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열린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식

지난 16일 열린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식 ⓒ 평창영화제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20일 오후 한국경쟁 부문 시상식을 끝으로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는 올해 처음 개최되는 것이었지만 어느 영화제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개막식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은 큰 규모의 영화제 못지않을 만큼 무게감이 있었다. 국내외 영화인들 외에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강원도, 평창군 등등 정부와 지자체의 참여는 평창남북평화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했다.
 
쉽지 않은 시기에 어려운 걸음을 떼며 상영작들과 부대행사 등을 통해 영화제가 갖는 의미는 잘 살려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첫 회 행사에서 평화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보여준 노력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애초 계획했던 북한 영화인들의 참여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절반의 성공만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남은 절반이 채워질 때 영화제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발전시켜 나갈 부분들이 더 많고 남겨진 과제들이 적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향후 남북관계가 평창남북평화영화제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우여곡절 끝 어렵게 내디딘 첫 발
 
사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는 올해 첫 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의 훈풍을 타고 영화제 개최 논의가 시작됐고, 영화를 넘어 남북문화교류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당초 영화제측은 북한 지역에서 폐막 행사를 열고 북한 영화인들을 초청하는 등의 많은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초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남북 영화인들의 만남 행사를 피했고, 지난 2월말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마저 경색국면에 접어들었다. 평창에서 준비하고자 했던 다양한 계획들이 무산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85편의 상영작 중 수월하게 수급해 상영할 수 있었던 영화가 한 편도 없었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라고 영화제 준비 과정의 어려움을 전했다.
 
게다가 영화제가 개막한 지난 16일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비난하고 나섰다. 또 강원도 통천지역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했다. 남쪽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간의 협력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영화제가 시작되는 날 상반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의 여정이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평창남북평화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 평창영화제

 
하지만 남한의 영화인들은 평창남북평화영화제를 통해 남북교류의 의지를 굳건히 다졌다. 올해 영화제의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평화의 의지가 영화로 발산됐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지난 7월 기자회견 때 문성근 이사장은 "어려울수록 우리가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평화의 토대를 쌓아가야 이게 열릴 때 활짝 꽃피지 않겠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16일 개막식에서도 문 이사장은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낙담하지 않고 평화를 절실히 갈망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방은진 집행위원장은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미래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라고 밝혔다.
 
분단과 이산 다룬 북한영화 공감
 
개막작으로 선정한 북한영화 <새>는 남한의 영화인들이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북한영화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를 부각한 것은 상징성이 컸다. 비록 북한 영화인은 없었으나 영화제 기간 중 상영된 북한 영화들은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봄날의 눈석이> <산너머 마을> <왕후 심청> 등은 북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깰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완성도도 있고 체제선전과 이념적인 색채와는 거리가 먼, 분단과 이산 가족의 아픔을 다룬 휴머니즘 영화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비록 북쪽에서 만든 영화였지만, 분단과 이산의 문제라는 민족 공통의 고민이기에 큰 이질감 없이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북한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도 눈에 띄었는데, 닐 퍼거슨 감독의 디큐멘터리 영화 <마이클 페일린, 북한에 가다>는 제약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과 평양, 원산, 판문점, 금강산, 삼지연 등의 모습을 담아 흥미를 끌었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공감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크게 웃거나 박수로 호응했다. 영화 속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혀줬다. 
 
 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부대행사로 진행된 스페셜 토크 '북한에서 영화찍기' 토론회

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부대행사로 진행된 스페셜 토크 '북한에서 영화찍기' 토론회 ⓒ 평창영화제

 
남북평화를 추구하는 영화제에 맞게 프로그램과 부대 행사는 주제에 충실했다. <개성공단전 - 개성공단 사람들>을 비롯해,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과 역사 속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하는 <세상의 끝과 부재중 전화 – 경계선의 목소리들>,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남북합작 장편 애니메이션인 <왕후 심청>의 제작 과정이 담긴 전시 등은 영화제와 조화를 이루며 호평을 받았다.

강숙 작가가 선보인 '강숙의 캘리쇼'는 대형 한지에 영화제 슬로건을 써나가는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북한영화와 관련된 스페셜 토크와 이두용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등 모든 행사와 진행이 영화제의 지향점과 방향성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은 것은 인상적이었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측은 총 33개국 85편의 영화를 9개 상영관에서 103회차 상영을 했고, 1만 1천여 명이 영화 관람을, 2만 3천여 명이 공연 및 전시, 이벤트에 참여하는 등 총 3만 4천 명이 영화제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첫 회 행사치고는 상당히 많은 관객이 참여한 셈이다.
 
다만 상영관이 강릉과 평창으로 분산되면서 이동거리가 길어진 점은 영화제 진행과 관객 입장에서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알펜시아 시네마를 제외하고는 주 행사장 주변으로 극장이 없어 선택의 폭이 작을 수밖에 없겠으나,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 설치된 천막극장은 효율성 있는 선택이었다. 어차피 대부분 매진되는 경우가 없는 상태라, 작은 규모의 상영관을 확보하는 것이 영화제를 활성화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남북평화를 추구하는 만큼 북한에서 이탈해서 온 주민들에 대한 프로그램도 필요해 보인다. 작품성 있는 북한 영화의 지속적인 수급도 중요하다.
 
탈북 모녀 주제 <은서> 수상
 
 평창남북평화영화제 한국경쟁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은서>박준호 감독

평창남북평화영화제 한국경쟁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은서>박준호 감독 ⓒ 평창영화제

 
한편 올해 한국경쟁 부문 수상작으로 심사위원 대상에는 박준호 감독의 <은서>가, 심사위원상에는 이시대 감독의 <사회생활>, 여선화 감독의 <별들은 속삭인다>가 선정됐다. <은서>는 분단 고착화 이후 새롭게 파생된 현대적 이산가족의 문제이자 정착에 성공한 난민(딸)과 새로 진입한 난민(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지난 5월 열린 인천디아스포라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 "적절한 테마와 완성도가 어우러진 작품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중기 배우는 <은서>에 대해 "가족을 이룬 딸에게 어머니 역시 불편하고 낯선 타자일 수밖에 없지만, 모녀 간의 관계인지라 영화가 주는 울림은 조금 더 복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출은 이러한 주제의식과 기술적 완성도를 끝까지 조화시켜 긴장감 있게 영화를 이끌어간다"라고 평했다.
 
방은진 집행위원장은 "닷새 동안의 영화제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게 느껴진다"며 "개막식 직전 찾아온 태풍과 비, 영동 지역의 폭염 등으로 진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만 영화제 모토와 맞는 훌륭한 영화들과 수준 높은 공연, 전시, 이벤트, 아카데미 등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충분히 의미 있었다"라고 자평했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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