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지난 1991년 일제시대부터 해방 이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을 아우르는 세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대작 <여명의 눈동자>를 방영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 드라마의 역사는 <여명의 눈동자>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한국 드라마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꼽힌다(물론 시청률로만 본다면 같은 시기에 방송된 <사랑이 뭐길래>에는 미치지 못했다).

KBS에서는 지난 2009년 엄청난 제작비와 이병헌, 김태희, 김소연, 정준호, 김승우 등 화려한 출연진을 캐스팅한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를 선보였다. 물론 '드라마계의 <쉬리>'가 되겠다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이리스>는 평균 31.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사탕키스' 같은 명장면을 만들었고 백지영의 OST <잊지 말아요>가 크게 히트하는 등 <아이리스>는 2000년대를 마무리하는 KBS의 인기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올해 초 금·토드라마를 신설한 SBS에서도 많은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대작 드라마가 오는 20일 첫 방송된다. 유인식PD와 장영철-정경순 작가 콤비가 손을 잡은 범죄액션멜로 <배가본드>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배가본드>의 여주인공 캐스팅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배가본드>에서 국정원 블랙요원 고해리 역을 맡은 배수지는 아직 이 정도 스케일의 대작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으로 '국민 첫사랑' 등극, missA 먹여 살린 막내
 
 <건축학개론>을 본 남자관객 중 수지에게 반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건축학개론>을 본 남자관객 중 수지에게 반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수지가 2009년 <슈퍼스타K> 광주지역예선에 참가했다가 JYP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게 캐스팅돼 JYP의 연습생이 된 일화는 이제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1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친 수지는 2010년7월 4인조 걸그룹 missA로 데뷔했는데 missA는 데뷔곡 < Bad Girl Good Girl >로 22일 만에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물론 현재는 JYP 후배인 ITZY의 <달라달라>가 11일로 데뷔 후 최단기간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 missA의 예쁜 막내로 활발한 가수활동을 하던 수지는 2011년 KBS드라마 <드림하이>에서 주인공 고혜미 역에 캐스팅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드림하이>는 수지를 비롯해 2PM의 옥택연과 장우영, 티아라의 함은정, 솔로가수 아이유, JOO 등 아이돌 위주의 캐스팅 때문에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드림하이>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아테나>, <역전의 여왕> 같은 기대작들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수지를 모든 남성들이 흠모하는 대세스타로 만든 작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수지에게 '국민 첫사랑'이란 타이틀을 안겨 준 영화 <건축학개론>이었다. 수지는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과 2인 1역을 소화하며 엄청난 매력을 발산했고 수지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 조정석과 함께 최고의 수혜를 입은 배우가 됐다.

2011년 <드림하이>로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수지는 2012년 <건축학개론>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그리고 <청춘불패>시즌2로 2012 KBS 연예대상 신인상을 휩쓸며 역대 최초로 '신인상 그랜드슬램'에 등극했다. 2013년에는 이승기와 호흡을 맞춘 드라마 <구가의서>를 통해 그 해 MBC 연기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과 최우수연기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수지는 연기자 데뷔 3년 만에 missA의 막내가 아닌 '대세 연기자' 배수지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그룹 활동보다 솔로 활동을 하는 게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가 됐지만 수지는 missA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수지가 <건축학개론>으로 '국민첫사랑'이 된 후에도 missA는 < Hush >, <다른 남자 말고 너>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너무 크게 벌어진 수지와 다른 멤버들의 격차는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민과 지아, 수지가 차례로 JYP를 떠나면서 missA는 2017년 12월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데뷔 후 첫 250억 제작비의 블록버스터 출연, 이승기와 6년 만에 재회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에게 열광했던 관객들은 <도리화가>의 수지에게는 매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에게 열광했던 관객들은 <도리화가>의 수지에게는 매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 CJ엔터테인먼트

 
공교롭게도 수지는 <구가의서>를 통해 20대 배우로서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 받은 후부터 작은 슬럼프에 빠졌다. 당시 1000만 영화를 세 편(<광해>, <7번 방의 선물>, <명량>)이나 보유한 흥행배우 류승룡과 함께 <도리화가>에 출연했지만 전국 31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김우빈과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최고 시청률 12.9%로 방영 전 기대치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2017년 이종석과 호흡을 맞춘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방영 내내 높은 화제성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대세스타 이종석과 수지의 만남, 그리고 <드림하이>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집필한 박혜련 작가의 신작임을 고려하면 동 시간대 1위라는 성적에 위안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사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최대 수혜자는 이종석도 수지도 아닌 이듬 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캐스팅되며 스타로 떠오른 정해인이었다.

지난 4월 10년 간 한솥밥을 먹었던 JYP를 떠나 공유, 전도연, 공효진, 서현진 등이 속한 숲 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튼 수지는 <배가본드>를 복귀작으로 선택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가 종영한 후 2년에 가까운 공백이 있었던 수지이기에 <배가본드>는 수지의 연기 커리어에도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작품으로 꼽힌다. 만약 <배가본드>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배우로서 꽤 깊은 침체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지는 <배가본드>에서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국정원 블랙요원 고해리 역을 맡았다. 주연 3인방인 이승기, 수지, 신성록 외에도 백윤식, 문성근, 이경영, 이기영, 김민종, 문정희, 정만식 등 다양한 작품에서 대중들의 신뢰가 높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자이언트>와 <샐러리맨 초한지> 등을 공동 집필했던 장영철-정경순 작가 역시 검증을 마친 스타작가다.

수지는 아직 수백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 대작에 출연했던 경험은 없다. 하지만 수지는 연기자 데뷔 후 출연했던 5편의 드라마가 모두 두 자리 수 시청률을 넘긴 바 있다. 어쩌면 언제나 꾸준한 시청률을 보장하는 수지를 캐스팅한 것은 제작사 입장에서는 모험이라기 보다 안전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지는 <배가본드>에서 국정원 블랙요원 고해리 역을 통해 연기변신을 시도한다.

수지는 <배가본드>에서 국정원 블랙요원 고해리 역을 통해 연기변신을 시도한다. ⓒ <배가본드>홈페이지

 
수지 MISSA 배가본드 건축학개론 이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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