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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개봉했던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일상생활에서 공감되는 요소들을 배치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넣어놓은 '공감 코드' 중에 굉장히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지는 어떻게 알아?" (영배 / 윤경호 분)
"하루에 세 번 이상 전화하면 사랑하는 사이에요." (세경 / 송하윤 분)
"한 번도 안 하면 부부 사이고요." (수현 / 염정아 분)

 
부부관계에 대한 이런 유의 농담(물론 누군가에겐 진담일 것이다)들은 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출산을 하고 나니까 아내가 여자로 안 보인다' '가족끼리 섹스를 어떻게 하냐'는 등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그 사랑을 부정하거나 희화화하는 일들이 그 나이대의 남녀 사이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농담의 의도가 뭘까?
 
'부부는 의리와 우정으로 산다'는 홍삼 광고
 

부부 또한 다양한 인간관계 중에 하나고, 각자가 책임질 것들이 생기게 된다. 오히려 연애하던 시절보다 결혼했을 때 책임져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사랑을 부정하거나 희화화하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이다. 무관심하거나 관계에 충실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인 양 툭툭 던져대는 이런 농담들은 미디어에서도 버젓이 재생산되는 중이다.
 
 참다한 광고 < 다시 남자, 다시 여자 > 중
 참다한 광고 < 다시 남자, 다시 여자 > 중
ⓒ 참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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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관에서 한 홍삼 광고를 보게 됐다. 제품의 이름은 참다한에서 출시한 '다시 남자'와 '다시 여자'다. 제품의 취지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활력을 잃은 남성'과 '갱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야 이미 시장에 많이 나와 있으니까. 그러나 그걸 홍보하는 방식에는 의문이 든다. 광고 영상에 나오는 문구를 보자.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면서 한배를 타게 된다. 우정이라는 배(Friendship)."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아내와 남편은 굳게 다짐했다. 형제가 되기로."

 
첫 번째 카피는 우정의 영어 표현인 friendship을 사용한 언어유희고 두 번째는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패러디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혼 후 부부가 아닌 우정을 나누는 친구나 의리를 약속한 형제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타인>에 나오는 대사가 아무런 근거 없이 '공감 코드'로 작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한 번도 안 하면 부부 사이'라는 대사가 너무 공감이 많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니까. 물론 나이가 들면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신체적인 변화 때문에 이런 제품이 출시된 것이겠지만, 전반적으로 관계를 도외시하거나 희화화하는 것이 '어른의 농담'으로 유통되는 사회적인 분위기임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아내는 여자가 맞는가'를 주제로 토론하는 미디어
 
 < 인생감정쇼 얼마예요? > 중
 < 인생감정쇼 얼마예요? > 중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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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농담'은 때로 폭력적이다. TV조선 <인생감정쇼 얼마예요?> 12화에서는 '아내는 여자가 맞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여자'의 정의란 대체 무엇일까? 남성 패널들의 발언은 대체로 이랬다.

"볼 거 다 보고 사는데 그게 왜 여자냐."
"설레는 마음이 생겨야 진정한 여자다."


뭐가 문제인지 지적하기에도 낯 뜨거울 지경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미디어에서 다뤄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내를 여자로 보지 않으면 쫓겨난다는 외국인 패널의 말에 '그건 미국 얘기지'라고 반박하는 한편 사회자는 '아내를 여자로 대우하지 않는' 행위를 세대·문화 차이의 문제로 축소했다.
 
이런 말들은 여성 혐오적이기 때문에도 문제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상호 간의 노력의 중요성을 격하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농담'이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광고, 방송, 영화에 버젓이 '아내는 여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말이 공개된 자리에서 토론 주제로 오르내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분위기는 분명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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