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 클레어함


로카르노 영화제가 한국의 국민배우 송강호에게 특별공로상(Excellence Award)을 건넨데 이어 지난 13일(현지시각), 야외공간 스파지오 시네마에서 봉준호 감독-송강호 배우와 시네필들이 함께 하는 토론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선 한국영화사의 발자취와 그간 두 사람의 협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약 200석이 넘는 좌석이 꽉차, 일부는 1시간 30분 동안 서서 듣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날 행사는 아르떼 프랑스 시네마 (Arte France Cinéma)의 총괄이사인 올리비에 페어씨((Olivier Père)가 맡았다. 이 자리에는 로카르노영화제 릴리 안스탄(Lili Hinstin director) 집행위원장도 함께 하기도 했다. 1995년 파리주재 프랑스시네마테크 시절부터 영화업계에 몸담아온 올리비에 페어씨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을 칸영화제에 초청하는 등 한국영화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어씨는 송강호 배우를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라 소개하면서 영화배우 데뷔 이전, 연극무대에서의 경험에 대해 먼저 질문했다.

송강호 배우는 "시골에서 성장해서 연극이나 영화같은 문화적인 체험을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작고한 미국 스티브 맥퀸의 작품을 보고 흠모하고 동경하기 시작했고 초-등중학교때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꿨다"라며 "연극은 실제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영화와는 다른 배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다양한 경험 및 에너지를 연극을 통해 체득하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송강호는 '본능적인 배우인지, 감독과 소통을 많이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다른 감독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한다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작업을 흡수하는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페어씨는 한국영화사의 흐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1990년대말에서 2000년대초에 한국영화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하게된 성장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묻자 봉준호 감독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른다. 90년대말쯤에 갑자기 재능있는 감독들과 배우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라며 "단순화하긴 아주 힘들지만, 1990년초에 군사정권이 물러나면서 검열이 없어졌다. 그 시기쯤 저도 조감독으로 처음 활동했고, 송강호 선배도 데뷔했고 이창동 감독, 박찬욱 감독님도 마찬가지로 모두 그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열이 없어지고 예술적 표현이 자유로워지면서 이런 영화인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굳이 역사적으로 끼워맞춰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봉 감독은 사회자가 '그 시기 프로듀서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땠느냐'고 묻자, "프로듀서들도 한번 세대의 단절이 있었다. 1990년대말 새로운 모험적인 프로듀서들이 갑자기 등장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 국가에서 갑자기 영화에 미치게 하는 약을 수돗물에 탄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난 건 사실이다.(웃음)"라며 "임권택 거장감독의 경우는 젊었을 때 소품담당을 했었고 차근차근 도제시스템을 통해 감독의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우리 세대 감독과 프로듀서들은... 너무 일반화시키는 것 같긴 한데, 약간 시네필에서 출발한 면이 있긴 하다. 저와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감독은 엄청난 시네필이고 디비디 수집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리비에 페어 대표는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함께 협업한 네 작품 <살인의 추억> (2003년), <괴물> (2006년), <설국열차>(2013년), <기생충>에 대해 함께 하게된 계기 및 캐릭터 선정, 작업과정 등에 대해 물었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 클레어함

 
먼저 처음 같이 작업하게 된 계기에 대해 봉 감독은 "강호선배는 <초록물고기> (1997년)에서 갱스터 역을 했는데, (연기를 보고) 놀랐다"면서 "연극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미 (송강호의 연기를) 알고 있었다.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지의 연기라고 해야 할까... 이창동 감독님 덕분에, 저 분을 모시고 한 번 일해봐야 겠다고 생각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살인의 추억>은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송강호 선배를 상정하고 쓴 건데, 시나리오가 (송강호의) 마음에 안 들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런 마음으로 제안했던 기억이 난다"라고 덧붙였다.

