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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진보정당 건설 운동과 삼성의 불의에 맞서 싸운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회찬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조돈문 전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진보정당 건설 운동과 삼성의 불의에 맞서 싸운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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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에게 많이 미안하다."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65)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앞선 몇 번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눈물을 흘렸던 그다. 2일 그의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고 눈가가 붉어지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가던 그는 결국 탁자 옆에 있는 티슈를 집어 들었다.

기자는 노회찬에 대해 먼저 묻지 않았다. 조돈문 이사장이 그동안 전개해온 '반삼성' 운동에 대해 물었다. 노회찬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던 무렵 조돈문 이사장은 삼성노동인권지킴이라는 시민단체 출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삼성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2013년의 노회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출범 전에 삼성 운동을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나갈지 논의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노회찬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충격을 받았다. 활동가들이 유죄가 나와서 의원직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기에 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그랬다. 설마 대한민국이 아무리 막나가도 삼성 뇌물 받은 검사들과 국회의원들은 내버려두고 노회찬의 의원직을 상실시키겠냐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된 거다. 다들 노회찬 선고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노회찬 유죄 판결, '고압선' 같았다"
  
▲ 조돈문 교수, 노동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27년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평생을 사회적 약자와 노동 운동에 전념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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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선작이 쓴 <고압선>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에 보면 연립주택 옥탑방 위로 고압선이 지나간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들 고압선을 두려워하지만 누구도 그 고압선의 존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겁을 먹을까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회찬의 유죄 판결은 우리에게 고압선 같은 존재였다. 삼성 운동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돌이킬 수도 없었다."

조돈문 이사장은 진보 정당 운동을 하면서 노회찬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출범하기 이전인 1999년 7월부터 당의 강령 초안을 만들면서 노회찬 의원을 만났다. 조 이사장은 "늘 피곤하고 지쳐보이던 노회찬은 4년 뒤인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화려하게 입성하던 순간 활짝 웃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노회찬의 미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에서 국회의원이 10명이나 탄생했다. 당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13~15%가 나왔다. 시민들은 민주노동당을 굉장한 잠재적 역량을 지닌 당으로 봤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진보 진영 내에서 민주노동당이 떡고물처럼 돼 의원직이라도 하나 먹으려고 벌레들이 끼었다"는 것이다.

"순수한 의지를 갖고 진보정당 운동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들어왔지만 결과적으로 파벌들의 게임이 됐다. 2006년 당의 위기 상황에서 최고위원회의가 내게 조직 진단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당 활동가들과 당직자들 인터뷰와 설문조사 등으로 분석했는데 위기의 핵심에 파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조돈문 이사장은 2011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회당 등 소수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정당을 통합하자는 제안인 진보대통합 운동이 '파벌' 탓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진보 정당 운동을 두고 "얻은 건 없고 상처만 받았다"며 고통스러워했다.

당시 진보 운동 진영 내에서는 노회찬의 진보대통합을 두고 이른바 '묻지마 통합'이라면서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다. 조돈문 이사장은 그때 진보대통합을 지지했다.

"같이 의기투합해서 일을 하던 친구들이 진보대통합 반대 의견을 보이면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예 달라졌다. 1미터 앞에서 안면을 바꾸는 식이었다. 내가 자기들 선거 나갈 때 길거리 유세하면서 율동도 하고 그랬는데. (웃음) 당시 통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핵심 타깃이 노회찬이었다. 그들이 노회찬에게 굉장히 모욕적인 짓을 많이 했다. 노회찬이 웃으면서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을 매몰차게 내치더니 얼굴에 대고 눈을 찌를 듯 삿대질을 하는 거다. 노회찬 대표는 욕을 하는데도 웃으면서 포옹하려고 했다. 

회의가 끝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 밝은 표정으로 오늘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말이다. '저런 사람이 정치인을 하는구나' 싶었지만 가끔 궁금했다. 노회찬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충격을 받고 회복하는 '탄력성'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사고(노회찬의 사망)가 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마음에 입은 상처가 쉽사리 회복되는 게 아니었다.

