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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동명의 웹툰을 소재로 한 신작 드라마 제목으로 8월 31일 OCN 방영을 앞두고 있다. 웹툰은 청년이 서울의 낯선 고시원 생활 속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을 경험하는 미스터리가 주된 내용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지만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크다.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데에는 이런 공감대가 컸을 것이다.

사실 이 표현은 사르트르의 희곡 'No Exit'에서 나온 "Hell is other people.(지옥은 타인이다.)"에서 비롯되었다. 사르트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여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실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지옥에 빗대었다. 비단 옆 사람 숨소리까지 듣게 되는 고시원뿐만 아니라 SNS로 계속 일상을 공유하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이 처한 환경이다.

개인적으로도 프리랜서 연구자, 강사로서 홍보와 상담을 위해 페이스북으로 계속 일상을 공유하고 카톡으로 밤낮없이 들어오는 문의와 업무 논의에 응대하다보니 올해 5월경에는 무리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 수북이 쌓인 카톡 메시지와 늘상 좋은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페이스북이 어느 순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고 스트레스로 수면장애까지 왔다. 모든 단톡방에서 나오고 페이스북도 멈추고 혼자만의 시간을 몇 달 정도 가진 뒤에야 겨우 회복이 되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사람과 만날 것인가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관계 에세이
▲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관계 에세이
ⓒ 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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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교수의 신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는 '어떤' 타인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한다. 지옥처럼 느껴지는 타인도 만날 수 있지만 무한한 깨달음을 주는 타인도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르트르가 타인을 지옥으로 봤다면,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에서는 타인을 정해지지 않은 미래로 보았다고 언급한다(104쪽). 타인은 나의 자유로움을 억압하는 지옥일 수도 있지만, 나의 성장을 견인하는 축복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날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정해지지 않은 나의 의지와 선택에 달린 것이다.

책에서는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으로 '귀 막힌 사람', '필요할 때만 구하는 사람', '나뿐인 사람', '365일 과시형', '말문 막히는 사람', '과거로 향하는 꼰대', '감탄을 잃은 사람', '책을 읽지 않고 책잡히는 사람', '단점만 지적하느라 장점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 '대접 받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 등 10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10가지 유형의 공통점은 타인과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한동안 힘들었던 건 SNS를 통해 요구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동일하게 대응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느슨하고 얕은 네트워크가 가진 장점이 있지만 내가 중심을 잡지 않고 이 네트워크에 모두 동일하게 대응을 하려다보니 무겁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정작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소홀히 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었다. 결국 타인이 아닌 내가 선택한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책에서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결정하기에, 나를 바꾸려면 내가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행복을 위한 주체이자 타인의 행복의 조건인 나

그렇다고 이 책이 나에게 도움 되는 사람을 골라내는 처세술 책은 아니다.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기에 나 역시 다른 사람을 만나 변화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저자는 '상대의 흥을 돋우는 사람', '지적하기보다 지지해주는 사람',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사람',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가는 사람', '말한대로 살아가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 '핑계를 줄이고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사람' 등으로 제시한다.

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건 책 말미에 강조하는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할 수 있으며, 힘겹고 어렵지만 같은 방향과 가치를 가슴에 품고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며, 사랑으로 다가갈 때 타자는 나를 괴롭히는 지옥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다른 나로 이끌어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는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란 대사가 나온다.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가 번아웃인지 SNS 공황장애인지 나조차도 상황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이 말없이 안아주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기에 타인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관심과 응원은 큰 위로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인해 방전이 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인해 충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방전과 충전의 역할에서 오갔으리라. 결국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냐 축복이 될 수 있냐는 나에게 달려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주체이자 타인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관계 에세이

유영만 (지은이), 나무생각(2019)


태그:#유영만, #관계에세이, #지식생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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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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