송강호 배우는 "(봉감독이) 흥행에 첫 작품이 실패하고 별볼일 없는 감독이라고 얘기했지만, 그때 당시 저는 그 첫 작품이 쇼킹했다"라며 "물론 한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실패했지만, 너무나 참신하고 감각적이고 저한테는 굉장히 재미있고 새로운 영화였던 것 같다. 그래서 호감이랄까 같이 작업하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살인의 추억>이라는 거대한 시나리오를 주니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페어 대표는 "송배우는 무척이나 다양한 역할로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가지지만, 오히려 두분이 같이 작업한 네 영화의 캐릭터는 유사한 것 같다. 이 작품들에서 송강호씨는 항상 서민이며, 가장으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 내지 생존본능과 부딪친다. 어떤 면에선 한국 남성의 전형인 것도 같고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전반적으로 캐릭터에 일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제 영화에서 항상 주인공들은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같은 느낌인데, 결국은 독특하고 해결하기 힘든 미션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많다"라며 "그것을 제일 잘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 제 입장에서는 강호 형님인 것 같고 그래서 저도 그쪽으로 계속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우리 이웃에 주변에 볼 수 있는 사람인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임무나 상황에 처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코미디도 나오고 비극도 나오는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을 전제로 하고 시나리오를 썼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살인의 추억>의 성공 이후 <괴물>에서도 같이 작업하게 된 배경을 묻자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보신 관객들은 기억나실 것도 같다. 초반에 스테디캠 롱테이크 샷으로 촬영한 범죄현장 시퀀스가 있다. 그때 변희봉 선생님과 송강호 선배가 엉망진창인 사건현장에서 구시렁거리던 장면이 있다. 그때 대화의 50%가 애드리브였는데,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이미 기획중이던 괴물영화에 두 분이 아버지와 아들로 나오면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흥행에 크게 성공한 <괴물> 촬영 당시의 경험에 대해 송강호 배우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연기를 해야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서울시민이 24시간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는 한강 고수분지에서 촬영하다보니, 6개월간 지나가던 분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받고 연기하던 기억이 난다"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페어씨는 "영화 <괴물>이 아름다운 것은 특별효과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이 영화는 다분히 감정적인 영화다. 가족에 관한 멜로드라마이며 코미디이자 풍자극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잘 혼합되어있어 왜 우리가 한국 시네마를 사랑하는지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봉 감독이 그에게 프로그래머로서 <괴물>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는 "우리는 영화가 완성이 되기 전에 봤지만 괴물의 생김새가 중요하지 않았다.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고 미장센도 놀라웠다. 이상적인 영화의 완벽한 모델이었다. 재미와 흥미가 있고, 감동적이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켰다"라고 극찬했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의 완성은 배우라는 걸 느꼈다. 비주얼 이펙트에 약간 단점이 있어도 괴물을 마주보고 있는 배우의 얼굴이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으면 관객도 덩달아서 컴퓨터 그래픽에 대해 믿게 된다"라며 "송강호 선배와 다른 가족 배우들의 뛰어난 설득력 때문에 당시 적은 예산으로 어렵게 비주얼이펙트를 하게 되었다. 배우들이 CG을 믿게 해줬다"라고 배우들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 클레어함


마지막으로 "<설국열차> 때 외국 배우들과 처음 작업했는데, 익숙한 송강호 배우가 있었으니 촬영장에서 덜 외로웠을 것 같다"는 올리비에 페어씨의 지적에 봉 감독은 "저는 외국 배우들과 작업한 게 처음이었다. 강호선배와 고아성 배우, 두 한국 배우가 세트장에 올 때마다 통역없이 연출을 할 수 있으니까 제가 마음이 편해졌다"고 답했고, 송강호씨는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할리우드 배우들과 같이 연기하는 게 처음이었다. 어떤 면에선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고, 어떤 면에선 굉장히 편했고, 여러가지 경험을 재미있게 했다"고 답했다.

