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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을 출간한 이민경 작가
 최근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을 출간한 이민경 작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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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코르셋.' 체형을 날씬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보정 속옷인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

2019년 한국 사회에 긴 머리, 치마, 화장 등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참여하는 여성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갖고 있는 화장품을 모두 부순 사진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탈코르셋 인증' 등의 해시태그를 붙인다. 참여자들은 그간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화장, 긴 머리 등이 모두 '꾸밈 노동'이었다고 주장한다. 남성들은 안 해도 되는 불필요한 '꾸밈 노동'에 여성들이 의무적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왔다는 것이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20여 명을 인터뷰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나왔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유럽낙태여행> 등 페미니즘 서적 출판으로 목소리를 냈던 이민경 작가의 <탈코르셋:도래한 상상>(한겨레출판)이다.

"남성들이 출근하기 위해 갖추던 기본값, 즉 '사람 꼴'이 자신이 여태까지 갖추던 그것과는 무척 달랐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여성은 '사람 꼴'을 갖추기까지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 기본값에 직접 다가가야 하는 반면, 남성에게는 '사람 꼴'이 이미 찾아와 있었다."(42쪽)

1992년생인 이민경 작가는 직접 탈코르셋을 실천하고 집필에 돌입했다. 사실 탈코르셋은 여성주의 운동을 직접 하고 있거나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뜨거운 운동이다. "탈코르셋에 참여하려면 머리를 짧게 깎고, 화장을 하지 않고, 셔츠와 바지 차림을 해야 한다는 것"(14쪽)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탈코르셋을 강요하지 말아라"거나 "주체적으로 꾸미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의아함을 자아내곤 했다.

이민경 작가는 "(반감이 심한 운동이기에) 책을 쓰는 과정 또한 어렵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를 지난달 28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나서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묻고 들었다. 그는 이날 짧은 머리를 하고 검은색 체크 남방을 입고 나왔다. 그에게 '탈코'를 언제 했냐고 물었다. 그는 "2018년 3월"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이민경 작가는 SNS상에서 '탈코르셋' 흐름이 생기고 바로 운동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꾸밈 노동'을 거의 안 하다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로 많이 하게 됐다. 그때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여성성의 긍정'이나 '주체적 꾸밈'과 같은 메시지가 있었다. 그때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하면서 대중 강연을 나갔고 화장을 했다. 그러다가 '탈코르셋'을 하게 됐다. 사실 나는 2016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탈코르셋' 운동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 '탈코르셋'을 하지 않고도 책을 쓸 수 있지 않나?
"'탈코르셋 운동'의 강력한 기조는 '행동주의'다. 행동주의는 직접 행동을 해서 바꾸자는 것이다. 실천이 주요한 키워드가 되는 운동에 대해 다루면서 실천을 안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관찰자처럼 현상을 단순히 스케치하고 출판을 목적으로 주제 삼아 책을 낸 게 아니라 탈코르셋 운동의 일원이 돼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탈코르셋'을 시도하고 나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나는 괜찮았다. 주변이 다 페미니스트라서. (웃음) 좀 나이가 있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는 '애들이 치기어려서 하는 걸 너도 하니?'라는 반응도 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 운동을 좀 더 진지하게 끌어올리고 싶었다. 책에 말투도 진지하게 썼다."

-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은 어린 세대들이 주도해서 하는 운동이라는 관념이 있는 것 같다.
"10대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너 왜 안 꾸며?'라면서 간섭하고 그 '꾸밈'의 명확한 상을 상상할 수 있는 세대가 생겼다. 화장품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집에서 형광펜으로 틴트 바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꾸밈 상태를 기본이라고 생각해서 꾸미지 않으면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간다. (화장하지 않은) 원래 얼굴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한다. 윗세대는 화장하면 학교에서 혼났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거다. '왜 꾸미지 않는 걸 고통스러워하지? 난 고통스럽지 않은데?'라는 말은 눈치 없는 말이다."

- 현재 학교가 그런 '꾸밈' 문화 속에 있는 건가?
"그렇다. 모두가 꾸미게 되면 안 꾸미는 사람이 배제된다. 우리도 또래집단에서 배제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우리는 학생이 꾸민다고 했을 때 '와 이제 자유로워졌네'라면서 쿨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나름의 맥락에 갇혀서 오독하고 있다. 이젠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결점이 된 것이다. 옷을 안 입거나 신발을 안 신고 밖에 나갈 수 없듯 화장을 안 하고 밖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각을 해도 화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집에서 거울을 놓고 오면 불안해서 바로 다시 가서 산다. 만일 꾸미는 게 마냥 좋아서 꾸미는 거라면 불안할 일이 없지 않겠나."

- 이민경 작가는 처음 책을 쓰면서 여러 의문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나?
"없다.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 속에서 모두 해소됐다. 일단 책을 쓰는 데 성공했고.(웃음) 페미니즘적 질문이라는 건 계속 생기지만 지금은 대체적으로 해결됐고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탈코르셋 운동의 한계를 알고 싶어 한다. '저렇게 한다고 되나?' 싶은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그냥 뭐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거 하면 되지'란 생각을 갖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 자체를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 그렇다면 책을 쓰면서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 깨진 게 있다면?
"잘 모르겠다. 다 예상 안에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런 게 있다. 나는 사실 꾸밈에서 먼 사람이다. 내가 고집을 부렸으면 '나는 원래 탈코르셋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코르셋 차래'라고 훈계를 했을 수도 있다. 코르셋이라는 고통을 모를수록 이 운동에 더 동참하기가 어렵다는 게 난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여성들이 고통을 견디고 있더라. 꾸밈이 이 정도로 한국 사회 여성들의 생활 습관을 파고들어 가 있는 줄 몰랐다.