노회찬 대표는 통합 논의 당시 '진보대통합'의 상징이었다. 정파가 달라도 당을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노회찬도 상처를 받았겠구나. 단지 해소를 못했을 뿐이구나. 그래서 혼자 다 안고 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눈물)


조돈문 교수는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이 마치 그의 세대에 주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노회찬에게 많이 미안했다. 정년을 1년 정도 앞둔 작년에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세상을 보면 변한 게 별로 없다. 도대체 나는 뭘 잘못했나. 우리 세대는 뭘 잘못했나. 우리 세대가 다 실패한 건가. 진보 정치운동을 잘 하지 못했다. 잘 풀렸다면 사회진보에 기여했을 텐데 잘 되지 않았다. 단순히 진보 정당 운동의 실패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오늘날 이렇게 된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앞으로 만회할 기회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보 정당 운동은 현재까지는 실패다."

"야! 나는 강연 안 해!"
 
조돈문 교수는 "삼성 운동은 매번 지고 좌절한다"면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돈문 교수는 "삼성 운동은 매번 지고 좌절한다"면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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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의원직 상실을 하던 당시 출범 예정이었던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2013년 12월 결국 출범했고 벌써 6년차가 됐다. 그 사이에 삼성 내부에 노동조합이 8개가 됐고 노조원 숫자가 3000명이 됐다.

그간 삼성의 '무노조 경영' 탓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은 삼성 측의 협박 과 회유를 당해야 했다. 삼성 본사 앞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김용희씨 역시 삼성에서 1990년 초에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가 해고된 노동자다.

"삼성 관련 토론회를 하면 미래전략실 직원들이나 중재자를 빙자한 끄나풀들이 온다. (웃음) 외모나 옷차림, 인상, 눈빛, 주변을 보는 태도 등이 뭐가 달라도 다르다. 한 번은 삼성 측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자는 제안이 오더라. 조건을 제시했다. '나는 밥은 안 먹는다. 술도 안 마신다. 차라면 마시겠다. 대신에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에서 보겠다. 그리고 혼자 나오지 말아라'라고 했다. 개방된 공간이라야 나중에 내게 돈봉투를 줬다느니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또 같이 나와야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한 조건에 100% 부합하는 곳을 찾아왔더라. 그 자리에서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요구하는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총수일가의 지배경영권 독점·세습을 포기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건희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1조원을 당장 환원하라는 것이었고 셋째는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하라는 것이었다. 자기들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니 삼성에 와서 교육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 난 강연 가면 그냥 가지 않고 삼성 노동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말했다.

재벌 그룹들에서 그런 제안들이 가끔 온다.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들은 연구자나 학자들은 다 같은 줄 안다. 10년도 더 된 일인데 어느 재벌 그룹에서 강연비로 100만원을 제안해서 안 가겠다고 했더니 다시 연락이 오더라. '그 액수는 기본적으로 드리는 것이고 교수님께서 오시면 '저희가 특별하게 배려를 해드린다'고. (웃음) '야! 나는 안 해!' 내가 돈을 더 받으려고 거절한 줄 알았던 거다."


조돈문 이사장은 "삼성 운동은 매번 지고 좌절한다"면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운동은 실패의 연속이다. 특히 삼성 운동이 그렇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동료들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전망을 갖게 만드는 게 내 역할이다. 운동이 실패할 때마다 운동 내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1월 노회찬재단 출범 행사에서 인디언 기우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비가 1년 내내 안 올 수는 없다. 다만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버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다.

<슈퍼스타 감사용>이라는 영화가 있다. 감사용은 패전 전문 투수인데 나는 가끔 우리가 감사용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삼성에 늘 지고 있지만 평생 연장전을 할 것이다. 홍수환이라는 권투선수는 남아공 시합에서 계속 두들겨 맞다가 마지막 한 방으로 K.O. 승을 거둔다. 시합을 장면 별로 나누면 홍수환은 계속 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마지막에 역전했다.


에버랜드에서 이른바 '나들이 투쟁'이라고 풍선 불고 고깔모자 쓰고 에버랜드에 오는 코흘리개들에게 우리 존재를 알리는 선전전을 여러 차례 했다. 물론 나들이 투쟁 같은 걸 한다고 당장 큰 성과가 있진 않다. 하지만 안 했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니 삼성에 노동조합이 8개가 됐다. 사실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건 자기 최면에 가깝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볼 때는 멍청한 소리 같을 거다.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은 진리로 믿을 수밖에 없다. 포기하지 않으면 연장전이 계속 된다고."

태그:#노회찬재단, #삼성 운동, #조돈문, #삼성 노조,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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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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