한편, "두 분의 관계는 우정인지 파트너쉽인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일할 때만 만나나 아니면 같이 소주도 마시는 편한 사이인가"라고 묻는 페어씨의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웃으며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며 "We love each other"라고 영어로 재치있게 답했다. 또한 "사석에서 만나면  꼭 영화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축구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후엔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온 스위스 교민을 포함, 러시아와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는 영화학교 학생들, 유럽의 시네필 관객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이가 지긋한 한 교민 여성은 "최근 두 분이 같이 작업했던 사회적 정치적 이슈의 영화들이 최근 회자가 많이 되고 있다. 감독으로 연출하고 배우로 출연하는 것이 공익을 위해 사명감으로 하는건지, 즉 본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영화로 구현하고자 하는 건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테마가 흥미로워서 영화화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세상만사가 다 정치적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건 개인을 다루건 정치적인 맥락은 다 포함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저는 정치적 표현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건 정말 싫고, 프로파간다 영화는 정말 혐오한다. 뭐랄까, 영화자체의 아름다움, 영화 자체가 가지는 흥분, 저는 장르영화 감독으로서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따르거나 파괴할 때 오는 영화적 흥분을 추구한다"라고 설명했다. 

송강호 배우는 "저도 비슷하다. 근 한 십년 동안 한 작품들이 어쩌다보니 진지하고 역사적인 소재라 (관객들이)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성향의 척도를 두고 작품 선정이나 연기를 한 적은 없다"라며 "단지 배우로서 자연인으로서 가장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도덕에 대한 부분을 얘기하고 싶은 거고, 그걸 솔직하고 용감하게 표현하다보니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진행된 송강호-봉준호와 함께한 토론회. ⓒ 클레어함


한 젊은 남성이 "<기생충>을 촬영하면서 서로에 대해 가장 놀랐던 점"을 묻자 송강호씨는 "어떤 영화형식적인 면도 놀라운 지점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16년 전 <살인의 추억>에서 처음 만났던 때와 비교했을 때 이 사회의 맥을 짚는 봉감독의 시선이 예술적으로, 인문학적으로 굉장히 성숙되고 진화됐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반면 봉감독은 "저는 촬영 때보다도 시나리오 쓸 때 스스로 놀라게 된 부분이 있었다. <기생충> 클라이맥스 신에 예기치 못한 약간 충격적인 순간이 있다. 그 부분을 쓸때 관객을 어떻게 설득할지 좀 불안했다. 그런데 아, '이 장면을 송강호 선배가 연기할 것이구나' 어쩌면, 감독으로선 무책임한 나쁜 태도지만, '강호선배라면 관객을 설득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 나 자신에, 그런 강호 형의 존재감에 스스로 놀랐다. '강호 선배랑 작업을 같이 한다는 게 그런 의미구나'라고 깨달았다"라고 답했다.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송강호 배우가 "고맙다"라고 말하자 봉 감독을 포함, 청중들이 웃으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감독으로서의 삶에 만족하냐"는 한 여성의 질문에는 봉 감독은 "저는 행운이 많았던 사람이다. 여지껏 제가 개봉했던 모든 영화들이 디렉터스 컷이었고, 제작사와 투자사와 비교적 큰 갈등없이 찍었다. 한 경우만 빼고. (웃음). 힘든 직업인 것 같다. 과연 권할 수 있는 직업인지 모르겠다. 이미 질문하신 분은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팔자 내지 운명이다"라고 답했다.

한편, 어느 러시아 학생은 "혹시 불법으로 주거침입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 <기생충> 영화를 생각해냈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자 봉 감독은 "경험하지 않은 일을 만들어내는 게 감독의 의무이자 직업이다. 살인을 안 해보고도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를 만들었다"며 "흥미롭고 좋은 반응이다. 칸 상영에서도 이런 얘기 많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송강호씨는 "참고로,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다"고 재치있게 말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토론은 예정된 시간이 훌쩍 넘어가자,  "송강호 배우의 수상을 축하드리고, 두 분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는 사회자의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마무리됐다.

*로카르노영화제라이브 녹화영상 링크 
로카르노 봉준호 송강호 기생충 올리비에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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