바지가 아예 집에 없다든지, 힘을 줘서 11센티 힐을 신는다든지, 하루에 한두 시간씩 화장을 한다든지. 그리고 여성 간의 연대가 꾸밈 때문에 이뤄지지 않은 게 보이더라. 모임에 오면 서로 어떻게 코르셋을 찼는지 보느라고 대화에 신경을 못 쓰는 것이다. 친구가 살이 빠진 것 같을 때 불안하고 경쟁심이 들고, 약속을 잡고 하루 전에 굶기도 한다. 이런 서사를 체화한 여성들이 진짜 많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이 사례들이 상관없다고 하더라도 메시지를 같이 청취해주셨으면 좋겠다."

기생들 사이에서도 있었던 '탈코' 운동
   
 최근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을 출간한 이민경 작가
 최근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을 출간한 이민경 작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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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반감이 이렇게 심할까.
"여성의 욕망을 건드려서 그렇다. 성폭력이나 낙태 이슈는 여성의 욕망이랑 상관이 없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에 씌우는 폭력이고 착취임에 반해 꾸밈은 '욕망의 내면화'를 통해 발현된다. 자기랑 싸워야 한단 말이다. 특히 꾸민 상태가 자기에게 만족을 주고 꾸미지 않으면 스스로 생각했을 때 못생겨 보인다. 그러니까 '난 싫은데'가 돼버리는 것이다."

- 반감이 심한 운동이다 보니 책을 쓰는 데 있어서 망설임 같은 건 없었나.
"진짜 엄청 많았다. 이거 꼭 기사에 써달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만일 탈코르셋 운동이 뷰티 산업을 비판하는 운동이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운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자는 운동이다. '차라리 구조를 비판하는 건 어때?'라는 말이 자꾸 나온다. 구조를 비판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탈코르셋 운동은 나를 바꿔냄으로써 일상의 자극과 반응을 바꾸는 운동이다. 자본주의는 힘이 세기 때문에 힐(구두) 광고를 내리라고 해도 내려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탈코르셋'을 하면 아무리 광고가 걸려 있어도 '신으면 아프겠지' 같은 생각만 든다. 유혹을 못 느끼는 것이다.

내가 탈코르셋 운동의 대표여서 이 책을 쓴 게 아니라 아직 탈코르셋 운동과 닿지 않은 사람들, 나보다 좀 더 연장자들에게 '이 운동은 어떤 의미가 있다'는 식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래로 내가 그 다리 역할을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탈코르셋 운동 자체의 규칙은 좀 거부감이 들겠지만 잘 보여줄 경우에는 사람들이 접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탈코르셋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 '어떤 파(派)'겠구나 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과 화해를 시도하고 싶었다."

- 책 제목이 독특하다.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인데, '도래한 상상'은 무슨 의미인가?
"가제는 '코르셋 벗기기'였는데 내가 이 제목으로 밀었다.(웃음) 여러 여성들 사이에서 '정형화된 탈코르셋을 하면서 편협하게 갈 게 아니라 다양한 여성성의 상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말하는 '상상'이라는 게 이미 '탈코르셋'이라는 형태로 도래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게 상상 그 자체라는 것이다. 굉장한 상상력을 구현해 그걸 삶으로 구현시킨 결과물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이미 탈코르셋 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은 고통과 경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있다. 머리 짧고, 바지 입고, 화장 안 하는 게 끝이 아니라 이들의 삶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상상이 도래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 책을 쓰기가 두렵다고 말했는데 책을 쓰게 된 어떤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있나?
"왜 굳이 (나와 같은) 중간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왜 내 말은 듣고 익명의 탈코르셋을 한 레디컬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거지?'라는 불만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지금은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다들 말하지만 10년이 지나면 이 광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다. 조선 시대에도 기생들이 먼저 단발 운동을 시작했다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런 운동을 알지 못한다. 여성들이 봉기해서 다 같이 머리를 자른 것이다! 얼마나 레디컬한 운동인가. 지금의 감각들, 열기나 온도를 채취해서 박제해놓고 싶었다. 동시대에서는 또래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더 나아가서는 탈코르셋 운동을 알지 못할 후대들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앞으로 탈코르셋 운동은 어떻게 될까?
"사실 이 운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현시점에서 키즈 메이크업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 SNS에서 '키즈 메이크업' 검색해보면 깜짝 놀란다. 당장 내가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해도 운동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내가 몰카에 안 찍혔어도 호혜성의 원리에 기반해서 더 나은 사람들의 삶을 위해 하는 것이지 않나. 다음 세대가 직격탄을 어린 몸으로 맞고 있다. 엄마들은 어른들이 하던 화장을 애들이 하면 자유로운 것이라고 오독하고 있다. 안전하게만 하라면서 무독성 화장품을 사준다. 사실 그거 아니거든. 윗세대가 좀 더 책임을 통감해야 하지 않나 싶다."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은이), 한겨레출판(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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