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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한빛PD의 동생 이한솔이 쓴 책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 연작입니다.[편집자말]
Y 교사가 <가장 보통의 드라마> 4권을 가지고 오셨다. "지난 겨울방학 호주에 갔을 때 가게들이 모두 영업을 일찍 종료해 충격 받았었어요. 이 책을 읽으며 주 52시간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요즘 텔레비전을 볼 때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시청하는 게 저에게는 큰 변화지요." 그러면서 책을 선물할 지인들이 많을 거라며 내게 책을 주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거절했다. Y 교사는 이렇게라도 후원하고 싶다며 책을 안기고 갔다.

같이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한빛에 대해, 책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2017년 4월, 전임학교에서 한빛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던 때도 그랬다. 한 명이라도 공감을 구해 한빛센터를 알리고 후원회원을 넓혀야 했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도 용기가 없었고 비겁했다.

1989년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 교사가 생겼을 때는 한 명이라도 더 후원회원을 만들고자 구걸하다시피 전력을 다했다. 남편이 해직 교사여서라기보다는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교육 현장을 위해서였다. 그때는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을까?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될까? 이 사회의 청년들에게 한빛과 같은 희생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말이다. 내가 불편하기 싫어서일까? 한빛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확고함에도 나는 내 생각만 하는 걸까? 한빛에 미안하다.

Y 교사에게 책 출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니 L 교사가 메신저로 알려줬다고 했다. L 교사가 나만 빼고 전체 메신저를 돌린 것이었다.

"어제 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를 듣다가 이한솔씨의 인터뷰를 듣게 됐습니다. (중략).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선생님들께 책 한 권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방송 제작 환경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고 민주시민의식을 키우는 자료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많이 홍보해주시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즐거운 퇴근 되세요."

뒤늦게 메신저를 확인한 후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고마우면서도 슬펐다. 형의 죽음을 동생이 풀어간 책.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기에 망각할 수 있다면 당연히 삭제하고 싶은 시간. 책이 대박을 터트리면 2016년 가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까?

방송 화면 뒤 도구보다 못한 취급, 아이들은 알까?

나 역시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읽고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교사들은 모든 일을 학교와 연관시키는데 나도 책을 읽으며 우리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영상문화를 선호한다. 그래서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고 그 언저리에라도 있고 싶어 한다. 나아가 PD, 드라마 작가, 아나운서, 촬영감독, 스태프 등이 꿈인 아이들도 많다. 이유를 묻자 화려할 것 같고 돈도 많이 벌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유튜브를 즐겨보고 UCC를 잘 만들면 금방 PD가 되고 감독이 되는 줄 안다.

아이들은 제작 현장의 모욕과 욕설, 갑질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바닥은 원래 그래' 하며 적응하지 못하면 그저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된다는 것도 말이다. 그저 어린 마음에 화면 속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직접 볼 수 있고 큐사인에 따라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멋진 모습만 상상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모든 사람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사랑하기'를 배우면서도 설마 미래의 자신이 카메라 뒤에서 도구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는다.

특성화고 영상관련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중3 학생들이 꽤 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상암동에 입성할 수 있다는 꿈에 젖어있다. 지난주 교내에서는 3학년 학생들의 미술 수업이 진행됐다.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핵심 부분을 오려내 그 부분에 사진을 조화시켜 작품을 완성하는 게 과제였다. 학생들은 교정 곳곳에서 스마트폰으로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심코 한 학생의 작품을 보았는데 비틀스 음반 표지로 유명한 횡단보도 애비로드 그림이 있었고 그 거리를 걸어가는 비틀스 4인에 친구들의 사진을 합성하고 있었다. 
 
 비틀스 <애비 로드> 앨범 커버
 비틀스 <애비 로드> 앨범 커버
ⓒ 나무위키 "Abbey Road"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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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울컥했다. 한빛이 나에게 비틀스의 애비로드 앨범커버를 처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한빛이 고등학생 때 영화 <라디오 스타>를 같이 보았다. 나는 국어교사임에도 주제 파악이 안 되어 한빛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영화 속 록밴드 이스트 리버에 대해서도 물었다.

한빛은 이스트 리버가 왜 비틀스 코스프레를 했는지, 그들이 왜 영월의 한 횡단보도를 애비로드인 양 건넜는지 등 해당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며 애비로드를 설명해줬다. 한빛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그래. 맞다. 비틀스 그 사진"이라고 했다.

한빛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런던 마담투소에 갔었다. 우리는 기타를 치며 앉아있는 비틀스(밀랍인형) 사이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한빛도 기억이 난다며 한참 전에 갔던 첫 유럽 배낭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엄마가 욕심 하나만 가지고 가서 많이 힘들었지? 즐거운 여행이 아니었지?" 하며 "대학 들어가면 다시 가지 않을래? 너는 싫겠지? 스무 살 너머 엄마랑 여행 가는 것은 좀 그렇지? 그래. 맞아. 엄마도 홀로 서야지"라고 말하며 한빛의 답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결론 내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애비로드를 그린 학생의 창의성에 감탄하며 칭찬했다. 수업 방식이 변화해서일까? 많은 학생은 이런 수업을 좋아했고 익숙해한다. 그러다 보니 영상 관련 고등학교를 희망하는 학생도 많아진 것 같다. 교내 곳곳에서 까르르 웃으며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저 마음, 저 열정이 그대로 커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울러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방송 제작환경이 만들어져야 함을 다시 확인했다.

카메라 뒤 사람들을 향한 존중이 필요하다

영상 관련 직업에 종사하거나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드라마의 목적이 감동과 아름다움이라면 그걸 만드는 사람도 함께 감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만드는 사람도 상처받고 떠나고 시청자도 겉과 속이 다른 모순에 실망할 것이다.

이 바닥은 원래 그렇다가 아니라 카메라 뒤 사람들을 향한 존중이 필요하다. 자신이 만드는 드라마처럼 아름답고, 위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임을 우리가 모두 인정해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가장 보통의 드라마>는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이 책이 방송 제작환경 변화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길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학생들의 꿈을 설계하고 실천해나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교사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특히 특성화고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어린 나이에 고민할 사이도 없이 현장으로 나간다. 그들이 사회생활 초기부터 상처와 좌절, 사회에 대한 적개심 등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임하면 삶이, 20대가 덜 힘들지 않을까. 지난날 학생들과의 진로 상담 때 환상만 이야기했던 게 부끄럽다. 이 책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아이들에게 더 따뜻하게 현실을 이야기해주고 희망을 품도록 했을 텐데.

한솔아, 좋은 글 고맙다.
 

덧붙이는 글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빛이 머문 시간>에 탑재할 계획입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

이한솔 (지은이), 필로소픽(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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