 분명히 돌아올 수 있다. 오늘 이 자리는 변화의 시작점이다"라고 주장했다.

태그:#청소년기후행동, #SCHOOLSTRIKE4CLIMATE, #기후를위한결석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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