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0 07:13최종 업데이트 19.08.20 07:13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운동을 시작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필라테스 센터를 찾았다. 카운터를 지키던 담당자는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개개인의 몸 상태를 알아야 한다며 각자의 병력을 물었다.

A는 척추측만증이 있다고 답했다. 담당자는 A의 이름 아래에 '척추측만증'을 적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 세심하게 기록했다. B는 거북목과 꼬리뼈 통증이 있다고 답했다. 담당자는 역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나는 공황장애가 있다고 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병명을 적던 담당자가 갑자기 볼펜으로 병명을 지웠다. 'ㄱ'자도 안 보일 정도로 촘촘하게. 그리고 말했다.


"공황장애라는 건 알려지면 좀 그렇지요? 남들이 볼 수 있으니까 지웠어요."

친절한 얼굴, 정중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상담이 끝나자마자 찜찜함이 밀려왔다. 나는 배려 받은 걸까. 왜 척추측만증이나 거북목처럼 내 증상은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을까. 담당자가 찍찍 그은 볼펜 자국이 감춘 건 무엇이었는지 오래 생각했다.

공황장애에 관한 무지와 편견
 

ⓒ pixabay

 
4년 전, 나는 신경정신과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공황장애는 심한 불안 발작과 함께 다양한 신체 증상이 예고 없이 발생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내 경우에는 몸이 피로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긴장되는 상태에 놓이면 어김없이 발작이 나타났다. 대중교통을 타다가 참지 못하고 중간에 뛰쳐나오는 낮과 숨이 안 쉬어져서 동거인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밤이 반복됐다.

내 하루는 공황장애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 가능한 외부 일정을 잡지 않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니까 각종 소식에서 멀어지도록 단순한 정보(주로 영화, 웹툰, 책)를 주로 접했다. 감당하지 못할 일정은 최대한 피하면서 가만히 있는 시간을 늘렸다.

버티고 버티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3년 만이었다. 7개월 전부터 격주로 병원에 다니고 약을 처방받으면서 공황 발작 빈도가 서서히 줄었다. 일상의 제약이 줄어드니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얼마 전부터는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고, 미뤄왔던 집필 노동과 프로젝트에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진작 병원에 다녔다면 혼자만의 세계에서 움츠리던 시간도 줄어들었을 텐데. 왜 나는 미련하게 병을 키우고 있었나 싶어서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기도 한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몸과 마음은 전보다 개운해졌지만, 예상치 못한 마찰이 생겼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 '정기적으로 신경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으로 읽히면서 시작된 마찰이다.

사랑니를 뽑으려고 치과에 찾아간 적이 있다. 치료 접수지에는 현재 앓는 병명과 복용하는 약을 기록하는 칸이 있었다. 나는 공황장애, 항우울제를 차례로 적었다. 사랑니 발치로는 대단한 전문가라고 알려진 의사는 미리 찍은 치아 엑스레이 사진과 내 차트를 가만히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어깨를 치면서 이런 소리를 냈다. "웍!!!!" 내가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의사가 말했다.

"에이~ 공황장애 아니네. 놀라도 괜찮죠? 나는 사랑니 잘 빼니까 걱정 마요. 놀래 켜도 괜찮잖아~" 히죽거리는 면전에 대고 한 바탕 욕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잇몸은 마취상태였고 나는 사랑니를 뽑히는 입장이었으니 꾹 참고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 사랑니를 잘 뽑는 전문의였지만, 다른 질환에 대해서는(적어도 공황장애는) 무지한(무례한) 사람이었다. 공황장애를 단순한 반응 정도로 여긴 점도 불쾌했고, 만약 내가 정말 발작이라도 났으면 어떻게 책임졌을지 궁금했다. 다음에 비슷한 병을 가진 환자가 같은 수모를 겪을 걸 생각해서라도 한 마디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공황장애를 입에도 올려선 안 될 무거운 병으로 인식하거나, 정신극복으로 해결 가능한 가벼운 증상으로 인식하는 두 반응에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왜 오랜 시간 정신과를 찾지 않았는지, 왜 오랫동안 혼자만의 섬에 갇혀있었는지 말이다.

연례행사처럼 1년에 두 번 편도가 붓는 시즌은 정확하게 계산하고 주기적으로 이비인후과에 찾아가면서 왜 내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황에는 무심했을까. 열이 오르거나 살이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확연하게 눈에 보이는 고통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통은 당당하게 병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개개인의 성격 문제로 여겨지곤 한다. 병에 대한 무지는 그렇다 쳐도,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오는 반응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깔려있다. '언덕 위의 하얀집', '정신병자의 범죄' 등으로 각종 언론과 문화가 정신병을 낙인찍는 분위기는 더욱 병원 문턱을 높인다.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길 바란다"
 

서귤 작가의 <판타스틱 우울백서> 중 일부 ⓒ <판타스틱 우울백서> 텀블벅

 
서귤 작가의 <판타스틱 우울백서>는 우울증에 걸린 작가의 치료일기다. 작가는 직장에 다니면서 정신병원에 갈 때마다 다른 고통을 핑계로 삼는다.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내과.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노동의 기본 값(아무리 갑질 당해도 의연할 수 있는 멘탈, 주 5일 야근과 특근쯤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는 몸)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신의 병을 숨기는 작가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궁금했다.

몸의 병은 그나마 승인되지만, 정신의 병은 꼭꼭 숨길 일이 되는구나. 프리랜서인 나는 낙인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내 아픔을 내가 믿지 못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나 그냥 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건 아닐까, 성격을 바꾸면 되는 일 아닐까. 실제로 나와 같은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자주 듣는다. 운동을 더 해. 채소를 먹어. 물을 많이 마셔. 영양제를 먹어. 우울 불안 공황 그런 거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아. 연애하면 다 나아진다?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도 있다. 약을 오래 복용하면 더 무기력해진다, 살이 찐다, 사람이 갑자기 이상해진다, 내성이 생겨 평생 먹어야 한다. 병원에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신과에서는 공장처럼 일정한 약을 찍어주지 않는다. 그때그때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맞는 약을 찾고, 약을 기반으로 일상을 살아갈 근력을 키워나간다.

내 담당 선생님은 정신과 치료의 목적은 평생 약을 먹이는 게 아니라 개입이 필요한 시기에 치료하고 환자가 약을 끊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물론, 살다보면 또 힘든 날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다시 찾아오면 돼요. 감기처럼, 정신 장애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거니까요. 더 문턱이 낮아지면 좋겠어요."

오프라인에서 병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할 때는 공황장애 환우 카페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료 방법이나 만성적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 등을 공유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과도 적극적으로 서로의 병을 나누게 되었다. C의 강박장애는 어떤 상태인지, D가 새로 바꾼 우울증 약은 어떤지, E는 이제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지, F는 알코올 중독 상담을 언제 받을 건지, 어떤 병원이 괜찮은지, 약은 잘 챙겨먹는지 서로 체크하며 응원해주는 식이다.

내 아픔을 무시하거나 무시무시하게 여기지 않고, 나라는 사람의 부분으로 인정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주는 힘은 크다. 최근에는 '환밍아웃'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각자의 아프고 삐걱대는 몸을 드러내는 서사가 늘어나고 있다. 누구도 달성할 수 없는 '표준의 몸'의 개념에 균열 내고, 건강 중심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서사들이다.  

여전히 내 몸은 공황장애와 메니에르(달팽이관 전정기관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을 느끼는 만성질환), 황반변성(한쪽 눈에 기형 혈관이 자라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질병) 등 다양한 삐걱거림을 겪고 있다. 꽤 오래 달고 살면서도 고통에 익숙해지는 법은 도무지 모르겠고,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내 하루는 알약 세 알로 시작하고 그 점이 나를 부끄럽게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알약 세 알은 나를 설명하기도 하고, 나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기도 하니까.

아픈 사람의 시선으로 건강 중심 사회를 기록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작가는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가 작가에게 받은 위로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이 글을 건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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